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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책방 Mar 10. 2019

나의 고슴도치

아침 눈 떠서 멍하니 누워있는데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어플에서 3년 전 사진을 감상하라는 알람이었다. 3년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나 봤더니, 아침부터 갑자기 슬퍼졌다.

정확히 3년 전에 키우던 고슴도치가 죽었던 날이었다.


어릴 적 집 마당에서 개 3마리를 키웠다. 그렇게 키우고 싶어서 부모님을 매일마다 키우게 해 달라고 조르고 키우게 되었는데, 나와 동생은 데리고 놀고 밥 주는 것만 했었고 부모님이 나머지 뒷일 들을 다 하셨다. 게다가 아파트로 이사 가는 바람에 마당에 키우던 개들을 집 안으로 들일 수 없어, 3마리 모두 외갓집 근처 이웃들에게 보냈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이라 개 3마리를 모두 돌보기엔 힘드셨을 것이다. 내가 더 잘할걸, 잘 돌 볼걸. 어린 난 포도송이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후회했다.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었지만 집에서 키우던 개들이 생각났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단 죄책감 때문에 키울 수 없었다. 그래도 왜 그랬는지, 키우고 싶은 욕심이 끝나질 않아 동들의 습성을 검색하고 나에게 맞는 애완동물이 있는지, 우리 집에 잘 살 수 있을지 찾아보았다. 계속해서 알아본 끝에 결정한 건 고슴도치.  몸에 취선이 없기에 냄새가 나지 않고 털 날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배변 냄새가 나고 야행성이란 것은 단점이 될 수 있었다. 그래도 키우고 싶어서 고민을 반복하던 끝에 아는 언니한테서 키우던 고슴도치를 도저히 키울 수가 없게 되었다고 데리고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언니는 고슴도치를 집에서 1년 가까이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연애를 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소홀해졌고, 결혼하면 신혼집에 키울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났기에 이 고슴도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라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듣고 그 집에 살고 있는 고슴도치가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키우는 주인의 마음 변심 때문에 머무를 곳이 없다니. 나도 키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그 고슴도치도 살 곳이 없고 하니 같이 살아보자!


그렇게 해서 고슴도치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왔다.







뿡치 안녕?



이름은 ‘뿡치’. 집에 데리고 오던 날부터 이름을 바꾸었다. 새 이름으로, 새 둥지에서, 새 마음으로 잘 살라고 바꿨다. 용품들도 부족한 것 같아 큰 쳇바퀴 하나와 들어가 잘 수 있는 푹신한 파우치도 사 주고 맛있는 먹이와 간식으로 넣어주었다. 퇴근하고 배변도잘 치워주었다. 내 손 냄새 맡아서 적응하라고 매일마다 조금씩 훈련시켰다. 고슴도치는 주인 냄새를 맡고 움직인다고 했다. 주인을 알아보면 가시를 세우지 않고 잘 따른다는 말에 연습했는데 한 달 후쯤엔 나의 냄새를 알아보았다. 기특한 녀석. 뿡치를 우리 밖으로 꺼내어 집 안을 돌아다니게 하는 날엔 (긴장해서 그런지) 오줌 한번 찔끔 누고는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돌아다닌다.



회사 마치고 집에 돌아와 불을 켜면 케이지 안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물로 손 씻고 뿡치에게 갖다 대면 냄새를 맡으면서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밤마다 난 회사에서 있었던 일, 속상했던 일, 친구들과 함께 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이 녀석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코를 킁킁 거리며 나를 쳐다보거나 밥과 간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다. 혼자 살던 집에 살아있는 동물 하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세면대를 좋아하는 뿡치.

그렇게 1년 6개월 동안 둘이 함께 잘 살았었다. 키우고 돌봐야 하는 동물인데 어느새 내가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쳇바퀴를 민첩하게 돌리던 녀석의 걸음이 느릿느릿하고 몸이 무거워지는 게 보였다. 밥도 잘 먹지 않고 좋아하던 간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필이면 야근이 너무나 많은 날이 이어져, 이 아이를 제대로 볼 시간조차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싶어 주말에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가까운 일반 동물병원엔 고슴도치와 같은 소형동물을 취급하지 않기에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동물로 갔다. 의사가 보더니 이상하다고 하면서 여러 검사를 했다. 검사가 모두 끝난 후, 내가 들은 말은 ‘종양’이었다. 뿡치 복부에 종양이 생겼는데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말기 암’과 같다고 했다. 정말로 깜짝 놀랐다. 보통 말기 암이라고 들으면 살아 있는 날이 얼마나 될지 먼저 생각한다. 말니까,  의사는 내가 이런 말을 묻기도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일단 마취하고 주사를 여러 번 맞고 약을 먹이고 하겠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큰 동물은 약 먹고 하면 차도가 있는데, 이렇게 작은 동물들은 빨리 죽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일단 몇 시간 지켜봐야 하기에 뿡치를 동물병원에 입원시키고 나왔다.


하필이면 우산도 없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잘 돌보지 못했단 죄책감에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5시간 뒤에 뿡치를 집에 데리고 왔다. 집에 오는 길 내내 내가 했던 것은 미안하단 말,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차도가 있기를 바라면서 병원에서 타 온 약을 주사기에 넣어 입안에 넣어 주었다.


대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면 며칠 동안 살 수 있는 걸까?

마음의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뿡치에겐 얼마나 시간이 남은 걸까?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날 저녁, 이상한 느낌이 들어 파우치 안에 누워 있는 뿡치를 꺼내었다. 기분이 말로 설명하기도 힘든 그런 이상했다. (지금의 남편인) 남자 친구에게 오라고 하고는 뿡치를 같이 봤다. 녀석의 가시는 더 이상 날카롭지 않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나에게 눈 맞추고 무슨 말이라도 하는 듯이 입을 뻐꿈뻐꿈, 찌익찌익 소리 내더니 눈을 스르르 감았다. 뿡치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 그게 녀석의 마지막이었다.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키우던 동물이 죽은 건 처음 봤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 차렸다. 작은 삽 하나 사서, 뿡치를 공원으로 데리고 갔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곳에 묻어주었다. 다른 동물이 냄새 맡고 파면 안되니까 깊숙이 묻어주었다.


‘우리 뿡치 잘 가. 다음에 태어나게 되면 우리 다시 또 만나자.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퇴근하면 날 쳐다보고 있는 검은콩 같은 두 눈은 더 이상 없었다. 자려고 불 끄고 누우면 쳇바퀴 타느라 타닥타닥 소리 내는 뿡치는 이제 없다. 내 손에 올라타고 다리에 앉아 있던 뿡치, 우리 집에서 만족하며 잘 살았을까? 내년에 우리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 아기 돌보고 키우느라 정신없겠지만. 인터넷이나 TV로 고슴도치를 보면 아직도 뿡치의 모습이 떠오른다. 게다가 매년마다 이때가 되면 뿡치가 생각나 마음이 아리다. 그리고 다짐한다. 다시 데리고 올 생각하지 말자고. 살아있는 동물을 집으로 데리고 와 같이 사는 것 까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별은 언제나 어렵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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