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마지막 날에
“나도 좀 돌봐줘. 나도 챙겨줘. 너무 힘들단 말이야.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그래도 더 힘내서 우리를 돌봐줘.”
침대에 누워 울고 있다가 도저히 못 참아, 거실에 있는 아기 아빠에게 가서 얘기했다. 그는 육아, 집안일을 잘하고 있다.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며 하고 있다. 그래도 엄마 마음엔 완벽할 순 없었다. 아기에겐 아빠의 존재는 사라진 건지, 아이는 엄마만 찾고 있다. 잠깐이나마 있었던 여유는 사라지고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어깨와 팔 통증은 심해졌다.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긴 한 걸까?
이 세상에 아이와 나, 둘만 남은 기분이다.
배탈이 심하게 났다. 아침 식사를 못한 채 아이를 돌보다가 재우고, 아침 겸 점심으로 레토르트 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었다. 눈물 날 정도로 매웠는데 배는 고프고, 냉장고에는 반찬 없이 텅텅 비었기에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 흔한 햇반 하나 없는 집인데 주말에 장 보다가 사은품으로 받은 3분 전자레인지 식품을 먹고 배가 아파왔다. 처음엔 속이 맵기만 했는데 금세 화장실로 직행했다. 아이는 한 시간 겨우 자고 일어나서 울었고 나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달랬다. 그 후로 약을 어서 먹어야 할 정도로 상태는 좋지 않았다. 화장실은 계속 가고 싶지만 아이는 엄마만 애타게 찾는다. 엄마의 프라이버시는 당연스레 없어지고 아픈 몸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아이와 함께 있다. 시댁에 저녁식사를 하러 갔는데 아이는 할머니 필요 없고, 할아버지도 필요 없고, 큰엄마도 싫고, 좋아하던 사촌 누나도 싫다고 한다. 아빠는 유령 취급하기까지 한다. 얼마 전부터 아이는 엄마 껌딱지가 되어 떨어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덩달아 아기 재우는 저녁시간에는 엄마인 난, 밖에 나갈 수도 없게 되었다. 아빠가 어르고 달래고 무슨 방법을 다 해도 악을 쓰며 엉엉 운다. 아픈 양 팔에 파스를 붙이지 않으면 잠을 이루기 힘들다. 아이의 행동들에(먹기, 잠자기) 대해 습관을 잘 잡아가고 있었는데 신생아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읽던 책을 잠시 덮고 집에 있는 육아서들을 다시 꺼내어 정독하기 시작했다. 마음의 여유는 없고 시간은 더욱이 없기에 빠르게 읽어야 한다. 우리 아기가 잘 크고 있는지, 내가 양육을 잘하고 있는지 늘 궁금하다. 몇 달 전 남편이 철야하는 새벽 3시에 혼자 이유 없이 울기만 하는 아이를 재우고 엎드려 육아서를 읽던 날이 떠올랐다. 마음이 급해 앉지도 못하고 엎드려 읽다가 인터넷 서점에서 책 여러 권을 주문하기도 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무 확신이 없었기에 눈물로 책을 읽었다. 궁금한 것을 해소하고 싶어 애타게 찾았지만 종종 마음을 어지럽히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 있었다. ‘엄마가 강해야 한다.’ ‘엄마가 흔들리면 집이 흔들린다’. 아이 양육 육아서들이 나에게 얼마나 도움을 줬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때의 힘들어서 육아서를 찾던 날의 고민은 시간이 흐른 지금, 자연스레 해결이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
궁금한 정보를 적당히 찾아보고 양육과 관련된 육아서는 덮었다.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책은 멀리 치웠다. 그리고 변화무쌍한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잘 견디고, 아이를 잘 키웠다고 스스로 칭찬해주기로 했다. 아직도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은 당연한 반응이고 흐름 중의 하나라고 나에게 얘기해 주었다. 남편도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잘해나가고 있다. 내가 인정을 해주지 못하고 더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서 그렇지, 실로 그는 아기와 나에게 큰 나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우리 아기는 감기와 예방주사 맞으러 병원 간 일 말고는 크게 아픈 것 없었고 걸음마하고 옹알이도 크게 하면서 잘 크고 있다. 살면서 이토록 힘들고도 사랑스러운 순간이 있었을까. 걱정은 접고 거울 보며 웃어보자.
2019년 마지막 날에 셀프 칭찬하고 자축하며 마무리한다. 저녁에 그가 퇴근해서 오면 아이와 함께 까꿍놀이로 깔깔깔 웃으며 행복한 저녁 맞이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