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 김연수.
지금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대답하는 데는 손 옆에 있는 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내가 무엇을 찾고 어떤 문장을 찾았고 인덱스를 붙였는지 만 봐도 내가 무슨 고민을 갖고 관심 있어하는지 알 수 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순간순간 바뀌기도 한다. 종종 침울한 뉴스와 상황 속에서 우울하고도 그릇된 상념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낼 때도 많다. 달라질 것 같지도 않은 현실을 비난하고 회의감에 물들어 있던 우리에게 책 속의 문장은 희망을 말한다. 문장 하나만으로 작고 얕은 생각을 깊게 만들어주고 있다.
얄팍했던 생각을 더 깊게 만들어 주고 있는 작가가 있다. 소설가 김연수, 그가 낸 소설도 여러 권이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작가다. 몇 년 전에 난 ‘임경선’ 작가의 글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책은 모조리 다 읽었다. 이제는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읽고 싶어 졌다. sns에서 (다른 몇몇 작가들이 언급되어 있었지만) 김연수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는 짧게나마 적혀 있었다. 서점에 가니 책장에 김연수 작가의 책이 생각보다 많았다. 이렇게 집필한 책이 많을 줄 몰랐다. 알지 못했고 책 한 권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왠지 난 부끄러워졌다. 책 장속의 그 많은 소설 중에 이상하게도 난 산문집을 골랐다. 소설가로 유명한데 소설이 아닌 산문이 더 읽고 싶었다.
커피 한 잔을 하며 책을 편다. 피식 웃음 지으며 가볍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간다. 이내 다시 돌아가 읽고 또 읽어야 할 만큼 깊숙이 파고들어오는 문장이 등장한다. 나는 그의 담백하고도 재치 있는 글을 좋아한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책을 다시 찾아야 기억할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꼭 기억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품고 있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처음에 이 문장에 닿았을 때 단번에 마음이 찡해져 왔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할 수 있는 일’ 하루 종일 생각했다. 이 문장은 나를 떠나지 않고 아예 마음속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앉았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뭘까, 잘하고 있는 걸까, 지금의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물음표들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어떻게 답을 할 수 있을까. 동시에 답을 알고 싶었다. 해결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책을 폈다.
첫인상이 이토록 강렬했다. 작가가 어린 날에 읽었던 문장과 기억을 시시콜콜 쓴 이야기가 나를 흔들어 놓았다. 회사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로 수렁에 빠져 힘들어하던 나를 건져 주었다. 변하지 않는 일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던 나에게 웃으며 장난을 걸어주었다. 몇 년 전에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가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되었고 문장으로 남아있다.
그의 인터뷰나 여러 글을 읽고 있으면 ‘이해’란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소설을 쓰는 과정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이라 말한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왜 소설을 읽는 걸까? 지금 현실에서 잠시 나와 머리를 식히기 위해 회피성으로 읽고 있는 건 아닐까. 소설을 읽으며 그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싶었다. 나와 다른 곳에서의 삶은 어떨까 궁금했다. 그 속에 들어가 상상하며 읽길 좋아했다. 작가가 말하는 ‘이해’를 소설 속에 들어가 살면, 가능할까.
나는 삶의 어느 특정한 순간에 나만이 느꼈다고 생각했던 뭔가를 또다시 누군가도 봤으리라고 짐작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기이하면서도 따뜻한 경험인지 깨닫게 되었다.
<세계의 끝 여자 친구> 김연수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공감한다는 것, 문장 그대로 내가 온전히 몰입해서 할 수 있을까?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만큼 오만한 생각이 또 어디 있을까. 상대방의 환경에 살고 있지 않은데, 그가 말하는 내용으로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보는 것일 뿐이다. 한 사람의 말에서 들은 내용으로 공감은 하려 하지만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말은 어느 순간 쏙 들어가 버렸다.
어쩌면 소설을 읽으며, 빠져 들어가면서 가능케 할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의 삶 속에 들어가서 보면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결국은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이,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일상을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이나마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커지고 깊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들의 삶은 어떤가, 전혀 몰랐던 여러 사람들의 삶이 소설에 담겨 있었다. 이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수 있다. 소설을 읽는 나의 마음이 바뀌는 지점이다. 점점 그가 쓴 글이 좋아지고 그의 다른 책을 책장에 한 권씩 채워놓았다.
신간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절 일기>, 쾌락 독서라 지칭하며 이유 없이 샀다. 책의 사전 정보 전혀 없이 첫 장을 넘기며 읽기 시작했다. 작가가 겪은 사회적, 역사적인 순간에서 써 내려간 글이었다. ‘시절’에 초점을 맞춰서 읽는 게 좋을 듯했다. 마음 깊이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던가 하면 어려울 때도 있어, 읽다가 다시 돌아가서 곱씹어보며 읽었다. 다 읽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아직도 계속 생각나는 건 ‘세월호’ 사건 위에서 작가가 써 내려간 문장들이다. 그 시절에 나는 뉴스를 보고 읽으며 분노에 차 있었다. 어떻게 저 크나큰 배가 침몰할 수 있으며, 시간은 있었는데 왜 승객들은 구조되지 못한 채 끝이 났을까. 이해 안 되는 말들일 오갔고 유가족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과 ‘이제 그만 좀 했으면’하는 말들이 나왔다.
읽는 내내 미안했다. 과거의 내가 제대로 된 뉴스를 보기보다는 클릭을 많이 한 시답잖은 뉴스를 보았음을,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던 것을, 약자의 고통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음을 말이다. 이제 우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한번 시작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는 없다고, 다만 사람은 잊어버린다고,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사람은 기억해야만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그들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시절 일기> 김연수
세상일에 대해 무관심하며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깨워주었다. 희망이 보이게 해 주었다. 어쩌면 이대로 잊혀 질지도 모르는데, 글로 남기고 책으로 세상 밖으로 꺼내 줘서, 나를 제대로 깨우쳐줘서 작가에게 고마웠다. 구멍이 반짝거리지만 너무나 작은 구멍이라, 지금 우리가 있는 이 터널 속이 캄캄할지라도 우리는 앞을 헤쳐 나갈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그는 책에서 말한다.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우리는 문학을 읽으며 앞날을 상상하며 희망을 부른다. 소망한다.
작가가 쓴 문장 하나가 마음에 스며든다. 일상을 돌아보고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헤아려보기도 한다. 책에서 만난 문장은 인생은 살아볼 값어치가 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래서 더 책을 읽으려고, 구하려 한다. 문장이 좋아서 읽게 된 책이 비뚤어진 마음가짐을 조금씩 바뀌게 했다. 힘들고 암울한 날이 지속되는 지금, 김연수 작가의 책 한 권을 건네고 싶다. 우리가 사는 일상에는 어렵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매일 기다리고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만을 돌볼 게 아닌,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이해가 깃든 사회에는 분명 희망이 싹트는 멋진 곳이 된다고 주저 없이 말하고 싶다.
웃음 짓고도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김연수 작가의 글, 계속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