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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Sep 13. 2016

생각공장의 시선 - 예수는 원조 사회주의자다!

연대를 외치는 예수와 칼 마르크스






예수와 칼 마르크스     


쿼바디스라는 한국 대형교회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이 존재하는 현실 그리고 기업가와 노동자 사이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서 기업가들이 던져 놓은 몇 안 되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온갖 스펙으로 무장한 대졸 예정자들이 벌 떼 같이 달려드는 현실을 예수와 칼 마르크스가 지켜 본다면 이 두 유대인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언뜻 보면 경제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역사가이기도한 칼 마르크스와 예수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예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그저 하느님의 아들, 그리고 죽으면 가는 하느님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존재, 혹은 세상의 불의 앞에서나 개인적인 불행 속에서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해 주거나 위로해 줄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물론 기독교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원죄를 용서해주기 위해 자신의 피로 기독교인들을 구원한 하느님일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칼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었고, 일반 기독교인을 포함해서 시민들 다수가 생각하는 그런 영적인 구원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 즉, 하느님이 모세에게 준 경제적인 법을 기원 후 1세기 지중해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시민운동을 벌였던 현대적인 의미의 정치인이었다. 칼 마르크스도 자주 레닌과 함께 연결되면서 공산주의 혁명가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그의 대표저서인 자본은 공산주의와 관련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에 관한 분석과 비판이 주된 내용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와 칼 마르크스는 둘 다 유대인이었고 이 두 역사적 인물의 지향점이 자신들이 살았던 바로 그 세상에 대한 개혁과 변화였다. 예수는 로마 제국주의 치하의 정치, 경제제도 하에서 상처 받은, 그리고 경제적으로 착취 받은 민중을 위한 현대적인 의미의 시민 운동가였다. 마찬가지로, 칼 마르크스는 여덟 살 이하의 아이조차 공장이나 탄광에서 하루에 열 두 시간씩 노동하는 유럽의 현실에, 그리고 19세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영국 리버풀의 노동자의 평균 수명이 28세였을 정도로 혹독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분노했던 철학자였고 동시에 경제학자였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예수가 추구했던 하느님의 나라가 어떤 성격을 가진 운동이었는지, 그리고 이 예수운동이 19세기 산업화를 겪었던 유럽에서 등장한 사회주의와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더 나아가서 예수와 칼 마르크스가 2016년 헬조선을 살고 있는 우리와 한국 개신교회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의 경제현실에 대해 어떤 진단과 처방을 내 놓을지에 귀 기울여 볼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와 마르크스 둘 다 힘 없는 다수의 노동자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아파하고 그 현실에 대안적인 삶에 대한 처방을 내 놓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와 로마제국     


1세기 지중해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일어났던 예수 운동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사건은 예수의 귀신 축출 사건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들인 귀신과 사탄을 물리치는 권력을 가졌고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귀신 축출 사건이라고 배웠을 것이다. 마가복음 5: 1-20절에 나오는 이 귀신들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성서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기독교 근본주의 (fundamentalism)의 한 특성이며, 이러한 해석은 예수 운동이 가지는 정치적인 해석을 희석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귀신 들린 남자 속에 있는 귀신은 군대 (legion)인데 이 귀신은 예수를 보자 자신이 근처에 있던 돼지 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예수에게 요청한다. 예수가 이 요청을 허락하자마자 무리의 귀신들은 돼지 떼로 들어가고 이어 이 돼지들은 강으로 빠져 익사한다. 여기에서 군대 (legion)귀신이 자신들을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청한 부분에서 예수의 청중들은 즉시 이 요청이 갖는 함의를 인식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돼지는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동물이면서 동시에 시리아 지역에 주둔했던 로마군대를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이 귀신들린 사람의 축출 사건을 들었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군대에 의해 저질러진 세포리스와 막달라 지역에서의 수천 명에 이르는 유대인 학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마가복음 5장에 기록된 귀신 축출 사건을 듣고 있던 마가 공동체의 청중들은 예수를 모세가 자신들의 조상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켰던 것처럼 기원후 1세기 로마 제국주의에서 유대민족을 구원할 구원자로 여기게 된다. 모세는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영웅이자 해방자이다. 홍해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과 모세를 뒤쫓던 이집트의 군사들이 빠져 죽는 사건과 1세기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군을 상징하는 돼지 떼에 그 군대 귀신이 들어가 강에 빠져 죽는 사건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마가복음 5장에서의 귀신들림은 문자 그대로의 귀신들림이 아니다. 유일신 야훼를 섬기는 유대민족은 또 하나의 유일신인 로마제국의 황제를 신으로 섬길 수 없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독립운동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조국의 독립보다는 자신들의 민족신인 야훼에 대한 유대인들의 의무로서 독립운동을 한다. 독립 운동의 반복된 실패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이 일어나고 이로 인한 유대인들의 심리적인 상처와 고통이 귀신들림의 형태로 마가복음 5장에 기록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1세기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이런 귀신 축출 행동은 로마제국의 통치로부터 상처받은 자신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예수 당시의 청중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로마 군인들에 의해 처참하게 가족들이 학살되는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이 귀신 축출 사건은 로마 제국의 지배에 정신적인 상처나 피해를 입은 예수의 청중들에게 이제부턴 로마황제의 지배가 아니라 유대민족의 진정한 유일신인 하느님의 지배가 이루어지는 즉, 하느님의 나라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해되었다.


유대민족에게 미친 제국주의의 영향은 고스란히 유대의 종교 엘리트들이 아닌 민중에게로만 향했다. 종교 엘리트들에게 십일조의 형태로 바치던 세금에 더해 로마 제국에까지 세금을 납부하게 되면서 유대 민중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로마 제국의 경제 제도가 평등주의에 기초한 유대민족의 경제제도를 대체시켜버린다. 로마제국의 경제제도 때문에 예수의 청중들은 자신의 집과 농사지을 땅을 잃고 떠도는 홈리스 (the homeless)가 되어버렸다. 로마제국이전의 유대인들의 경제제도는 안식년 제도로 특징된다. 모든 채무가 매 칠년마다 탕감되고, 노예도 칠년마다 해방될 수 있는, 땅도 칠년에 한 번씩 휴식기를 가지는 그리고 자신의 문 앞에서 굶고 추위에 떠는 방랑자를 보면 손님으로 맞아서 따뜻한 음식과 옷으로 환대하는 유대인들의 전통은 로마제국의 경제제도에 밀려 사라지게 된다. 로마제국의 경제 제도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부랑자들을 돌 볼 의무도 없어졌고, 이중적인 세금 때문에 간신히 자신들의 가족만의 생계를 꾸릴 정도로 가난해졌기 때문에 이웃을 돌볼 여유도 없어졌다. 안식년 제도의 붕괴로 평등한 농민 사회였던 유대 공동체는 와해되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유대 공동체의 농민들은 자신의 땅을 도시의 지주들에게 담보로 맡기게 되면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며, 경제적인 자유를 보장해 주었던 토지를 영원히 잃게 되었다. 안식년이 돌아와도 이 잃어버린 농지는 다시 농민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농사지을 땅을 잃은 예수의 청중들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 떠도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도시와 농촌지역의 채권자인 지주들은 로마제국의 법의 혜택으로 막대한 부를 형성한다. 예수를 찾아 온 부자 청년 (마가 10:17)도 로마제국의 경제제도의 수혜자 중에 한 명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제국주의의 경제제도에 피해를 입은 다수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땅과 집을 잃고 홈리스로 떠돌게 된다. 십일조를 종교지도자들에게 바치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위로받아야 할 다수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종교 지도자로부터 ‘죄인’으로 낙인찍힌다. 단순한 낙인이 아니다.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게 되었다는 공식적인 선고다. 단지 십일조를 당시 기득권층인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에게 납세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현세에서 뿐 만 아니라 내세에 대한 희망마저 박탈당한 청중들에게 예수는 이렇게 선언한다.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천국이 너의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6: 20). 이러한 선언은 예수운동의 성격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마태복은 6: 9-13절의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자 즉, 채무자의 빚을 용서 (탕감)해준 것처럼 우리의 채무를 탕감해달라는 매우 구체적인 경제적인 요청도 예수운동의 특성을 잘 드러내 준다. 위의 두 가지 예수의 선언과 요구는 로마 제국의 경제제도로 인해 잃어버린 안식년 제도의 복원을 요구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로마제국의 피해자인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더 이상 피해자로 혹은 죄인으로 비난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예수운동은 로마제국의 지배 이전의 모세의 법에 근거한 과거의 평등했던 유대인 농경 공동체의 복원을 요구하는 매우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시민운동이었다. 예수의 관심은 오직 자기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로 그 땅에 하느님의 뜻 즉, 모세를 통해 유대민족에게 준 하느님의 법을 실현시키는 것이었다. 그 하느님의 법은 평등한 경제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이었다.  


실제로 모세의 법인 십계명은 정치적이면서 경제적인 유대공동체의 헌법과 같은 기능을 했다. 십계명은 정치적인 문제와 사회경제적인 관계를 규정하는 부분으로 구성된다. 십계명의 전반부는 로마 제국의 황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신인 야훼와의 독점적인 충성과 관계있는 약속이며, 후자의 마지막 여섯 가지 명령은 경제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조항이다. 왜냐하면 이 여섯 가지 조항의 목적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권력을 가짐으로써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들이며 동시에 각각의 가정을 공동체에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만들 수 있기 위한 조항들이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 이전까지 유대 공동체는 실제로 가족의 사회, 경제적인 권리를 보장해주는 모세의 법의 원칙에 따라 사회, 경제적인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을 유지해왔다. 이것은 예언자 미가의 비판에 의해서도 확인이 된다. 여기에서 미가는 정치적으로 강자들과 성전의 전체 제도에 대해 비판한다. 왜냐하면 대제사장들이 경제적으로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세의 법은 예수 당시에도 갈릴리에서 깊게 뿌리박혀 있었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근거로 힐렐의 조항을 드는데, 이것은 땅에게 매 칠년마다 휴식을 주는 희년에 대한 조항이다. 물론, 사해 문서에서도 이 조항은 나타난다. 또한 마태 공동체의 탄원인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이란 문장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은 이 땅에서 바로 이러한 평등한 경제 공동체를 지향하고 동시에 보장하는 모세의 법이 1세기 지중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복원되는 것을 의미한다. 갈릴리와 같은 농업 중심의 공동체에서 성공했던 예수운동은 성전을 중심으로 이해관계를 구축한 예루살렘에서는 결국 실패한다. 왜냐하면, 예수운동 자체가 친 로마적인 성전 엘리트들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운동이었고 이로 인해 예수는 처형된다. 예수운동은 여기서 실패한다. 하지만 예수가 처형되고 나서 약 1800년이 흐른 후에 같은 유대인인 칼 마르크스가 유럽에 태어난다. 자본가들이 이윤 추구를 위해 도시 노동자들과 그의 어린 자녀들의 노동력까지 착취하는 19세기 유럽에 사회주의를 가지고 그는 등장한다.      






사회주의의 등장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평을 살펴보기 전에 근대의 사회주의가 어떻게 그리고 어떤 정치, 경제, 사회적인 변화 속에서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근대의 사회주의는 19세기 초기 유럽에서 등장했다. 매우 급격한 경제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변화가 사회주의의 등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물론 이러한 경제, 사회적인 변화는 도시화와 산업화와 관련이 있었다. 이러한 당시의 유럽의 변화는 농촌 경제를 파괴했으며 또한, 전통적 질서를 떠받치고 있는 사회의 규범과 가치를 붕괴시켜버렸다. 당시의 진보주의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환영했고 동시에 이러한 변화를 진보와 자유의 실현으로서 받아들였다. 자연스런 결과로 자본주의 경제 모델과 새롭게 등장한 개인주의를 진보주의자들은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의 이러한 견해에 두 가지 측면에서 동의하지 않았다. 첫째로, 사회주의자들은 개인주의보다는 공동체, 협력, 그리고 연대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체나 연대의 가치가 당시의 사회, 경제적인 변화 즉, 도시화와 산업화와 관계된 사회의 변화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고 사회주의자들은 생각했다. 둘째로, 산업화에서 기인한 진보를 환영하기보다는,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산업화가 촉발시키고 있는 불평등에 더 많은 염려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전의 농부들과 장인들이 인구과밀의 도시로 대규모로 이동하게 되면서, 비참할 정도로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서 사회주의자란 용어가 처음 ‘런던 연대’라는 잡지에서 1827년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과 비평 - 99% vs. 1%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평은 역사적 유물론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이론은 인간사회가 과거부터 현재 까지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관계없이 항상 지배 계층과 지배를 받는 계층이 존재하는데 이 둘을 가르는 핵심적인 요인은 누가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고 이 생산수단의 활용으로 발생한 이윤에 대해 통제권을 누가 가졌는지가 각 사회의 지배자 계층을 결정한다고 한다. 동시에 이러한 지배자들은 자기들의 권력과 이익 추구를 정당화시켜줄 수 있는 제도와 법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시켜 왔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느 사회나 적대적인 두 계층이 형성되고 이 두 계층은 서로를 인식하게 된다. 물론 이 두 계급은 19세기 유럽의 마르크스의 시대에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의미했다. 마르크스는 이 두 계층 간의 갈등이 자본주의가 갖는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구조적인 내부 갈등으로 인해서 자본주의는 스스로 붕괴될 것이며 이런 경쟁하는 두 계층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특성이라고 마르크스는 파악했다. 마르크스의 노동의 가치이론과 잉여가치에 대해 살펴보면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붕괴론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이론에서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노동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노동의 교환 가치는 노동이 만들어 낸 상품의 가치보다 크지 않았다. 쉽게 설명하면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월급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노동으로 생산한 전체 가치에서 노동자들의 월급을 주고 난 후의 나머지 가치는 어디로 갔을까?'란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게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다. 좀 쉽게 설명해 보면, 노동자가 상품을 생산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된 상품의 가치가 이 상품을 만들어낸 노동자의 노동가치보다 훨씬 크다. 그럼 사장은 상품을 팔어서 얻은 이익으로 노동자에게 월급과 여러 비용지출을 하고 난 다음에도 남는 이익이 발생한다. 이 남는 이익이 잉여가치 (surplus value)다. 잉여가치에 대해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하나 더 예를 들어보자. 한 노동자가 오전 4시간을 근무하면서 오만원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데 이 정도가 가족의 하루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가치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오후 네 시간 동안에 또 다른 오만원의 가치를 자신의 노동력을 이용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바로 이 오만원이 잉여가치이다. 19세기 산업화 시대가 만들어낸 이 두 적대적인 계층은 바로 이 잉여가치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이 두 계층이 자본가와 노동자이고 바로 이 구조적인 싸움이 자본주의를 지속불가능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마르크스는 분석했다. 공장과 기계와 같은 생산수단을 가진 사장은 잉여가치를 더 많이 자신의 이윤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의 월급을 최소한으로 유지시키고, 반면에 노동자들은 더 높은 월급을 요구하면서 사장이 가질 수 있는 잉여가치의 크기를 줄이려고 하는 계속된 갈등이 자본주의를 구조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마르크스는 분석했다.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이 하나 더 있다. 자본가들은 생산설비의 근대화를 통해서 이윤을 더 극대화시킬 수 있다. 왜? 인건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시에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잉여가치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공장의 생산설비 근대화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떨어뜨리고 이것은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감소시킨다. 생산시스템의 근대화는 상품의 공급과잉도 불러 온다. 문제는 이러한 공급과잉이 노동자들의 구매력 감소의 상황과 동시에 발생하면서 여러 공장들은 판매감소로 인한 이윤 감소로 문을 닫게 된다. 결과적으로 전체 노동자들의 구매력 감소는 한 층 더 심해지면서 전체 공장과 기업의 이윤은 더 감소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고 시장에 가해지는 위기의 충격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자본주의는 스스로 붕괴될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더 비참해 진다. 하지만 마르크스에 따르면 모든 것이 시장의 구조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노동자들의 정치적인 활동이 필수적이라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반복되는 위기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의 원인에 대해 점점 더 깨닫게 되고 즉, 노동자 자신들의 경쟁자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자본가들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약자인 다수를 보호하는 사회주의적인 동시에 혁명적인 의식을 서서히 가지게 된다. 자연스런 결과로 노동자들은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을 통해서 국가 권력의 장악에 집중하게 된다. 실제로 마르크스가 예측한대로 자본주의의 발달과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의 의식적인 연대가 유럽과 특히, 북유럽국가들, 예를 들면,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와 같은 국가들에게 나타났다. 이러한 연대의 결과로 다양한 복지제도가 정착되면서 불평등의 정도가 많이 완화되었고 건강한 사회의 한 척도로 여겨지는 사회적 이동성 (social mobility; 계층 간 이동성)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도 상당히 유연해졌다. 북유럽 국가들에서 부모의 사회, 경제적인 지위가 더 이상 자신의 자녀들에게 반드시 부모 자신들과 똑같은 사회, 경제적인 지위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유럽의 다수의 국가들에 20세기를 전후해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이 정치 세력들이 유럽 대륙의 정치, 경제적인 상황을 약자인 다수를 배려하고 보호 (사회주의 정신)하는 문화로 변화시키게 된다.   






다시 예수와 마르크스     


두 명의 위대한 유대인 예수와 마르크스가 지향한 사회 변혁 운동은 이 두 운동 모두 아래로부터의 운동, 자본주의 비판, 그리고 힘없는 자들의 연대라는 공통된 특성을 가진다. 마가복음 10: 17-26절에 부자 청년이 예수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질문하는데 예수는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나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지만 부자 청년은 고개를 내린 채 슬퍼하며 돌아간다. 이를 보고 예수는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작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말한다. 이것은 분명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왜냐하면 안식년 (희년)에 빚의 탕감을 하지 않음으로서 축적된 부는 하느님의 법 (모세의 법)을 어긴 것을 의미하고, 이 법의 위반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배제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자본주의가 마치 성경처럼 중시하는 ‘내 것은 내 것이다’는 명제는 예수의 의해 반박된다. ‘정의롭지 못한 경제제도를 통해서 얻어진 너의 것은 더 이상 너의 것이 아니다’고 예수는 분명히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경제적인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 경제제도는 하느님의 법과는 거리가 있다는 예수의 주장은 마르크스에게서도 나타난다. 자본주의에서 잉여가치에 대한 자본가들의 독점은 분명 정의롭지 못하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잉여가치는 시민 다수의 경제적인 평등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재분배되어야 한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예수는 힘없고 소외된 농민들과 세리, 창녀들과 함께 연대했으며, 예수와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도 엥겔스와 함께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전 세계의 노동자들에게 연대를 요구했다. 예수가 바로 원조 사회주의자다! 이렇게 표현해도 될 듯 싶다. 예수는 마르크스의 쌍둥이 형이 아닐까? 물론 대략 1800년 이라는 시간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 기독교인과 대학생들에게 예수와 마르크스란?     


천 이백 만 명의 신도수를 자랑하는 한국기독교는 어느 집단과 연대해왔는지를 물어야 한다. 굳이 쿼바디스라는 다큐멘터리를 언급하지 않아도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한국 개신교의 돈, 그리고 보수 권력과의 연대는 더 이상 한국 개신교회가 예수와는 상관없는 기득권 집단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적이 되어버린 교회에서 매년 한 해도 어김없이 성탄 축하예배가 예수를 기념하며 드려지는 이 황당한 일들이 대한민국 개신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교회기업의 상업성과 보수 개신교의 권력과의 연대가 내뿜는 쩌는 냄새가 대한민국의 성탄절을 가득채운다.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누구와 연대해야 할 지 고민할 시간이 되었다고 세종은 믿는다. 예수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교회의 바램은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떻게?? 가난한 자,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된 노동자, 다양한 종류의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와 연대하면 예수는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 부활한다. 이렇게 부활한 예수는 현재 헬조선의 대학생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스펙 쌓는 거 잠깐 멈추고 누구랑 힘을 합쳐야 할지 생각해봐!' '수많은 종류의 다양한 스펙으로 기업이 던져준 눈곱 만한 양의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지말고 기업과 정부에게 당당하게 요구해! 그러면 니네가 얻을 수 있는 파이의 크기 즉, 니네들이 나눌 수 있는 잉여가치의 크기 혹은 취업의 기회가 커질꺼야!' 예수와 마르크스의 눈에는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서로 경쟁하기 보다는 기업과 정부에게 더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펴라고 함께 연대해서 당당하게 요구하는 행동이 훨씬 더 쉬운 해결책으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생들이 같은 편인 예비 노동자인 동료 대학생들과 경쟁하는 것은 경쟁을 통한 효율성 극대화라는 자본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에 조종당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잉여가치에 대한 정당한 분배 그리고 이를 위한 경쟁은 노동자와 자본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경쟁이 같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혹은 같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은 경쟁의 대상이 잘못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넌센스다!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이 경쟁해야 할 대상은 자신들과 같은 대학생과 노동자가 아니고 자본가들과 그들의 해결사 역할을 해주는 정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위대한 두 유대인 예수와 마르크스가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를 힘겹게 살아가는 다수의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한국교회에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목소리다.










                                            

Bibliography      


Eom, Y. J. (2011), Jesus Movement as a Movement of Itinerant Charismatics (Submitted to Center for religion and society at the University of Bonn, Germany as a Master thesis; Un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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