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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Jul 06. 2018

예멘 내전과 난민

우리 인류는 지구라는 행성에 더불어 사는 형제자매다!








난민이란?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한 사회의 집단에 속하거나 다른 정치적인 견해로 인해 박해당할 합당한 이유가 있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치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국제 인권법은 난민을 인종, 종교, 국적, 성별, 성적 지향,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난민지위를 보장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달해 왔다. 난민에게 법원, 초등교육, 일자리의 접근권을 보장하고,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국가 내에서의 여행을 보장해야 한다.                 


-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과 보충협약에서 - UNHCR (유엔 난민 기구) -






예멘 내전은 왜?


현재 예멘 내전의 시작은 2011년 '아랍의 봄'에서 시작된 예멘 시민 혁명에서 시작되었다. 이 혁명으로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가 물러나고, 그의 후계자인 압두르브 만수르 하디가 권력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후티 반군이 정치, 경제적인 목적으로 하디를 몰아냈다. 이게 2015년이다. 하디 대통령은 외국으로 도피했다가 돌아와 정부군을 예멘 남부에서 이끌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여덟 개의 수니 동맹국,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을 포함한 서방이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다. 반면에 후티 반군은 이란의 은밀한 도움으로 정부군과 대치하고 있다. 정부군이 후티가 점령한 곳을 봉쇄하면서 이란의 무기 지원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의 인도주의적인 원조까지 차단당하고 있다. 물론, 이란은 후티 반군을 돕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알카에다와 이슬람 국가(ISIS)까지 이 혼란 상황을 틈타 예멘 내에서 세력 확장을 도모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 상황은 예멘인들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풀 수 없어 보인다. 자연스럽게 전문가 대부분은 이러한 복잡한 세력 관계 때문에 내전 상황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거로 예측한다. 당연히, 그동안에 예멘인들의 고통도 기약 없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와 서방이 주도하는 공습이 병원마저 폭격해 파괴된 모습






현재 예멘 상황 - 오십 년 만에 나타난 최악의 인도주의적인 대참사


예멘 총 인구 2천 7백만 중에 식량 위협에 직면한 인구가 천 칠백만명, 마실 물을 구하기가 힘든 인구가 천 사백만명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예멘에 UN을 비롯한 70여 인도주의 단체가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군의 봉쇄 전략으로 인도주의적 활동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UN 난민 고등 판무관 사무소에 따르면, 현재 예멘 인구의 대략 4분의 3이 긴급하고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고 한다. 이들 대부분이 끼니를 때우면서, 다음 식사를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전해진다. 예멘은 내전 이전에도 중동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였다. 내전이 일어나면서, 깨끗한 물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심지어는 콜레라 같은 예방 가능한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 콜레라로 수백 명이 희생당할 정도로 기본적인 의료 인프라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멘인 수백만 명이 이동식 피난처에서 삶을 살고 있다. 최근 3년간의 내전으로 인해, 예멘 상황은 인도주의적인 활동을 하는 국제단체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원조를 위한 기금 모금액도 턱없이 모자란 상태다. 대략 천이백만 명을 돕기 위해 UN이 대략 2조 정도 원조를 국제 사회에 요구했지만, 2017년 1월 기준으로 7% 정도만 모금된 상태다. 폭력과 식량, 물, 피난처의 부족으로 인해 최악의 대재앙 상태인데, 예멘은 그에 걸맞은 세계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단 사실은 더욱 안타까운 점이다. 특히, 예멘 아이들이 이 참사를 고스란히 겪고 있다.    

5세 이하의 오십 만명 이상이 심각한 식량부족으로 인해 극심한 영양부족 상태






인도주의란?


인도주의는 인간의 복지를 도모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는 하나의 실천적 원칙이다. 인도주의는 모든 인간은 그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야 하며,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견해다. 그러므로 인도주의자는 보편적으로 인류의 안녕을 촉진하기 위해 애쓴다. 인도주의는 부족 주의와 인종적 민족주의로 대표되는 '우리 대(vs.) 그들'이라는 사고방식과 대립한다. 인도주의자는 노예, 기본적인 인권의 침해, 피부색, 종교, 혈통, 태생과 같은 것에 바탕을 둔 차별에 강하게 반대한다. 인도주의는 우리가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한다. 인간으로 인해 발생한 재난의 한 복판에서 인간의 가치를 지키며, 고통을 완화하는 일에 참여하게 한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인도주의를 이렇게 정의했다. "인도주의는 특정 목적을 위해 인간을 절대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에 바탕을 둔다."  






인도주의를 반박할 수 있는 논리?


예멘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여러 이유 중에 테러 발생 가능성에 대한 염려가 있다. 테러리즘 전문 학자에 따르면, 정치 세력이 교통사고로 사망할 가능성보다 훨씬 낮은 테러 위협을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한다. 실제로, 최악의 테러였던 9/11 때 세계 무역 센터의 붕괴로 민간인 3천 명 정도가 생명을 잃었다. 하지만, 미국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연간 3만 명이 넘는다. 우리나라 또한 연간 4-5천 명 정도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테러 위협을 강조하는 정치인과 그 세력이 진정으로 시민의 안전을 걱정한다면, 음주운전이나 졸음운전에 대한 예방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운송 노동자들의 근무조건 개선과 복지향상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지난 정권에서 테러방지법이 야당의 기록적인 필리버스터에도 불구하고 통과되었다. 이 법은 국정원이 테러를 감행할 것으로 의심이 드는 사람의 계좌, 통신기록, 출입국 규제와 같은 조치를 법원의 영장 없이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난민 수용으로 테러가 걱정된다면,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국정원이 테러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테러에 대한 과도한 걱정보다는 음주 운전자나 졸음 운전자를 더 경계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아직, 상당수의 이슬람 국가의 문화적 수준이 특히, 여성 인권, 여성 상대 범죄나 성적 지향에 대해 근대 이전의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번 예멘 난민의 경우 난민 신청자를 다 받아준다고 해도 500여 명 수준이다. 여성의 지위 문제나 성적 지향에 있어 한국 사회가 맑은 물이라고 비유할 수 없지만, 그 물에 500여 명이 가진 이슬람의 퇴행적이거나 반동적인 생각이 고스란히 들어온다고 해도 우리 문화 수준은 충분히 그것들을 정화할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동남아시아 노동자(무슬림이 상당수)와 아랍인들이 우리 사회에 더불어 산지가 꽤 되었다. 그런데도 이슬람 문화가 우리 사회의 주류 문화 속으로 들어왔다는 주장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어떤 문화가 타문화보다 열등하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난민이 일으킬(?) 범죄 증가를 걱정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특히, 젊은 여성층이 그렇다고 한다. 한 진보 논객이 예멘 난민 이슈에 대해 말할 때, 외국인 노동자의 성범죄율이 내국인보다 훨씬 떨어진다고 주장한 걸 본 적이 있다. 나도 외국에서 상당한 기간을 체류한 경험이 있다. 외국에서 난민 신분으로 성범죄를 저지를 정도의 대담함을 가질 사람이 얼마나 될까? 범죄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2015-16년 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받은 독일은 작년인 2017년에 1992년 이래로 가장 낮은 범죄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https://www.independent.co.uk/news/world/europe/germany-crime-rate-migration-antisemitism-horst-seehofer-a8343226.html.​ 또 한편으로, 500명의 난민이 들어왔는데 일자리 감소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어도 못 하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뺏길 수 있는 직업이 과연 몇 종류가 될까? 예산 낭비를 걱정하기도 한다. 우리 경제력은 세계 10위 권이다. 시민이 낸 세금으로 그 정도의 공적 부조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난민 협정에 따르면, 난민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보호를 해 줘야 한다고 되어있다. 지구촌 공동체의 일원인 대한민국은 그 경제력에 걸맞은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대부분의 예멘인이 자국을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데 제주에 와 있는 예멘인은 특권층일 거라고 하면서 그들을 돕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한다. 설령, 제주의 예멘인이 특권층에 속한 사람이어도 그들의 난민 지위는 변하지 않는다. 자기 터전을 버리고 죽음을 피해 탈출한 이들을 다시 사지로 내 몰 논리를 찾을 수 있을까?






“우리 vs. 그들”의 사고방식을 예멘 난민에게까지?


뉴스 보도에서 좋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통학로를 막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실제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단독주택이나 구도심에 사는 아이들이 따로 논다는 보도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있는 “우리”와 없는 “그들”을 언제부터인가 나누고 있다. 우리는 이미 있는 자들의 오만함과 없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업신여김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우리 중에 누구도 힘 있는 자의 갑질과 오만함을 좋게 보지 않는다.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 또한 정치, 경제적으로 누군가 위에 있다. 우리도 상대적으로 낮은 정치, 경제, 사회적 지위에 있는 이들에게 비슷한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 남성이 여성을, 내국인이 외국인을, 다수가 소수자를 자기들이 가진 힘으로 억압하거나 편견을 가지고 차별할 때가 있다. 우리에겐 촛불을 들어 최고 권력자도 끌어내리는 민주적인 의식이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인권과 인도주의에 대한 가치를 존중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자주 목격된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모든 부분에서 균형 있게 성숙해지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한다. 갑작스럽게 경제 성장을 이룬 개인이나 국가가 전형적인 미성숙함을 보일 때가 종종 있다. 1980년대 소위 '강남 졸부'들에게서 문화나 인권과 같은 가치를 존중하는 행동을 볼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그 강남 졸부의 자식 세대는 '졸부'라는 딱지를 떼고 '강남좌파'가 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제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도 이번 기회를 통해 '졸부'라는 딱지를 떼야한다. 경제 수준에 걸맞은 세계 시민의식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우리와 그들 모두 존중과 존엄의 대상이란 인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는 민족주의를 넘어 세계 시민주의로(Cosmopolitanism)!


이번 논쟁은 국가 내에서 ‘우리와 그들’을 분리하는 것에서 시작한 바로 그 사고방식(mentality)을 똑같이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향해 적용하는 모양새다. 불안이다. 그 불안은 난민을 사지로 다시 내 몬다 할지라도 우리만은 안전해야 한다는, 우리가 먼저라는 우리 안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 안의 이기심을 아프지만 정직하게 마주하고 그 이기심을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하는 것이 괜찮은 시작이 될 듯하다. 이제 피부색, 종교, 성별, 성적 지향, 민족 등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존중의 대상이며, 내 옆의 한 사람, 한 사람은 나와 똑같이 존중받고 대우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렇게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소수 권력자가 땅에 그어 놓은 선으로 인해, 우리가 지구라는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지구가 준 선물을 공정하고 따뜻한 방식으로 나눠 함께 누려야 하는 형제자매임을 가끔 잊어버린다. 비, 바람, 물, 땅은 인간을 특정 기준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이런 공동의 것들에 의지해 살아간다. 우리는 지구에 빚지고 있다.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비, 바람, 물, 하늘 땅과 같이 아무런 차별 없이 그 산물을 타인과 나누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예멘 난민 수용 여부에 대한 논란을 통해 다시 한번 철 지난 민족주의에 대한 폐해를 목격할 수 있었다. 21세기에는 소위 '국경'이라는 이름으로 그어 놓은 선 안에 있는 사람이 그 선 밖에 있는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업신여기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공동체가 소중하듯, 너와 너의 가족, 그리고 너의 공동체도 소중하기에 함께 더불어 사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본다. 전쟁(1,2차 세계대전)을 불러일으키는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세계 시민주의를 실현한 유럽연합(EU)이 좋은 예다. 현재 여러 문제로 유럽연합이 위기에 직면해있지만, 유럽연합의 정신은 존중돼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을 기대하는 시대다. 통일로 이룬 평화의 기운이 한반도를 시작으로 세계 전역에 퍼져 남과 북을 가르는 경계를 허물어트리는 것처럼, 우리가 국가와 국가, 대륙과 대륙을 나누는 경계를 허물어트리는 평화와 세계 시민주의의 주역이 될 수 있길 희망해 본다.

2017년 1월 기준 폭격으로 자기 집을 잃고 임시 거처에서 살고 있는 2백만 명의 예멘인





     

세계 시민주의란?


세계 시민주의는 모든 인간은 공통의 도덕성에 바탕을 둔 하나의 공동체에 속한다는 이념이다. 세계 시민주의에 바탕을 둔 공동체는 포용적인 도덕성, 공통의 경제 관계와 정치 구조를 가지면서 다른 나라를 포용한다. 이러한 공동체에서 다른 지역 출신인 개인은 상호 존중의 관계를 형성한다. 물론, 이들 개인이 갖는 국적과 경제적 지위, 그리고 정치, 종교적인 신념은 다르다. 세계 시민주의는 한 도시에서 다른 인종, 문화, 종교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가까이에 모여 함께 살며 상호 관계를 맺는 것도 포함한다. 원래, 세계 시민주의는 '세계 국가' 즉, 모든 인류를 포용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자연스럽게, 세계 시민주의는 국가 간의 평화와 상호 이해, 관용, 그리고 상호 의존의 가치에 바탕을 두며, 평화와 조화를 상징하게 되었다.  






이 글은 예멘 난민에 대한 내 개인의 입장이다. 그러니 내 견해와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를 때엔 반대쪽의 입장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이 논쟁을 보는구나!라고 정도로 이해하길 바란다. 이 글을 쓰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썼다. 그런데 원치 않는 토론까지 하자고 하는 건 너무 힘들다.











이글의 모든 이미지는 아래 링크가 있는 BBC 기사에서 가져왔음을 밝힌다.

https://www.bbc.com/news/world-middle-east-34011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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