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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Aug 14. 2018

노회찬을 보내며.....

99%가 노동자인 나라에서 왜 노동자 정당인 정의당은 늘 소수당일까?







생각공장이 노회찬을 이제 보내며.......


진보 정치인 노회찬에 대해 내가 가진 정보는 언론과 팟캐스트(노유진)를 통한 것이 전부다. 그래서 그에 대한 좋지 않은 평판은 진보적인 신념을 가진 나는 그리 자주 들어보지 못했다. 다만, 대의 민주제에 대한 비평을 해 온 한 사람으로 나는 가끔 대의 민주제를 바탕으로 한 정당 정치의 틀에서만 노 의원이 생각하는 것 같아 조금 실망할 때도 있었다. 물론, 노 의원은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을 통해 민의를 대변하는 과정에서 왜곡을 줄이려고 시도한 후에 여러 직접 민주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순서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노 의원이 노동 운동을 시작하면서도, 그리고 국회의원으로서도 언제나 완벽하진 않았을 것이다. 완벽한 정치인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서로 모순 하는 행동을 하고, 어느 쪽에서는 탁월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매우 뒤떨어지는 불균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바로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며, 이런 사람들이 모여 싸우고, 논쟁하며 타협하는, 심지어 다시는 서로를 보지 않을 것처럼 비난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친한 척 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정치인 노회찬은 노동운동에 헌신한 것과 화려한 언변으로 깨어 있는 시민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지만, 그도 유혹에 때로 흔들리고 순간적인 판단에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노회찬은 여의도에 그 누구보다 더 청렴하고 소신 있는 정치인이었다.





 

왜 우리는 노회찬 대통령을 만들지 못했을까?

어떤 이는 '노회찬이 서울 시장이었다면 참 잘했을 텐데.'라고 말한다. 노회찬이 진보정당에 대한 꿈을 버리고 민주당으로 정치에 입문했다면, 노회찬은 분명 대중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대중의 지지를 받기에 상대적으로 충분한 대통령의 자질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그는 진보 정당을 택했고, 왜 우리는 그를 우리를 대변할 대통령으로, 적어도 서울시장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노회찬 의원의 선의와 열정은 알지만, 소수당의 정치인이 무얼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당이 작으니 노회찬 의원의 가치도 작게 보였던 우리의 편견 때문이었을까? 왜 그는 넓은 길을 택하지 않고 좁은 길을 걸었을까? 왜 있지도 않은 길을 내면서 지금까지 달렸을까? 그가 포기한 그 넓은 길은 분명 약자를 위한 길이 아님을, 그 길이 될 수 없음을 알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누군가는 민주당이 가는 길이 힘없는 우리를 위해 충분치 않음을 외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최소한 민주당이 갈 길을 조금이라도 왼쪽으로 끌어당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비현실적으로 들려도, 진보 정당이 시대를 앞선 생각과 정책으로 한국 사회가 마땅히 가야 할 곳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지 않았을까? 늘 그렇듯 그가 없는 세상에서 그의 가치가 더 깊이 있게 느껴진다.





99.9% vs. 0.1%가 경쟁하는 나라 맞아?


노동자가 99%인 나라에서 노동자를 대변하는 진보 정당이 채 10%의 지지도 못 받는 이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덩치가 큰 민주당이 권력을 잡아야 조금이나마 우리 사회를 진보하게 할 수 있다는 너무 전략적인 판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비겁함 때문이었을까? 이 용기 없음과 그 용기 없음을 덮으려는 우리의 자기 합리화가 진보 정치인 노회찬의 죽음을, 민주당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거운 가치를 가진 진보정당의 왜소함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내게는 진보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국회의원 당선만을 위해 민주당으로 향하는 너무나 현실적인 정치인 무리 보다 정의당의 의원 한 명이 훨씬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선거제도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해 온 노회찬과 정의당의 가치를 왜 이리 몰라주었을까? 바위가 무서워 자신을 던지지 못하는 수많은 우리를 대신해 자신의 몸을 던진 노회찬의 가치를 왜 이리 과소평가했을까? 평균 지지율 10%도 채 안 되는 진보 정당의 무덤과 같은 현실에서, 뻔히 지는 줄, 소수당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진보의 길을 걸었다. 정치적인 이해에 따라 당에서 당으로, 심지어 진영에서 진영으로 옮겨가는 철새가 여의도에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정치적인 수사 하나하나가 중도의 수많은 표를 자기 쪽으로 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노 의원은 중도 유권자의 입맛에 맞는 말보다 자신의 정치 철학을 소신 있게 말했다. 득표를 위해 신념을 팔지 않는 몇 안 되는 정치인다운 정치인이었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정치인 노회찬의 흠결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의 흠결을 보지 못하면서, 혹은 보면서도 정치인은 한 치의 실수도 저지르면 안 된다고 하는 이중 잣대는 이제 버려야 할 것 같다.



이제 노회찬을 보내며 우리가 그동안 보인 용기 없음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기회로 삼아 진보정당을 키우는 일에 최소한 투표로라도 그들을, 아니 어쩌면 유일하게 우리 편인, 남아있는 진보 정치인들을 지지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고인의 소망대로 이 땅에 진보 정치가 꽃이 피는 그 날에 노회찬의 죽음이 밀알이 되었다고 뜻있는 이들이 자신 있게 말할 그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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