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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Jun 17. 2019

김어준과 홍콩 시위에서

“거짓 민주주의”란 환상(illusion)을 이제 깨트려야 하지 않을까?






김어준의 진심과 환상(illusion)


홍콩 시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렸다고 김어준이 전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는 한 번도 누군가의 희생과 시민의 저항 없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민주주의의 길을 위해 싸워오고 쓰러졌던 것처럼, 홍콩 시민도 이와 같은 길을 향해 조마조마하게 한 발짝 용기 있는 걸음을 떼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어준은 홍콩 시민들을 응원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방송 첫머리에 밝혔다. 힘겨운 싸움을 위해 멀리서나마 응원해 주는 건 좋은 마음 가짐이라고 난 생각한다. 하지만, 난 왜 안타까운 감정이 들까?



민주주의에 대한 고정관념?


김어준이 너무 정치현실에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다른 대부분의 지식인이나 정치 관련 방송인들처럼 현재의 제도인 대의 민주주의라는 틀에 생각이 갇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이 법을 만들 권리를 위임했는 데 그런 엄청난 권력을 위임받은 국회의원이 시민의 뜻을 저버리고 입법권을 오용하거나 남용할 때, 아무 제지도 못하는 시민이 사는 사회가 진정 민주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한국에선 정치, 경제적인 사건이 법원에서 정의롭게 선고되길 원하며 초조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때마다 판사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따져 보며 노심초사해야 하는 시민이 사는 사회를 민주적이라 부를 수 있는가? 법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법을 활용하는 비양심적인 법관을 우리는 두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를 민주적이라 부를 수 있는가? 행정부는 어떤가? 시민이 낸 세금이 시민 상당수가 원치 않는 토목 사업이나, 자원 외교로, 그리고 창조 경제로 수십 조가 들어갔다고 한다. 그 구멍 난 독에 지금도 시민이 낸 세금이 들어가고 있다. 대통령 혼자 이렇게 시민 돈을 막 써도 그 돈의 주인인 시민은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 세금을 내고 그 세금에 대한 발언권도 못 갖는 시민이 사는 사회를 어찌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겠는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거짓 민주주의”란 생각의 틀을 깨야하지 않을까?


민주주의(democracy; people’s rule)는 삼권 즉 행정, 입법, 사법부가 가진 권력을 시민이 견제하고, 최종적으로는 이들이 가진 권력을 시민과 공유하게 될 때 민주주의는 완성된다. 현재의 정치제도는 정치 철학서를 아무리 뒤져봐도 민주주의라 부르지 않는다. 귀족주의 거나 과두제 정도다. 소수가 삼권을 독점해 다수 시민에게 이래라저래라 강요하고, 여러 정책이나 법을 자기들 맘대로 정하는 제도를 어떻게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겠는가? 어쩌면 김어준이 가진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한국 사회의 수많은 지식인과 학자도 간과하거나,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다들 자기 학문 분야에 갇혀 있거나 이런 지배  체제에 대의 민주주의란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온 현실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김어준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이 대의 민주주의라는 “거짓 민주주의”의 환상에서 하루속히 깨어나길 희망해 본다.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의 도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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