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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Aug 09. 2019

루소의 사회 계약론은 왜?

현대 인간은 야만과 문명 그 사이 어디쯤에 살고 있나?







우리는 야생 상태에서 문명으로 진화하긴 했나?

루소의 사회 계약론을 가르치다,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로 수렵 채집 생활하던 야생의 상태를 생각해봤다. 야생에서는 사자를 먹이 사슬의 정점으로 해서 초식 동물인 염소나 토끼로 이어지는 일종의 위계가 있다. 우리가 야생에 살던 때 누리던 자유 즉, 원하는 곳 어디서나 열매와 곡식을 주어 먹고, 어디서나 내가 키우는 염소를 풀 뜯게 하고, 사냥하던 자유를 포기했다. 이런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공동체를 이루어 문명을 이루며 살기로 했던 건 야생의 질서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사자가 느끼는 허기와 변덕이 약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그런 환경을 벗어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사자를 정점으로 토끼까지 내려오는 그런 위계질서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면 문명사회에 사는 현재 우리는 이런 야생의 질서에서 벗어났는가? 정치, 경제적인 위계(계층)부터, 모든 기관과 조직에서의 위계가 동물세계의 그것과 다른가?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 사회의 모든 위계 구조는 야생의 질서이지 문명사회가 본받아야 할 구조는 아니다!


모든 위계는 불평등이며, 동물 세계와 마찬 가지로 강자의 지배가 시퍼렇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문명인이라면, 이런 위계를 바탕으로 하는 현재의 모든 체제는 강자의 지배 즉, 동물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것을 해체하자고 계속해서 말해야 한다. 모든 위계를 해체하고 즉, 모든 지배의 관행을 폐지할 때까지 현 체제는 야생의 질서일 뿐이라고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계속 말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지배 관행과 야생의 질서가 사라지고, 진정한 문명의 도래가 이 땅에 움트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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