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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May 09. 2020

국뽕 주의보

사람의 가치에도 우열이란 게 과연 있을까?







우리가 특정 분야를 잘해서 민족적 자부심을 갖는 거 살짝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K방역, 봉준호의 오스카, 손흥민, BTS와 같은 K-pop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최근 두각을 나태내고 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한국인으로서 나도 기분이 좋아져 유튜브에 나오는 소위 “국뽕” 콘텐츠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행복한 기분에는 우리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무엇인가? 잘한다는 사실, 그리고 거기서 비롯한 우월감이 자리 잡고 있는 거 같다. 특정 분야에 앞서 있다는 것이 그 분야에 탁월한 국가가 다른 나라들보다 더 가치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특정 기술이나 예술적인 퍼포먼스는 그 행위나 기술 자체에만 가치가 있을 뿐이지, 이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개인이나 국가가 그렇지 못한 국가와 개인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봉준호가 훌륭한 감독이라고 해서 대한민국의 어느 한 시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봉준호는 영화라는 예술적 장르의 높은 완성도를 보여줄 뿐이다. 탁월한 능력이 있는 개인이나 국가만큼 그렇지 못한 국가와 개인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한국이 몇몇 분야에서 보여주고 있는 탁월함에 대해 조심스럽게 행복한 감정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이런 행복감을 만들어 낸 우월감에서 민족적 자부심이 나오고, 그 민족적 자부심이 타국을 지켜주겠다는 “과한 친절인” 가디언쉽(guardianship)을 강대국들이 가지게 했다. 이 강대국들 중에 한 나라였던 일본은 지난 세기에 우리가 부탁도 하지 않았는 데, 지켜주겠다며 한반도를 강제 점령했고, 거기다 만주와 대만을 강제로 점령하는 극도의 친절함(?)을 보여주었다.

내가, 우리가 “그 사람보다,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은 사람을 “존엄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나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보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특정 영역에서 중요한 사람은 특정 목적 혹은 수단에 있어 가치 있을 뿐이다. 조선 시대에 살았던 한 개인도, 2020년을 살고 있는 나도 똑같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똑같이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난 생각한다. 물론, 우리 사회에선 사람을 중요성이나 필요성(수단) 중심으로 보는 게 상식이며, 관행이기에 이런 말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코로나 19를 겪으며 소위 “국뽕”을 부추기는 분들이 좀 보여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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