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에게 매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맡겨?
2부 입법부 길들이기
- 그럼 개헌은 어떻게?
- 입법권은 시민 모두의 손에 돌려주는 개헌으로!!
그럼 개헌은 어떻게?
간단하다. 분권이다. 그래서 권력기관 내에서의 분권과 그 분권 된 권력을 다시 시민이 견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삼권 즉, 행정, 입법, 사법부에 독점된 권력 (이 시끼들은 삼권의 독점이 아니고 삼권의 분립을 통해 서로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고 우리를 초중고 심지어는 멍청한 정치학자들이 가르치는 대학에서까지 세뇌시켰다)을 시민에게 공정하고 정의롭게 나누는 방식에 대해서 소개해 보려 한다. 민주주의는 독점된 권력을 시민에게 공정하고 정의롭게 분배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렇게 공정하게 분배된 권력이 시민에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교육, 의료, 주거, 고용, 노후, 복지 혜택을 어떻게 얼마만큼 받아야 하며, 이런 복지제도의 혜택을 입기 위해서 세금을 얼마큼 내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그리고 이 결정을 자발적으로 따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제도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다.
'위임'은 시민을 영원히 무력한 노예로 만든다. 이게 대의 민주주의의 생얼이다!
헬조선의 모든 문제는 시민이 스스로 자신의 공동체에 대한 규칙을 정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문제는 이 규칙이 내가 세금을 어떤 종류로 얼마를 내야 하고, 그 세금으로 복지혜택을 받을 건지, 아니면 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쓰일 건지, 혹은 4대 강 같은 토목사업이나 창조경제에 예산이 얼마나 쓰일지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담뱃값을 올려도, 누리과정 국고지원이 중단돼도, 국정 교과서가 시민 다수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강행되어도, 사장의 쉬운 해고가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통과돼도, 국민연금 3000억 원을 잃으면서 삼성의 3대 세습을 보장해주는 일이 벌어져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복지제도보다 말로만 창조적인 '창조 경제' 사업에 수십 조가 쓰여도 (물론 시중에는 순실 언니와 그 친구들에게 그 돈의 상당 부분이 흘러들어 갔다는 설이 있다) 헬조선의 주인인 시민 다수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이 정치인들의 독선과 오만을 견제할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니까 모든 헬조선의 원인은 대의민주제의 핵심 원리인 '위임'이다. 시민의 운명을 대표자인 국회의원을 뽑아서 결정하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진지한 개인적인 대화는커녕, 얼굴도 한 번 직접 본 적도 없는, 손 한 번 안 잡아보고 그 국회의원 후보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바보 같은 선택을 시민에게 대의민주주의는 강요한다. 심지어 친구도, 친척도, 심지어는 형제, 자매끼리도 돈 때문에 갈라서는데, 선거기간 동안에만 잠깐 얼굴 보이는 그 인간들 (국회의원)에게 우리가 일 년에 최소 수백만 원, 4대 연금까지 합치면 천만 원이 넘을 수 있는 세금을 정신 나간 대통령 혹은 그 인간들 (쪽지로 자기 지역구에 예산 따가는)에게 맡기는 일처럼 멍청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생각 공장의 시선 - 시민권과 민주주의 & 플라톤의 국가론이 추천도서라고?'란 글에서 대의 민주제의 귀족주의적 본성이 폭로되어 있음).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이름으로 혹은 '노동 개혁 입법'이란 이름으로 사장들이 자신들의 직원을 '저성과자' 등으로 낙인찍어서 쉽게 언제든지 잘라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법을 통과시켜도 시민 다수가 이것을 막을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투표를 통해서 그들에게 우리 운명의 결정권을 300명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에 위임했기 때문이다. 그니까 시민 다수의 운명과 생활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선거를 통해서 위임하라고 하는 대의민주제는 합법적인 사기꾼들의 dog 수작이다. 합법적인 사기다! 초중고 심지어 대학에서도 이런 대의민주제를 가장 현실적이며 대안이 따로 없는 가장 좋은 제도라고 가르치고 이걸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외우거나, 혹은 자기 자신만의 독립적인 판단 없이 외우면 헬조선은 쭉 지속된다. 분명히!
입법권은 시민 모두의 손에 돌려주는 개헌으로!!
법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 국회의원에게 독점되어 있단 사실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 일단 문제다. 어린이집, 유치원, 그리고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헬조선의 모든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규칙은 항상 다른 사람이 혹은 자신보다 월등한 존재 (선생님과 교장, 원장)들이 결정하는 거고 자신들은 그저 그 규칙을 따르는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된다. 그 이후로 중등, 고등 교육을 거쳐도 이러한 멍청한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결과로 성인이 되어서도 직장의 규칙은 사주가, 국가의 규칙은 소수의 국회의원들이 정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거의 투표 과정에 참여하면서 흐뭇해한다. 장 자크 루소의 말을 빌리면 투표날만 시민은 자유로우며 새로 선출된 대표는 말만 대표일 뿐이지 시민의 주인 (masters) 혹은 지배자일 뿐이다. 대의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손석희 사장이 말했던 (물론 손 사장은 그저 책에서 본 걸 인용한 사람 중에 하나겠죠) 선거는 그저 새로운 지배자를 뽑는 우울한 날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지배 엘리트들은 이런 선거제도를 이용한 대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라고 학교와 언론에서 우리 애들과 시민을 세뇌한다. 이런 속임수 쩌는 교육제도와 언론환경에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다. 이렇게 헬조선에서 인간이 태어나면 이딴 식으로 사회화와 세뇌가 진행된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이고 반박 불가능한 진실'이 우리 뇌 속에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채 잊힌다: '자기가 속한 그룹이나 공동체의 규칙은 스스로 정한다!'.
시민입법?
민주국가의 주인은 자기 스스로 자기 공동체의 규칙 제정에 참여해야 한다. 입법부가 자신들이 독점한 입법권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의민주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여러 제도들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되어야 한다. 시민이 동료 시민의 서명을 받아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서 국민투표로 그 법안의 가부를 결정하는 시민입법제도 (우린 이걸 국민발안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다)가 있다. 스위스가 이런 시민 입법제도를 실행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유럽의 국가나 미국의 여러 주 단위에서 이런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런 제도를 반대하는 일부 정치학자들은 시민 입법 (국민 발안) 제도가 실패한 사례로 캘리포니아를 들고, 반면에 스위스의 진보된 민주주의는 좋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우기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게 헬조선의 현실이다 ('생각 공장의 시선 - 플라톤의 국가론이 추천도서라고?' 란 글에서 필자와 진보 정치학자라고 코스프레한 노학자와 그 똘만이와 겪었던 일화가 상세히 기술됨! 참조하시면 재미있을 듯). 어쨌든 시민 입법을 짧게 설명하면 전체 유권자수의 1~2%의 서명을 제한된 기간에 받아 시민이 원하는 법을 직접 의회에 제출하고, 이 서명을 입법부가 확인한 다음, 법안 발의한 시민 단체와 입법 전문가들이 위헌 여부 등을 정밀히 고려해 법안을 정교하게 확정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국민 투표로 이 법안의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스위스 같은 나라는 국민 투표가 일 년에서 3~4번 정도 정기적으로 시행된다. 국민 투표 비용 낭비를 걱정하실 수 있다. 4대 강, 자원외교, 창조경제 등으로 들어 간 수 백조에 수 백분의 일도 안 되는 돈이고 한 번 국민 투표할 때 한 이슈만 국민 투표지에 기재되는 것이 아니고 한 기간 동안에 시민에 의해서 발의된 법들이 같이 기재되기 때문에 비용도 그리 많지 들지 않는다.
'시민주도'의 국민투표
입법부의 권력 독점과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또 다른 환상적인 제도가 있다. '시민주도'의 국민투표이다. 두 가지 국민투표 중에 입법 폐지를 위한 국민 투표와 법률 개정과 폐지를 위한 국민 투표가 있다. 입법 폐지를 위한 국민 투표는 입법부가 국민의 의사와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소수 특권층의 이익만을 위하는 법률을 통과시킬 경우에 시민들은 국민 투표를 동료 시민의 서명을 받아 시행할 수 있다. 소수 기득권층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발효되기 전 즉, 입법 예고 기간 (나라마다 입법 예고 기간의 길이가 다름) 안에 국민 투표를 시행해서 이 법이 최종적으로 통과될지의 여부를 국민투표의 과반 찬성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이런 입법 폐지를 위한 시민주도의 국민투표제 도입을 위한 개헌으로도 입법부의 권력 남용을 확실히 견제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소수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한 예로 다수의 시민들이 혐오하거나 찬성하지 않는 성소수자 차별 폐지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법률 개정이나 폐지를 위한 국민투표를 시민이 직접 주도할 수 있다. 동료 시민의 서명을 받아 소수자 그룹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위헌 소지가 있는 법률을 폐지하거나 개정을 요구하는 국민 투표가 있다. 혐오 대상이거나 차별을 받고 있는 소수자를 위한 입법 활동은 국회의원들에게는 모험이다. 자기 정치 생명을 걸어야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거나 차별을 폐지하는 입법활동을 했다가는 다음 선거에서 상당한 표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선뜻 나설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의 권리는 영원히 존중받지 못하게 되고, 소수자들이 차별당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게 된다. 성소수자 차별 폐지를 위한 법을 한 국회의원이 발의하면 그 국회의원은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특정 종교의 표를 잃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의 폐지나 개정을 위한 시민주도의 국민투표는 이런 대의 민주제의 단점을 보완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제도이다. 건강한 사회를 가늠하는 척도 중에 하나가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 그룹이 얼마나 평등하게 권리를 다수 시민과 똑같이 누릴 수 있느냐의 여부다. 성소수자들이 겪는 차별은 이들의 안전과 재산권에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다. 성소자의 배우자가 죽으면 합법적으로 혼인신고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평생 같이 산 배우자는 상속의 권리가 아예 없어진다. 배우자가 응급실에 실려가도 보호자로 인정되지 못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이들은 이런 법적 차별 때문에 자기 배우자를 잃을 수 있는 위험에 까지 처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태어나 시민의로서 세금, 병역 등의 의무를 다 지면서도 모든 시민이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에서는 차별되는 매우 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성적 소수자를 포함해서 다양한 소수자 그룹을 향한 다수의 편견 그 자체가 비정상적이고 다수의 의식 수준이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인증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인권 선언에는 인종, 성별, 종교, 성적 지향 등에 따라 모든 권리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되어있는데 유독 대한민국에선 이런 인권 선언이 개무시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하긴 헬조선에선 이 정도의 일쯤이야! 머 그리 놀랍지도 않다. 그러나 필자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그나마 헬조선을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만들어보려는 작음 몸부림으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법률의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법률 개정과 폐지를 위한 시민주도의 국민 투표 도입이 절실해 보인다.
3부 예고
- 중앙정부의 권력은 지방정부로! & 그 지방정부의 권력은 그 지역 시민의 손에 나누어주는 개헌으로!
- 시민 심사위원단 제도 (Citizens Juries)란?
- 시민 심사위원단 제도의 장점
Bibliography
Beramendi, V. and others. (2008), Direct Democracy: The International Handbook (International Institute for Democracy and Electoral Assistance).
Crick, B. (2002), ‘Democracy’,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Oksala, J. (2013), ‘Political philosophy’, All That Matters (London: Hodder & Stough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