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콘텐츠를 비평할 한 가지 기준
“당신이 가진 여러 전제는 세상을 보는 창이다. 가끔씩 이 전제들을 문질러 제거하지 않으면 빛이 그 창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는다.” - 아이작 아시모프 -
사람들이 가진 전제란 사실이거나 진실이라고 당연히 믿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전제들은 한 번도 의심해보거나 직접 사실인지를 확인해 보지 않은 것들이다. 이렇게 당연히 맞다 생각해 온 모든 것들 즉, 전제를 계속해서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아시모프가 말하는 것처럼 세상을 보는 창문에 빛이 들어오지 못하기에 세상을 희뿌옇게 볼 수밖에 없다. 거기다, 그 분명치 않은 전제들을 바탕으로 추론해 만든 가상의 세계를 진짜 세계로 믿게 된다. 즉 이전 세대를 살았던, 하지만 세상(현실)에 실체에 전혀 다가가지 못한 사람들이 물려준 거짓 세계에 갇히게 된다.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목적은
내가 가진 이 여러 전제들을 철저히 의심해, 나를 가둔 거짓 세계를 걷어내고 날것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함이다. 아프더라도. 그래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나름의 방식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 의심하기 훈련의 가장 좋은 대상은
내가 가장 확실하다고 오래 믿어 왔던 것들, 그것이 종교적 신념이든, 정치적 신념이든, 아니면 내 가장 소중한 가치든 일단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이 타당한지 꼼꼼하고, 차갑게 따져 보는 거다. 나에겐 그 첫 대상은 예수였다. 엄마 뱃속부터 신이라고 믿기 시작해, 20여 년을 그렇게 믿어온 예수의 본성을 의심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다음으로 민주주의, 자유, (신) 자유주의, (대중) 문화, 교육, 사법, 언론, 그리고 예술 등으로 이어졌다.
자신이 가장 확실히 믿어 온 것, 하지만
의심의 눈으로 진실인지 확인해 보지 않은 것엔 무엇이 있을지 늘 생각해 보도록 장려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일 거다. (그런데 철학과는 점점 대학에서 없어지고 있으니)
대중문화 콘텐츠를 평가할 기준
이런 인문학의 목적에 바탕을 두고 생각해 보면, 문학의 유형들인 소설, 드라마 대본, 그리고 영화 시나리오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여러 기준 중에 가장 중요한 하나의 기준이 선명해진다. 나 포함해 사람들이 가진 전제나 검증되지 않은 상식에 관해 비판적인 시선으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들이 좋은 대중문화 콘텐츠가 아닐까? 상식과 여러 전제의 전복을 꾀하는 콘텐츠가 내가 그래도 인정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다. 상식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보거나 읽는 이가 현재의 상태(status quo)를 재확인해 단지 수용케 하는 콘텐츠는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다. 현재의 것들을 단순히 인정하고 수용할 때,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현재의 주요 제도로 부와 지위를 얻은 소수 엘리트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