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내가 좋아졌다.
“결혼하고 나니 친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
이상하지 않냐?
결혼하면 벗어날 줄 알았는데
더 신경 쓰이고 더 중요하다니 말이야.
말하고 보니 좀 슬프다.”
며칠 전 친구를 만났을 때, 나눈 대화다.
천천히 먹느라 치즈가 굳어진 김치볶음밥을 보니 목이 메었다.
간신히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친구였다.
그 날 나눈 수많은 대화 중에 그 말 하나가 유독 내 마음에 걸린 건,
아마도 그 친구의 집안 사정을 다 알고 있었던 탓이다.
그 친구는 대학생 때 사고로 아빠를 갑자기 잃어버리고,
엄마와 어린 두 동생을 건사하면서 힘든 20대를 보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 서른이 되기 전 결혼을 하고
벌써 10년 차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런 씩씩했던 친구가, 오늘 나를 울렸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싱글 때는 나 잘난 맛에,
그리고 자존심 상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님께 기대지 않았다.
뭐 힘든 게 없냐 물어보실 때
힘들어도 괜찮은 척,
회사가 망하고 갈데없을 때도 잘 사는 척
웃어 보였다.
왜 그렇게 괜찮은 척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겁이 났던 적도 많았고,
너무 힘들어도 그건 내가 짊어질 몫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었으니까.
다 큰 자식이 부모 앞에서 징징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기였다.
그랬던 내가 예전에 몰랐던 친정 덕을 톡톡히 누리는 중이다.
물론 한 순간에 온 변화는 아니다.
15개월 차이로 두 아이를 낳고 보니
친정 도움이 절실했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 말하기가 뭐가 그리 창피했는지.
신랑이 나와 번갈아가며 육아 휴직을 내고
근근이 아이들을 키웠다.
신랑과 둘이 육아를 하다가
최근에서야 처음 친정에 도움을 요청했다.
신랑이 지쳤고,
나 역시 지쳐서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았다.
첫째는 45개월, 둘째는 30개월을 향해가고 있었다.
“엄마 나 이제 못 버티겠어. 좀 힘들어.
엄마 집에 좀 가도 돼?” 힘들게 말을 꺼냈다.
벌써 눈물이 나오는 것 같았다.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평소에 나와 다른 모습에 심각함을 느끼셨는지,
당장 오라고, 와서 쉬고 가라고 말하셨다.
그렇게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 없이 아이 둘과
친정에서 3박 4일을 먹고 자고 했다.
아. 나도 친정이 있어서 너무 좋구나.
이 좋은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내가 뭐라고.
내가 뭐 그리 잘났다고 혼자 다 짊어지겠다고 했을까.
지나간 시간이 아직도 힘들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센 척했던 나에게도 당연히 나약한 모습도 있을 텐데.
그동안 참아온 것이 억울했던 걸까.
아니면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걸까.
내년 환갑을 앞둔 엄마는 한눈에 봐도
아이를 보기 힘들어하셨다.
아빠는 서툴지만 아이 옆에 계셨다.
아무래도 자주는 못 오겠다.
아니다.
그래도 와야지.
내가 뭐라고.
연약한 모습도 나다.
도움 좀 받아도 돼.
그 날 이후로 나는 매주 주말에 시골집에 간다.
신랑에게도 일주일에 한 번 온전한 휴가를 주고,
엄마 아빠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어리광도 부리고.
한 번에 다 하려니 벌써 씩 웃음이 난다.
육아를 하면서 몰랐던 내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는 중이다.
내가 몰랐던 약했던 모습도 마음껏 들키는 중이고,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도와달라는 그 말도 요즘 연습 중이다.
이런 내가 조금은 마음에 든다.
더 이상 센 척하지 않아도
충분한 것 같은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