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우드 Sep 06. 2020

하루 10분만 내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집안일을 하기에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얼마 전에 본 인터넷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평일 가사노동시간 여성은 3시간 10분, 남성은 48분...

2019 통계청 생활시간 조사 결과란다.

헐 이거 내 얘긴데?


맞벌이 외벌이를 떠나서 

여성이 더 많은 집안일은 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남편과의 살벌한 눈 맞춤이 있었다.

그깟 쓰레기봉투 때문에.



결혼을 이렇게 빨리할 줄 몰랐다.

적어도 35 즈음에 하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했을 뿐.

평생 혼자서 독서하며 조용히 살고 싶었다.

교사라는 직업은 평생 월급이 있으니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온전히 나 스스로 밥벌이는 할 수 있으니까. 


 삶에서 결혼과 육아에 대한 로망은 전혀 없었다.

주변에 힘든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에 보람을 느끼기에는 나는 내가 너무 좋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역시 알 수 없는 게 인생이었던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생겼으니 말이다.

가사는 몇 배쯤 늘어났을까..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라는 만화는 실제 내 생활과 꽤 비슷해서 재밌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알기 전부터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에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을 알게 되었을 때,

 아, 내 삶이 미니멀 라이프를 향해가는구나라고 느꼈다.


치우는 것도 힘들고, 물건을 새로 사는 것은 더 힘들었다.

내게 정말 필요한 것만 갖고 살아야지 했다.

가사를 안 하려면 군더더기 살림이 없어야 했다.


결혼하고 나서 만족감이 높았던 이유는

내 삶의 방향이 내가 원하는 대로 어느 정도 흘러간다고  처음 느꼈기 때문이다.

집이 작고 물건이 없으면 청소할 시간을 줄어들고 내 시간이 많아진다.

작은집을 선호하고, 물건을 계속 정리하는 이유다.

나는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삶을 원한다.

 아이 둘을 키우는 지금은 해당이 안된지만.


책장이 어느 순간 장난감 전시장이 되었다. 그리고 굿바이.


신혼집에는 반드시 서재가 있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나만의 공간은 결혼과 상관없이 필요했으니까.

아이가 태어나기 전 꽤 많은 시간을 서재에서 보냈다.

신랑은 방의 크기에 비해 책장이 너무 크고 튼튼하다고

볼 때마다 투덜거렸다.

우리 집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미니멀 라이프와는 어울리지 않다고 다.


 큰 책장에는 나의 보물 1호라 ‘여겼던’ 책들이 가득 있었는데..

어쩐지, 늘, 읽은 책 보다 새 책이 더 많은 느낌이었다.

뭐 당연한 것 아닌가?

책은 일단 사고 나서 천천히 보는 거니까.


그렇게 애정 하던 책장은, 책은, 서재는, 이제 없다.

신혼집에서 2년 반을 사는 동안 아이가 둘 늘어나고

더 이상 서재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고.

나를 위한 5분의 시간도 내기 힘들어졌다.


책장에 가득 찬 책을 정리하고 나니

 책장이 쓸모없어졌다.


이리 하찮은 신세가 되다니..

버리기엔 너무 새거라 아깝고,

누굴 주자니 갖다 주는 것도 일이고,

한동안 서재에 덩그러니 외롭게 있다가,

어느 순간 장난감 전시장으로 변신했다가

결국은 이사철이 되어 새로운 주인을 찾아 떠났다.


고작 책장일 뿐인데,

책장을 떠나보내는 건 왠지

나만의 시간도 함께 떠나보내는 것 같아서 조금은 울적했다.


 잘 쓸 거라는 고맙다는 인사를 듣고 나니

정말 잘 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는 물건을 함부로 들이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밥하는 게 너무 귀찮다. 치우는 건 더 싫다. 반찬 배달 온 날

살려면 끊임없이 먹어야 하고,

치우는 게 너무 지난한 과정이었다.

중요한 일이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이 지루하고 지친다.


 혼자 살 땐 귀찮아서

저녁은 맥주로 대신하고,

점심은 떡볶이,

아침은 커피 한 잔으로 충분했는데,

 

이상하게 결혼과 동시에 밥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고 이질감이 없어서 당혹스러웠다.

내 귀한 시간을 밥하고 치우는데 쓰고 싶지 않았다.


나도 내 일이 중요하고,

책도 더 읽고 싶고, 쉬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주 2-3회 반찬은 배달하고

집에서 밥만 하는 생활로 정착되어 갔다.


그런데 음식을 다 먹은 후 용기는 재활용이 안되어

엄청난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이 맘에 걸렸다.

또한 아이들을 낳고 나자

 아무 생각 없이 먹는 반찬이 아이들이 잘 먹지 않아 고민이다.

배달 반찬과 내가 끓인 국을 동시에 내놓으면

아이들은 귀신같이 국만 먹는다.

아... 어떡해야 하나..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일도 하고 밥도 하고 육아도 하기엔 난 이미

방전을 넘어 마이너스 상태다.



하루하루 정신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매일 바쁘게 살지만,

그 속에 나는 없고

내 시간을 노리는 무언가만이

내 주위를 끊임없이 감싸고 있는 느낌이다.


누군가는 그깟 쓰레기봉투 버리고 말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왜 나만 가사를 부담해야 하지

억울한 마음이 가득 차 있었다. 


여전히 할 일은 너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다.

시간을 어떻게 요리조리 쓸지 매일 고민하지만

매일 거의 하지 못한 채 하루를 마감한다.


겨우 하루 10분이지만, 난 내 시간이 절실했다.

그 시간은 하루 중 유일하게 나만을 생각할 수 있는

내 삶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인데,

그게 그토록 어려웠을까.


 아이들은 금방 큰다고,

조금만 기다리라는 주변의 조언도 매일 듣는다.

 난 왜 이렇게 초조한 걸까.

 여전히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내가

조금은 안쓰럽고 실망스럽기도 하고 슬프다.


하루 10분 내 시간을 챙기는 것은 

내 존재를 확인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살아있음을  

매일 스스로에게 알게 하고 싶다.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뭐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