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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우드 Sep 08. 2020

저녁에 설거지를 하고 자야 하는 이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육아서를 보면 아이들을 재울 때

 일정한 루틴이 필요하다고 했다. 

저녁 먹이고, 

목욕시키고, 

책을 읽어주고, 

잠자리에 들어서 자장가를 불러주면 

자연스럽게 잠이 든다는. 


모든 아이가 동일하지는 않지만, 

각자 나름의 저녁 루틴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러한 루틴은 꼭 아이들 재울 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듯하다.


매일의 일상을 사는 나에게도 루틴은 있다.


그중 하나가 저녁에 꼭 설거지를 한다는 것이다. 

설거지를 한다는 것은 

개수대에 놓인 그릇을 닦는 것뿐만 아니라 

가스레인지를 흘린 찌개 국물을 닦아내고, 

밥솥 위 살짝 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싱크대 찌든 때를 뜨거운 물로 싹 씻고, 

식탁 위에 아무것도 놓지 않는,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남편, 듣고 있나?)


설거지를 한다는 것은 

아직 나의 저녁이 끝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정말 피곤한 날은 

설거지 따위는 할 생각조차 못한 채 쓰러져 자기에.


설거지를 한다는 것은 

나의 하루를 여기서 끝내기 싫다는 

마지막 발악이기도 하다.


며칠 전 신랑에게 말했다. 

나는 설거지하고 나서 

운동도 하고, 

샤워도 하고

 책도 보고 잘 거야. 


그것은 일종의 나를 향한,

 나 자신에게 하는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이제 전처럼 쓰러져 자고 싶지 않다고. 

나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을 갖고 싶다.  

그것이 설거지로 나타날 뿐이다.


설거지를 하고 나면 굉장히 뿌듯한 기분이다. 

그것은 단지 먹고 마신 것을 치운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것을

 체험하는 사소한 기분이랄까.


 여하튼 설거지는 그저 설거지가 아니다. 

음식을 하는 동안 틈틈이 큰 그릇과 냄비는 닦아 둬서 

 10분이면 설거지를 마친다.

(더 이상 하기엔 내 시간이 아까워..)


 이런 10분은 나에게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지? 

수고 많았어.

내일도 힘차게 가자. 

하는 내일을 위한 다짐이기도 하다.


 실제 설거지를 하고 나면 

다음날 아침 여유로운 것은 당연한 것.


그래서 오늘도 난 폭풍 설거지를 하고 

잠이 들기를 바란다.

 아직 나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기에. 

나의 또 다른 10분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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