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쉬고 싶은 날이 있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당연히 데리고 나가야지 왜 이걸 생색내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만큼 내 마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코로나 때문에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을 텐데.
마스크는 제대로 하고 다닐까 걱정되면서도
어디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조차 아이들 걱정으로 쓰고 싶지 않아서.
배가 고파 냉장고를 열어보니
남편 먹으라고 사다놓은 샐러드가 눈에 띄었다.
흥. 살 땐 별 생각 없었는데,
나는 이렇게 자기를 배려해주는데
왜 나는 배려받지 못할까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냅따 뜯어
먹어버렸다.
단호박이 달달하니 맛이 좋구먼.
그 옆에는 며칠 전 사둔 치즈케이크가
상자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 재우고 밤에 먹으려고 했는데,
며칠 동안 아이들보다 일찍 잠드느라 손도 못 댔다.
내가 이거 먹을 시간도 없었나.
시무룩함은 잠시 접어두고,
오늘 다 먹어버릴 거야
생각하며 툭 잘라먹고
시원한 둥굴레차를 먹고 나니
휴우. 이제야 숨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때문에 이리 힘들었나 생각해보면
딱히 힘든 건 없었다.
다시, 정확히 말하면
힘듦에 적응됐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매일 출근길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수업하고,
업무 하고,
퇴근길에 아이 둘 하원 시키고
저녁 준비를 하고
식사를 하고 나면
정말이지 손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다름은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쁜 인생이었다.
특히나 이번 한 주는 뭣 때문인지 정신이 없었다.
운동도 못하고, 밥도 간신히 챙겨 먹었다.
돌아보면 왜 그리 정신없이 살았나.
마음을 어디다 두고 왔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아빠와의 오랜만의 외출에 신이 났는지
집에 오기 싫었단다.
집에 오자마자 재잘재잘하는 아이들을 보니
오늘 재밌었나 보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남편 얼굴이 보이는 걸 보니
나도 오늘 잘 쉬었나 보다
여보 고마워. 앞으로도 자주 데리고 나가주세요.
나 오늘 너무 좋았거든요.
엄마가 아닌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은 필요하다.
의도적으로,
우연히라도
챙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 엄마로 살 거니까.
아내로 살 거니까.
나로 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