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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우드 Nov 18. 2022

당신이 누구든, 뭘 하든 파이팅은 필요하다.

우리가 파이팅을 외치는 이유

우리 잘 싸웠어요.
다만 한 가지가 상대에 밀렸어요.
혹시 느꼈나요?


1 쿼터를 간신히 0대 0으로 끝내고, 물을 조금 먹고 작전 회의를 하는데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다.


상대팀은 파이팅이 넘쳤는데,
우리 팀이 확실히 목소리가 안 들렸어요.
혹시 긴장해서 그런 걸까요?
우리가 1 쿼터에는 기싸움에서 밀렸네요.    


긴장하지 않으려고 했다. 긴장한다고 해서 더 잘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나도 모르게 긴장했고,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아무도 파이팅을 외치지 않았다니, 방금 전 일인데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오늘은 풋살 대회전 마지막 친선경기날이다. 15분씩 총 4 쿼터 경기를 하기로 했다. 예정보다 늦은 7시 30분쯤 돼서야 1 쿼터가 시작되었다. 골키퍼 장갑을 끼고 의식적으로 팔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안 그러면 몸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공을 응시하고, 우리 팀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골키퍼는 공을 막기도 하지만, 팀 선수들의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보고 위치를 잡아주거나 소리쳐 주는 역할도 한다.

     

휘슬 소리와 함께 상대편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엇.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분명 상대팀도 창단된 지 1년이 안되었다고 들었는데, 공을 다루는 솜씨가 초보가 아니다. 내 눈에도 보일 정도면 아마 팀 동료들도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다. 공을 뻥하고 차는 것이 아니라 드리블을 하면서 우리 편 수비를 제치고 코 앞까지 와버렸다. 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만약 제삼자가 구장 밖에서 봤으면 우리 팀이 밀리고 있다는 것이 바로 보일 것이고, 오늘 경기의 승자가 상대편이라는 것을 바로 알 정도로 말이다.

      

골대를 지키고 있으니 경기가 한눈에 보이고, 선수들의 움직임도 바로 포착되니,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몇 번의 방어에 성공했고, 다행히 0대 0으로 1 쿼터가 끝이 났다. 우리는 서로 잘했다고 등을 두드리며 잠시 밖으로 나갔다. 막판에 패스가 잘 되었는데, 득점으로 연결이 되지 않아 굉장히 아쉬웠다.      


파이팅이 없다는 감독님의 말에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골키퍼라 숨이 덜 차 수시로 우리 팀 파이팅을 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반면 상대편은 여유롭게 웃으면서 누가 공을 잡을 건지 수시로 대화를 나누었다. 공을 차면서 대화를 할 정도의 여유면, 경기를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쿼터가 시작되고, 난 장갑을 벗고 최후방 수비를 맡게 되었다. 이번에는 더욱더 파이팅을 크게 외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외치니 팀원들의 파이팅 소리가 들리고, 같이 경기에 집중하고,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걸 느끼니 수시로 외칠 수밖에 없다. 시작 휘슬과 함께 1분도 되지 않아 상대편이 선취골을 넣었다. 헉. 우리는 당황할 새도 없이 바로 공격을 진행했고, 바로 득점에 성공하여 1대 1 상황을 만들었다. 아, 득점이란 어느 순간에도 날 수 있는 거구나. 정신 차려서 나에게 오는 공을 잘 처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뛰다 보니 몸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고, 조금 더 공 처리를 잘하고 싶었고, 일단 상대편과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대책이 필요했다. 상대방 공격수가 어찌나 몸싸움을 잘하는지 공이 없어도 에너지가 소진되는 기분이었다. 그 새 우리 팀은 코너킥 상황을 만들고, 상대팀의 자책골을 유도했고 한 골을 더 만들어서 2대 1로 마무리했다. 2 쿼터가 끝났다.     


3 쿼터가 되어 다시 골키퍼 장갑을 끼었다. 이번이 중요하다. 무릎을 구부리고 자세를 낮추자. 상대방에게 위협적인 골키퍼로 보여야 한다. 최대한 안정적으로 공을 처리하고, 멀리 던지자. 오른팔로 공을 감싸 안고, 중앙이 아닌 먼 변방으로 공을 던져서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자. 그래도 1 쿼터에 한번 장갑을 끼워봤다고 골키퍼 자리가 조금 여유 있었다. 내가 골을 막으면 1점을 넣는 것도 같은 역할이니, 굉장히 내 역할이 중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실점 없이 3 쿼터가 끝났다. 정말 다행이었다.     


마지막 4 쿼터가 시작되었다. 그제야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내가 수비를 할 때 드리블할 자신이 없어 무작정 뻥 차는 바람에 우리의 공격 기회가 최소한 5번 이상 날아갔다는 것을. 그렇다면 선택할 시간이다. 빼앗길 두려움과 함께 드리블을 하다가 정확히 패스할 것인가, 아니면 빼앗길 두려움 없이 그저 멀리 뻥 차 버릴 것인가. 그렇게 내 모습을 알아차린 채로 경기가 끝났고, 우리는 몇 점차로 승리를 거뒀다. 확실히 파이팅을 외치는 횟수가 그만큼 늘어났고, 여유가 생겼고, 상대방은 당황했다. 경기가 끝나니 상대방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뛸 때는 공하고 유니폼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야 얼굴이 보이다니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파이팅을 외친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현재 상황에서 힘내자라는 뜻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고, 내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의 표현이었다.


풋살 대회가 3일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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