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잔소리보다 강력한 한 방

by 그린우드


아무리 생각해도 말을 잘하는 사람은 여러모로 유리하다. 고작 말 뿐인데 본인이 원하는 것을 쉽게 얻는 것처럼 보인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말 잘하는 교사는 아이들을 쉽게 설득시켜 본인이 원하는 바를 조금 더 쉽게 이루는 것 같다. 교과지도도 그렇고, 학생관리도 왠지 쉬워 보인다. 말을 잘 못하는 나는 조금 부러운 마음이다.


그런데 이것은 교사의 말이 통했을 경우다. 만약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난다면 어떻게 대화를 하는 것이 좋을까. 그 대상이 학생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이라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몇 년 전 교실에서 만난 그 아이는 다른 친구를 때리거나 거친 욕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친구들과 대화할 때 교묘하게 말싸움을 걸어서 상대방 아이가 바짝 약이 오르는 게 멀리 있는 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아이들은 단순한 말싸움에서 점점 맘이 상하고 결국엔 담임인 나에게까지 달려왔다. 기분이 나쁘다고 나를 찾아온 아이가 있는 반면 괴롭힌 당사자는 너무 태평했다. 불러다 놓고 대화를 시도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해요.


oo,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말이지.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저는 안 그런데요’, ‘제가요?’하고 오리발을 내미는 얄미운 녀석이었다. , 이 아이는 말이 통하지 않구나. 나는 빠르게 단념하고 말았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 해결 방법이 있을까?


아이들을 미워하면 안 돼. 그렇지만 쟤만 보면 나도 모르게 속에서 천불이나.’

즐거워야 할 출근길이 지옥길이야. 오늘도 똑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겠구나.’

나는 정말 무능한 교사야. 언제까지 이 고통이 지속될까. 빨리 학기가 끝나면 좋겠다.’

한동안 힘 빠지는 날들이었다. 누구를 잡고 이야기해 봐도 교과서적인 답변과 위로뿐 신통방통한 해결책이 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절대 말싸움을 걸지 않던 단 한 명이 있었다. 담임조차 포기한 그 아이가 건드리지 못한 아이는 누구였을까?


아이러니하게 싸움꾼 아이를 단숨에 제압한 아이는 바로 우리 반에서 말을 한마디도 안 하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집에서 가족과는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대화를 이어가지만 학교에서는 절대 한마디도 안 했다. 학기 초 아무 말을 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을 때, 몇몇 아이들이 말을 했다 쟤는 작년에도 말 안 했어요.’ 부끄럽지만 그 순간 나는 안도다. 원래 그런 아이라고 생각하니 지금부터 노력하면 되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아이 앞에서 이 싸움꾼의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다. 뭐라 시비를 걸어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으니까. 교사로서 부끄럽지만 어찌나 통쾌하던지 화장실 가서 소리 안 나게 입 막고 눈물 나도록 웃었다. 네가 드디어 임자를 만났구나. 한번 당해봐라. 하고 못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당한 것과 다른 아이들이 당한 것을 한방에 해결하는 통쾌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강력한 한방을 맞았다. 바로 침묵의 힘을 절절하게 느꼈던 것. 침묵은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제일 강력한 한 방이었다는 걸 몸소 깨달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던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살면서 와 닿았던 적이 없었다. 반짝이는 금의 가치만큼 저는 그 아이의 힘을 느꼈다. 말을 못 해서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는 말은 안 해서 존재감이 있었고, 우리 반에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생각해보니 말을 안 한다는 것은 충분히 따돌림을 당할 상황이었는데도 아이들은 그 친구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침묵하면서 절대 주눅 들거나 쭈뼛거리지 않고 항상 아이들 속에 당당하게 속해 있었다. 그 아이가 새삼 대단해 보인 것은 나뿐이었을까.


침묵의 힘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마지막 거인>이라는 책이 있다. 책의 주인공은 침묵을 지키지 못하여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했고, 평생 죄책감에 떠돌았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침묵을 지킨다는 표현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어요. 어떤 것을 지킨다는 것은 지킬 때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지만, 지키지 못했을 때 오히려 무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존재감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기에 침묵을 지킨다는 말에는 굉장한 무게감이 서려 있다.


침묵하지 못한 죄는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다. 이미 말하고 나서는 아무리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다.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 하지 하는 깊은 후회만 남는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은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잔소리는 힘이 없지만, 침묵은 강력하다. 일단 침묵의 힘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은 침묵의 강력한 한방을 알고 있기에 더욱 입이 무거워진다. 말할 때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해진다. 내가 믿는 것은 이 것이다. 조용히 하세요가 아닌 가만히 아이들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 아이들 스스로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때로는 열 마디 잔소리보다 한 번의 침묵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조금은 더 침묵에 관대해지면 좋겠다.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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