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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우드 Apr 11. 2021

느린 아이는 어떻게 지도하는 것이 좋을까.

경주에서 이긴 거북이는 그 후로도 행복하게 살았을까.

거북이는 느림의 대명사다. 물론 거북이와 쌍벽을 이루는 달팽이라는 아이가 있지만, 이상하게 거북이가 조금 더 느린 듯 보인다. 아마 우리에게 토끼와 거북이라는 동화책이 준 영향이 크리라고 본다. 그렇게 느린 거북이었지만, 꾸준히 노력해서 결국 경주에서 이긴 이야기 말이다. 같은 거북이끼리 달리기를 해야지, 어쩌자고 재빠른 토끼와 붙었는지 모르겠다. 빨리 달리던 토끼가 잠깐 낮잠을 자는 사이에 꾸준히 기어 오던 거북이가 드디어 결승점에 골인하던 장면. 이야기의 결론은 뻔했다. 뭐든지 꾸준히 하면 된다는 것. 그런데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됐는지 아시는가. 거북이는 그 후로도 행복하게 살았을까.


<슈퍼 거북>이라는 동화를 보면 경주에서 이긴 후의 거북이의 삶이 나온다. 거북이는 경주에서 우연히(?) 우승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은 거북이는 거북이라는 사실이다. 동물 친구들은 거북이가 왜 이렇게 느리냐고 타박하고, 거북이는 자신이 부끄럽다. 정말 토끼처럼 빨리 달리기 위해 되기 위해 매일매일 쉴 틈 없이 지옥훈련을 감행하고, 하루하루 늙어간다. 원래의 자신으로 살고 싶지만,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면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다.  


마침내 다시 경주가 시작된다. 거북이의 혹독한 훈련 덕분인지 거북이는 토끼를 앞지르게 되고 결승선을 눈앞에 둔다. 그런데 너무 무리한 탓인지 갑자기 졸음이 밀려오고 조금 쉬어도 되겠지 하며 잠든 사이 토끼가 결국 우승하게 되면서 동화책은 끝이 난다. 아, 역시 거북이는 거북이인가 보다 싶은데  그 이후의 결말이 놀랍다. 


거북이는 졌다고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본모습으로 돌아간다. 평온한 얼굴로 꽃에 물을 주고, 느긋하게 목욕을 하며, 잊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원래 자신의 모습을 다행히 잊지 않고 돌아간 것이다. 시합에서 졌다고 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홀가분한 모습이다. 하마터면 자신의 모습을 잃을뻔했다. 



교사를 살면서 힘든 점은 많다. 매년 새로운 아이들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고, 생활지도도 어렵다. 또한 학교에서 맡은 업무가 크면 내가 교사인지 행정 처리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시간을 쪼개 조금 더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면 좋겠지만, 받는 사람은 늘 부족하다 말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를 더 봐달라고 조르고, 담임과 한마디라고 더 나누고 싶어 한다. 


학교에서 많은 거북이와 토끼를 지도하면서 느낀 것은 아이들은 저마다 타고난 특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자꾸 거북이에게 토끼가 되라고 한다. 토끼 중에서도 조금 더 빠른 토끼가 있고, 그냥 토끼가 있고, 느린 토끼가 있다. 그런데 자꾸 토끼니까 무조건 빨리 뛰라도 한다. 좀 더 부지런한 거북이고 있고, 느릿한 거북이가 있는데, 자꾸 빨리 가란다. 물론 조금 더 노력하는 태도는 나쁘지 않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본인을 위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울면서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지금 내 모습이 좋은데 왜 자꾸 나한테 변해야 한다고 하는 거지? 뭘 더 어쩌란 말인가.  


매년 담임을 맡게 되면 우리 반의 모든 아이를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공평하다는 것은 내 도움이 더 필요한 아이에게는 더 주고내 도움이 조금만 있어도 되는 아이에게는 조금만 준다는 것이다. 마치 토끼는 내 도움이 별로 필요하지 않지만, 거북이에게는 내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 토끼 중에서도 더 빠른 토끼가 있고, 거북이 중에서도 더 느린 거북이가 있다. 나는 더 느린 거북이를 찾아서 조금 더 신경 쓰고, 빠른 토끼에게 도와달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이러한 행동을 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선생님은 왜 차별하세요?"모두 똑같이 받는 것이 공평한 거라고 생각한 아이들이 샐쭉하게 물어본다. 나는 대답 대신 씩 웃는다. 


도움이 많이 필요한 아이는 아무리 쏟아부아도 나아지는 것이 없을 때도 있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여전히 성장 중에 있는 그 아이에게 조금의 자양분은 되었기를 바란다. 어딜 가도 잘 지낼 것 같은, 소위 말해 내 도움이 필요 없어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따로 말한다. 고마워. 네가 있어서 우리 반이 조금 더 행복해. 혹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말해 주겠니. 교사로서 해준 것이 적어 가끔은 미안하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늘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다.        


느린 아이를 가르치는 비법 따위는 없다. 그저 그 아이가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느린 것이지, 그 아이는 원래의 속도대로 충분히 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꾸 아이에 대해 조급한 마음이 생긴다는 그 마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하겠다. 경주에서 한 번은 이길 수 있지만, 그것만이 성공은 아니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 오히려 더 성공에 가깝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우리 반에 살고 있는 30명의 거북이와 토끼를 가만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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