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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우드 Apr 11. 2021

방과 후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까

소중한 기억을 팔아 시간을 살 수 있다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는 교사는 좀 특이한 직업군이다. 이 직업은 특이하게도 매년 가르치는 학생이 바뀐다. 한 번 생각해보자. 아무리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해마다 새로운 학생과 새로운 학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굴 만날까 설레기도 하지만 긴장하며 굉장한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 해마다 만나는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때로는 장점이 된다. 만약 그 해 이상한 사람을 만나도(여기에는 학생, 학부모, 동학년 교사가 포함되기도 한다.) 1년을 잘 버티다 보면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3월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처음 학생들을 만나면 여러 가지가 궁금하다. 하지만 대놓고 이것저것 많은 것을 한 번에 물어볼 수 없으니 난감하다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이들이 직접 자신에 관해서 소개하는 것이었다가족은 누구인지방과 후에는 뭘 하면서 지내는지꿈은 있는지하루에 휴대폰은 얼마나 사용하는지담임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이 있는지.. 하나하나 궁금한 점을 캐묻는다.


아이들이 작성해온 소개서를 보면 매년 다르지만 공통점을 하나 찾을 수 있다그것은 바로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또한 저학년 때는 태권도나 피아노미술수영과 같은 예체능 분야가 많다면 고학년이 될수록 어학원과 수학 과외의 비중이 높아진다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며 아이의 방과 후를 상상한다


학교에서 수업이 마치면 집에 가서 간식을 잠깐 먹고어학원으로 향한다어학원에 가서 2시간 문법과 회화 공부를 하고 나면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집에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조금 빠듯하다그래서 아이들은 분식이나 햄버거로 10분 만에 저녁을 해결하고 다음 학원으로 이동한다그러고 나서 수학 학원이나 공부방으로 간다. 1-2시간의 수학 문제를 풀고 나서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저녁 7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매일매일 이런 생활을 한다면 어른들도 굉장히 피곤할 텐데, 다행인 것은 영어는 주 3회, 수학은 주 2회 정도로 시간이 조금 여유롭다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배울 것은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어느 것을 선택하고 어느 것을 포기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학생 본인이 원하는 것과 부모가 시키고 싶은 것은 일치하면 다행이지만적어도 내가 본 우리 반 아이들은 본인의 뜻보다 부모님의 권유로 학원을 계속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공부하기는 싫지만 학교 수업이 어려우니 엄마가 학원을 다니라고 했단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 초등 5학년 아이들의 방과 후 생활은 얼마 전에 읽었던 <시간가게>라는 책의 내용과 굉장히 유사하다. 주인공 윤아는 5학년 여학생으로 국제중 입시를 원하는 엄마의 뜻에 따라 학원을 다니고, 1등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숨이 막힌다하지만 윤아는 엄마를 거역할 수가 없다자신만을 바라보고 모든 걸 희생하는 엄마에게 줄 수 있는 것은 1등이 찍힌 성적표뿐이다. 만년 2등 윤아는 시험지를 보면 숨이 막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시간을 살 수 있는 가게를 발견하고, 행복한 기억을 팔아 10분의 시간을 얻게 된다. 그렇게 남의 답을 훔쳐 1등을 하고엄마는 윤아를 껴안고 펑펑 운다. 본인의 고생에 답을 해준 윤아가 너무 자랑스럽고 언제까지나 윤아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윤아는 마음이 좀 복잡하다. 1등을 하면 무조건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엄마의 모습을 보니 앞으로 더 달려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어디선가 많이 보지 않았을까? 우리 아이들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사교육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보다 안 하면 뒤쳐질까 봐 꾸역꾸역 밀고 나가는 우리 모습인 것이다. 어른들이라면 고작 10분을 사기 위해 행복한 기억을 팔지 않겠지만, 아이들의 시간은 다르다.  10분은 아이들을 위한 걸까. 어른들의 욕심을 채워주기 위한 걸까.


나의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려보면(라테는 말이야....) 피아노를 계속하고 싶지만영수학원과 같이 다니기에는 학원비도 부담스럽고시간상 정 안되어 결국 피아노를 관뒀다당시 난 중입을 앞둔 6학년이었고피아노는 취미로 치면 되니까 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성인이 되어 생각했을 때 피아노를 조금 더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대신 학원을 다녀와서 휴식시간에 집에 있는 피아노를 주야장천 두들겼고, 피아노는 여전한 내 취미 칸에 적힌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면 3시 정도가 되는데 그때부터 밤 9시에 잠자리에 든다고 하면 무려 아이들에게는 6시간이나 자유시간이 생긴다이때 뭘 하면 좋을지는 사람마다 다르다다양한 학원을 다니면서 부족한 공부를 할 수도 있고예체능에 시간을 쏟으며 재능을 계발할 수 있다. 도대체 매일 반복되는 이 많은 시간에 뭘 하는 것이 좋을까.  


학부모 상담을 하면 방과 후 시간에 관한 부모님들의 많은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수학학원을 보내고 싶지만, 아이가 레벨테스트조차 통과하지 못해 더욱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공부하고 싶다고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빠듯한 생활비에 차마 못 보내준다 말하지 못하는 어머니도 계셨다. 방과 후 시간의 중요성은 아이들보다 오히려 그 시간을 겪고 온 어른들이 더욱더 잘 알 것이다. 


어떤 선택이듯 완벽한 선택은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의 선택을 우선해야 것이다. 아이가 뭘 원하는지 충분한 대화 끝에 결정한다면 그것이 방과 후 휴식이든, 보충학습이든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학원도, 과외도 아이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선택이라면 아이는 그 활동에서 동기를 찾기 어렵다. 부모와 아이 모두 서로 원하는 효과를 얻기 힘드니 여러모로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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