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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우드 Apr 11. 2021

친구와 꼭 친하게 지내야 하나요.

우리반 30명이모두 친해지길 바라진 않아.

언젠가 중학생 때의 일이다. 3월 2일에 새 교실에 들어갔는데자리가 몇 개 남아있지 않았다선택권이 별로 없어서 가까운 자리에 앉는 순간 의자가 부러져 버렸다뒷자리에서는 큭 하는 웃음소리와 아이들의 두런두런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내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를 주시했겠지. 부러진 의자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겠지. 봐라.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이거야? 나는 아무렇지 않아. 얼마든지'


그때 나는 굉장한 자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던 시기였다. 모두들 나만 본다고 착각하여, 버스에 탈 때 왠지 고개를 못 들었던 시절. 남는 의자가 있어 최대한 무표정한 얼굴로 가져와 앉았다그것이 지금도 기억하는 언젠가의 나의 첫날 광경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굉장히 소심했고불안했고자존감이 낮았다의자가 부러진 순간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고그날은 첫날이었기에 첫인상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순간적으로 판단했다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망가진 의자를 앞으로 빼놓고 교실 전체를 휙 둘러보았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의연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했는데지금까지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좋은 기억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매년 신학기가 시작되면 3월 2일에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광경이 있다새 학기 시작되는 첫날, 새로운 교실에서 처음 만나는 아이들 속에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마치 숨 막히는 정적 속에 누군가가 그 침묵을 깨기만을 바란다고 할까아침 8시 30교실문을 살짝 밀고 들어갔을 뿐인데아이들의 시선은 모두 담임에게 쏠린다마치 '어서 와서 무슨 말이든 해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침묵을 견디는 것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힘들다. 침묵을 조금 더 견디기 어려운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곧바로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간다분명 작년에 같은 반을 했던 아이 서너 명이 있을 텐데, 전체적으로 긴장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이런 분위기가 매일 반복되면 숨 막혀 죽을 테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다왜냐하면 3월 3일이 되면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3월의 자리배치는 중요하다내 앞옆자리에 누가 앉아있느냐가 결국 절친이 누가 되느냐와 일치한다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들을 찾아가기 마련이지만, 3월은 일단 누군가와 안면을 트고 내가 속할 누군가를 찾는 과정이 굉장히 시급하다혼자 있는 것을 잘 견디는 아이들도 있지만거의 대부분은 한 명이라도 친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그렇게 한 명 한 명 알아가면서 3월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4월이 되면 내가 친한 친구와 친하지 않은 친구가 갈리게 된다나와 코드가 맞는 아이는 앞으로도 더 친해질 것이고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코드가 다르다고 느낀 아이는 앞으로도 친해질 가능성이 별로 없을 것이다. 4월부터는 난장판 천국이 된다. 교사가 아무리 목청껏 말해도 아이들은 해맑게 재잘거린다.


30명이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것은 굉장한 사회생활의 경험이다. 여기서 종종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나와 맞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이다. 담임이라고 해서 아이에게 강제로 친하게 지내라 말을 할 수는 없다. 교우관계가 생각보다 쉬운 아이도 있지만, 그것이 너무 어려운 아이도 있다. 최소한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존중하면 작은 갈등이 생겨도 쉽게 풀리고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하지만 모든 것이 내 맘 같지 않다더군다나 사춘기에 접어든 고학년의 경우 풀지 못한 교우 문제는 결국 냉랭한 학급 분위기로 이어진다. 즐거워야 할 학교생활이 친구 얼굴을 보기 싫어서 가기 싫은 곳이 될 수도 있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학급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어서 빨리 1년을 지나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모든 친구와 꼭 친해질 필요는 없어요

 나는 오늘도 솔직하게 말한다. 이런 말을 하면 아이들은 멀뚱히 나를 바라본다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냐고. 아이들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지며 동공이 흔들린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들었던 말은 그래도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지 였을 텐데. 현실은 교과서와 다르다. 현실에서의 정답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이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은 물론 있다.     


반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지만왠지 노력해도 안 되는 친구가 있었다늘 담임에게 와서 친구들과의 관계를 소상히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인기가 있을지 물어보는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니.  친구들 마음까지 네가 바꿀 수는 없어그저 너를 좋아하는 친구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은 어떻겠니?' 이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했다가는 다시는 나에게 고민상담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나는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그 아이는 하루 건너 매일 나를 찾았고, 일 년 동안 친구를 찾아 헤맸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주는 편이 좋았을까? 그랬다면 아이는 바뀔 수 있었을까? 여전히 답을 모르겠다.     


아이들은 교실의 모든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다. 아이들의 세계도 어른들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들의 세계는 훨씬 복잡하다. 매일 교실에서는 크고 작은 갈등 상황은 일어나고, 대부분 해결되지만, 가끔은 풀지 못한 숙제로 남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조금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다. 


"모든 친구와 친하게 지낼 수는 없지만적어도 한 반에 있다면 서로 다른 친구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자우리는 일 년 동안 같이 가야 할 학급 친구니까. 부탁합니다." 나는 오늘도 정중하게 아이들에게 말한다.    


아이들은 그저 씩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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