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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우드 Apr 11. 2021

1학년 담임은 누가 하나요.

제가 하고 싶습니다만.

교사마다 잘 맞는 학년이 있고다를 테지만, 다수의 교사가 학교에서 편한 학년은 사실 존재한다고 말한다바로 중학년에 속하는 3-4학년이다그리고 어려운 학년을 꼽으라면 단연 선두에 1학년이 있다경력이 많은 교사도 결코 쉽지 않다고 하는 1학년이다. 고학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업도 일찍 끝나고 성과급도 많이 주는데도 1학년을 원하는 교사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1학년 담임은 누가 하는 걸까?  


1학년을 담임이 힘든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언어적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척하면 알아서 하는 고학년들과 달리 1학년은 찰떡같이 말해도 그걸 못 알아듣는다. 같은 한국말인데 왜 못 알아듣냐고 물어보면 안 된다. 당연한 것이 1학년은 학교의 언어를 처음 배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태어나 처음 옹알이를 하고 엄마 아빠를 하는 것처럼 학교에 처음 들어온 8살 아이는 갓 태어난 아기의 상태로 천천히 학교의 언어를 습득해간다.      


1학년 담임교사도 아무리 쉽게 반복적으로 설명을 해도 그 말을 1학년이 '제대로' 알아듣었다고 100퍼센트 장담할 수 없다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특성상 당연한 것이다같은 단어라도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때로는 말하는 어투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언어이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1학년과의 의사소통은 언어적 표현보다는 비언어적 표현이 상당히 많이 필요하다. 대화를 할 때 아이의 표정과 몸짓을 살피고, 가끔은 속마음까지 읽어야 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다행히 학교에 적임자가 있다. 


1학년 담임교사는 저경력보다는 고경력 교사가 많고, 실제 아이를 키워본 여자 선생님이 상대적으로 많다.  가끔은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만이 학생을 이해하는 폭이 넓다고 생각한 나머지 학부모와 관계에서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결혼하지 않은 교사에게, 선생님은 애를 안 키워봐서 모륵시겠어요.라고 말하는 학부모 앞에서는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어 지지 않는다. 지금 들어도 굉장히 속상한 일이지만,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학부모가 왜 그렇게 까지 말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하는 시기를 반드시 지나게 된다. 그때 사용하는 비언어적 표현(즉, 옹알이, 버둥거림)을 해석하고반응하면서 나름의 소통하는 방법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고이를 학교에서 적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아기는 말을 하지 못하는 시기에 표정과 행동만으로 충분히 의사 표현을 하고, 부모와 소통한다. 부모로서는 웬만한 촉을 세우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니다온 정신을 집중하여 아기에게 텔레파시라도 보내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소통에 열심이다. 그런 시기를 겪고 나면 체득된다. 소통이라는 것은 굳이 언어적 표현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처럼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도 원하는 것이 있고그것을 표현하려고 몸부림친다하물며 아이도 이런데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얼마 전 읽은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는 책 속의 아이는 말을 하지 않는다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의 소나무도 말을 하고새도 말을 하고나를 둘러싼 모든 사물이 저마다의 언어로 말을 건다하지만 아이는 결코 말을 할 수가 없다.     

학교에 가서도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아이들의 무표정한 시선을 견뎌내는 것만이 이 아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런 아이를 위로하듯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강으로 산책을 나간다강물은 자신이 할 일을 할 뿐이다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     


아버지는 말을 한다너는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라고. 강물이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자신의 언어를 갖고 있는 것처럼너 또한 너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고. 아버지가 말한 강물의 언어는 어떤 뜻일까알아듣지는 못해도 강물처럼 말한다는 것은 분명  누구에게나 그것이 가지고 있는 목소리가 있다는 뜻 이리라.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해도 소통하지 못해도 적어도 내가 가진 목소리로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강물 속을 헤엄쳐가며 자신의 언어를 향해 갔다나는 왜 남들처럼 말하지 못할까 절망하기보다는 강물의 언어를 따라 자신만의 언어로 헤엄쳐 가는 것이다.  이 아이도 언젠가는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겠지.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아이들이 의사소통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친구들과의 대화가 간절하지만, 마음처럼 입 밖으로 소리가 잘 나가지 않는 아이가 있는 반면 말이 너무 많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의사소통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해가 쌓이기도 하고, 마음의 문을 닫기도 한다. 때로는 분명 같이 들었는데도, 못 들은 건지 딴소리를 하는 아이까지... 점점 의사소통이 어려운 교실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만약 우리 아이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학부모가 있다면 한 번쯤은 확인해보길 바란다. 단순히 아이의 주의 집중력 문제인지, 말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건지, 아니면 정보의 차이가 불러온 대화의 벽이 생겼다든지. 과적으로 누군가와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언어를 세심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의사소통 능력은 다양한 사회생활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줄 알았지만, 점점 개별화된 사회에 살다 보니 소통의 어려움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오늘도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다면 한 번쯤 나의 언어를 돌아볼 필요는 있다.


나는 나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단순히 언어적 표현비언어적 표현을 떠나 오로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말을 갖고 있는 걸까. 생각해본다 아이든 어른이든 나만의 언어든 나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언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누군가의 소통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더욱더 나답게 만드는 나의 언어를 가질 필요는 있다. 


오늘도 나는 1학년 담임이 되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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