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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송이 꽃

김광석, 정밀아, 그리고 김도현의 꽃

by 엔틸드

꽃에게 여름은 조금은 안타까운 계절이다.

생애 절정의 순간, 구애의 몸짓을 활짝 펴는 그 순간에

정작 그 모습을 보아줄 만한 사람들은

더위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의 기운을 사랑하고

여전히 뜨거운 날들의 텁텁한 입맛을 기어코 한 잔의 물로 씻어내고서라도

여름이라는 계절을 누리기 원하는 사람들만이

여름의 꽃이라는 특권을 온 몸으로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제 점점 더 거세질

불과 같은 계절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기 시작한 이 즈음에

꽃에 대한 노래를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진 감각은 아니다.


오늘 나누고자 하는 꽃에 대한 노래들은

불타는 여름 속에서 그 생을 활활 불태우는

그런 꽃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되려 불구덩이 앞에서 목이 말라 지쳐 시드는

또다른 꽃들에 대한 헌시라고 할 만하다.


이렇듯 불타는 여름을 무릅쓰고서라도

채 뻗어오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지극히 우리의 삶과 같은 모습의 꽃을 향해

노래의 단비를 내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일찌기 김광석은

눈물같이 지는 꽃을 노래했다.

대놓고 가장 잔인하고 혹독한 계절인 겨울에도

겨울을 이겨내고 새로이 시작하는 봄에도

꽃은 지고 피고, 또 진다.


그 꽃은 그리고

여름을 살고 있을 것이다.

김광석이 꽃이 피고 지는 목적을 묻지 않았듯이

꽃도 스스로에게 그러하리라.


그것이 수동적으로 명멸하는,

그런 우주 보편적 물리법칙의 허무함이라고 말한대도

꽃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정밀아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한국 포크의 기둥이랄 수 있는 김광석의 후예들 중 한 명이랄까.

클래식 기타로 단순하고 조용하게 읊조리지만

아니, 그 때문인지 정밀아의 목소리에 위로받는 이들이 많다.


정밀아의 꽃은 나태주 시인의 싯귀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목소리도, 멜로디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사도 김광석의 꽃과는 전혀 다르다.

그 누구보다도 직접적으로, 따뜻하게 위로하는 꽃이다.


그래서 김광석의 꽃이 흐릿한 겨울 햇살을 좇아가며 겨우살이하는 꽃이라면

정밀아의 꽃은 봄 한가운데 어느 시냇가에서 이제 힘차게 피어오를,

그 아름다움이 이미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한 꽃이다.


여기에서부터는 각자의 취향이다.

넌 봄을 좋아하니? 난 여름을 좋아해 하듯이

두 꽃 중 어느 꽃을 좋아하는지 함께 듣고 이야기나눠보는 것은

서로의 마음들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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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의 꽃은 사막 위에 핀 꽃 같다.

국악적인 멜로디에, 언뜻 더욱 투박한 가사는

활짝피기보단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물을 머금는

선인장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난 여전히 꽃이다."라는 가사에서 가시를 발견한대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그러므로 김도현의 꽃은

사계四季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사막엔 계절이 없다. 땅의 황폐함, 그 무 nothing가

어느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 위에서 꽃을 피워낸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일 정도로.

그래서 많은 말이 필요없다.

때로는 그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위로일 정도로

노래는 최대한 말을 줄인다.


김도현의 종교성, 사막에서 만난 야웨라는 신이

그러므로 노래에서 계속 묻어나는 건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생명의 결핍, 약함의 연속

그 속에서 효율적이지 않은 꽃이나 피우는 건

사람의 상상보다 훨씬 더 귀중한 의미를 갖는다고

김도현의 꽃은 말하는 듯하다.




세 송이 꽃은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 꽃 따위는 빌딩숲에 쳐박힌 장식으로 전락한

이 번잡하고 뻔뻔한 도시를 거니는

우리를 향해 피어 노래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이 세 송이 꽃조차

인간의 손에 길러져 인간에 의해 포착돼

인간을 위해 노래하는 박제된 자연이 아닌가 하여

감동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노래와 이야기들과 느낌들이

스스로 그러하게 핀 이들을 만나기 위한 준비라고 믿으며

당신에게도 이 세 송이 꽃을 내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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