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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Apr 08. 2021

No Surprise

요즘 열심히(?) 직장을 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뭐 직장을, 굳이 열심히 구한다는 게 성립하는 말일까요?

자본주의 생산양식 체계 하에서야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 부쳐먹을 수도 없으니 일을 구하는 건 당연하지요.

여튼 그 와중에 면접 연락이 와서 오전 10시로 일정을 잡고 8시 30분쯤 핸드폰 알람을 듣고 일어나 넉넉하게 목적지의 지하철역에 내렸습니다.

태그하고 나가려고 핸드폰을 열었는데 면접 회사에서 띠리링~ 문자가?


급한 사정이 생겨 면접 일정을 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추후 연락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정신을 가다듬고 문자가 온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전 8시 17분...


네. 저는 분명 일어나서 알람을 끄고 집을 나서며 핸드폰으로 유튜브도 하고 음악도 들었지만, 전혀 미동도 없던 문자가

정확히 목적지 부근 지하철역을 내리고서 다시 집어드니 그때야 문자가 도착했던 것이죠. 회사에서 8시 17분에 보낸 문자가요.


이 핸드폰은 산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이런 증세를 보였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이런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참고 썼던 것 뿐이죠.

이런 핸드폰을 벌써 3년이나 썼네요. 안그래도 배터리 성능도 저하되고 밤이면 바꿀 핸드폰을 이것저것 찾아보곤 했는데 오늘 당장 실천에 옮겨야겠습니다.


SNS에 이러한 비보(?!)를 전하니, 지인이 어느 브랜드로 바꾸려 하냐기에


지금 쓰는 LG 스마트폰의 마지막을 지키고 싶다. 아이폰은 점점 이상해져가고, 삼성은 원래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지인의 한 마디.


마치 서울시장선거를 보는 것 같구나.”




저는 친족 중 한 명이 LG에서 근무했었고, 엘지 트윈스 야구단을 좋아하며, 백색가전도 웬만하면 엘지 제품을 썼습니다. 세상을 알게 되면서 보니 삼성보다 덜 나쁘기도 하더군요. 근데 그래봤자 대기업이고, 늘 선택지는 최악과 차악 중 하나였을 뿐이었습니다. 근대 이후 한반도, 한국의 역사도 늘 최악과 차악의 싸움의 연속이었고요.


이번에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오세훈은 지금 무상급식 지원을 받은 세대의 그 급식을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심지어 서울시장직을 수행하다가 쫓겨났던 인물이죠. 그가 역사를 잊은 사람들에 의해 다시 시장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구태의연한 민주당을 심판하려 했다고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더군요.


그래봤자 차악을 피하고 최악을 선택했을 뿐이죠. 철마다 반복되는 최악과 차악 사이의 심판놀이일 뿐입니다. 지금 당장이야 손에 쥔 한 표를 행사하는 주권자로서의 권리 행사의 기쁨을 누리겠지만, 여당과 야당을 오갈 뿐인 소모적인 심판놀이 속에 정작 주권자의 일상은 피폐해져만 갑니다. 우린 지금도 그런 식의 정치가 만들어내는 폐해 속을 살고 있습니다. 아니, 폐허라 해야 더 어울릴까요? 잠깐 달콤할 뿐인 분풀이식 심판놀이 끝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지금의 한국 사회는 마치 알림 문자가 수신되지 않는 제 핸드폰 같습니다. 분명 문자는 보냈는데, 이미 늦은 뒤에 도착하는.

사회 곳곳에서 미래에 우리에게 닥칠 문제를 경고하고 있지만, 심지어 그걸 가시화해서 보여주고도 있지만, 사람들은 외면하거나 쉬운 대증요법적 해결책을 취합니다. 제 핸드폰이 저를 곤경에 빠뜨린것처럼, 그런 태도는 한국 사회 전체를 곤경에 빠뜨릴 것입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저는 이번 선거에서 거대 여, 야당의 후보 중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 후보에게는 별 관심도 없었습니다. 다만 당선된 그 후보에게 표를 행사한 이들의 목소리를 기사를 통해 접하면서 깊은 절망을 느꼈을 따름입니다.


라디오헤드 radiohead의 인기곡 중 하나인 No Surprise 는 무기력한 현대인의 심리를 담고 있습니다.


No alarms and No surprises

알람도 없고 놀라움도 없는 삶을 방치하고 그 소용돌이에 끌려들어갈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폐허 뿐입니다.


이제 이 글을 쓰고 나면 ‘알림 없는’ 제 핸드폰을 바꿔야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저부터, 바꿔야겠죠. 그게 뭐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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