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엔틸드 May 29. 2021

<좋은 비판을 했다는 착각>


일전에 SNS에 <지구를 구한다는 착각>이라는 책에 대해 인상비평을 한 적이 있다.

살 돈도 없거니와 이런 책을 사서 본다는 게 돈 아까울 것 같아 동네 도서관에 신청해서 막 읽어보는 참이다.


근데 어쩌면 첫 장에 등장하는 내용이나 표현부터 (번역을 그렇게 한 건지) 정확히 "미국 남성 지식인"의 전형적인 사고 체계와 관점을 지녔는지...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간단히 말해서 이 책에서 그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외치는, 이제 곧 인류가 끝장나고 지구가 멸망한다고 소리치는 광야의 예언자들"이 얼마나 표리부동하고 그 주장의 근거가 희박한지를 "까대고 /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몇십 년 살면서 경험한 바 기독교 비판으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나 마더 테레사의 위선(?)을 폭로한 책이나, 본인들이야 본인들이 그런 황색 저널리즘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대중들에게는 정확히 그것이 내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게 문제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여전히 부족한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들"이 아니라 "환경보호 하라고 떠들어대니까 마지못해 하는 척은 하는데 하기 싫고 귀찮은 이들"에게 좋은 면죄부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저 멀리 500m 밖에 있는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해 그 주변에 있는 담론들의 생태 다양성을 죄다 몰살시키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시원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시원함을 근거삼아 주변의 성찰하는 환경보호론자들조차 죄다 묶어 낙인찍고 두드려 팰 것이고. 그들이 얻을 결론은 뻔하다. 기후위기는 구라고, 원전은 청정 에너지이며,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는. 책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뉘앙스만 비슷하면 충분한 근거가 되니까.


저자는 좋겠다. 레이첼 카슨의 기념비적 저작 <침묵의 봄>이래로 가장 탁월한 업적이라는 찬사도 얻고, 나무 베어 만든 이 책으로 돈도 벌고. 나무야 미안해. 근데 아쉽게도 <침묵의 봄>까지 갈 것도 없이 이 책 자체만 놓고 봐도 필력이나 만듦새 어느 것 하나 "명저"의 조건을 갖춘 구석이 안 보인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볼 참이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저자는 나름 열심히 중립적인 과학적 근거들을 나열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은 분명 환경을 위한 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면교사든 반면교사든 말이다. 그래도 다 읽는다는 보장은 못 하겠다. 그래도 환경운동의 일선에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 분들의 독후감이 문득 궁금해진다.


+)

책을 대충 훑어 본 뒤에 사족을 덧붙인다.


나 역시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소박하게나마 남들이 하는 실천은 따라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지만,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어디에나 인간이 예측하지 못하는 가능성들이 가득 상존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실제로 세상은 그러하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의 저자나 강력한 환경보호론자들 모두 놓치고 있는 지점이 있다는 뜻이다.


비록 이 책에서는 원자력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려 애쓰고 있지만, 백번 양보해서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술 발전과 정부 및 시민사회의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처럼 원피아가 날뛰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떤 정책이나 운동, 관점에는 반드시 헛점이 있게 마련이고 그걸 메우기 위해 서로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한국에서' 이 책이 그런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책을 살핀 이후에도 회의적이다. 차라리 이 책이 번역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노이즈 마케팅이 가능한 책으로 괜찮은 수입을 올릴 수 있겠다는 출판사의 계산이나,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의 왠지 뻔히 보이는 것 같은 속내를 생각하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미국은 상황이 다른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는 이 책이 소모적 논쟁이란 이름조차 붙이기 부끄러운 진흙탕 싸움이나 조금 일으키고 말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벌써 이 책을  네 명이나 예약해놨던데, 반납하기가 무섭다. 그 네 명은 이 책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의문의 대답이 벌써 보이는 듯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볼트 : 세계화에 저항하는 세력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