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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 Inner

by 엔틸드

심규선은 그러니까, 남들과 비슷하게 에피톤 프로젝트 앨범의 피처링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꽤 오랜 심규선의 팬인 셈이다. 그때가 비교적 활동의 초창기였으니까.


데칼코마니 앨범을 통해 푹 빠져든 후로, 정말 한동안 심규선만 들었다. 심규선 또한 내 덕질 계보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몇 년간을, 심규선 앨범만 듣는 시절들이 내 삶을 채웠다. 사상 초유의 심규선 콘서트 실신 사건을 내 두 눈으로, 그것도 관객석 앞자리에서 목격하고서는 며칠간 그 충격으로 생활이 힘들 정도로 푹 빠져있었다.


그러다 파탈리테 앨범을 이후로 급격하게 소원해졌고, 한동안 심규선은 내 인스타 피드 어딘가를 흐르는, 예전에 좋아했던 음악들의 주인공일 뿐이었다.


작년 한 해, 코로나 효과도 있었겠지만 삶의 의미와 목적과 방향을 잃고 "부초처럼 떠다니"던 그 시절엔 거의 모든 음악에 대해서 귀를 닫고 살았다. 그냥 습관적으로 들을 뿐.


그 떠다니던 시절의 끝자락, 어쩌다 다시 듣게 된, 그 전에는 좋은지 나쁜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스쳐갔던 이 노래가 말 그대로 마음을 때렸을 때, 수많은 상념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건 그 기록이다.



애를 쓰는 것도 참는 것도 아무 의미 없다고

잠에서 깨면 나는 도망치고 싶었지

늦은 오후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앉아서

나의 허공을 노려보는 것도 지칠 때쯤


지난 1년 넘는 시간, 매일매일의 내가 딱 이랬다. 애쓰는 것도, 이 현실을 견디는 것도, 절제하는 것도, 그것에 어떤 의미도 방향성도 없고 심지어 그런 것을 구하고 싶지도 않은 마음이었기에, 잠드는 게 그나마 좋았고 잠에서 깨면 도망치고 싶은 현실이 날 덮치는 게 싫었다.
그래도 용하게 밥은 챙겨먹고 살았지만, 때로는 정말 말 그대로 늦은 오후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멍하니 않아서 "나의 허공", 나의 빈 마음, 그것을 그냥 바라보다가 때로는 무섭게 노려보다가 했다. 그것도 한 두번이지, 도가 지나치면 지쳐버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나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정확히는 버려두었었다.


구원자를 보내줘요 난

누구라도 좋으니 단 한 번만

내 이름을 불러줘요 난

괴롭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요


구원자라는 단어는 너무 기독교적인 표현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고, 딱히 그런 거창한 누군가를 기다린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먼저" 내 이름을 불러주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긴 했다. 이 떠다니는 삶 속에 그런 누군가가 무인도처럼 내게 툭 하고 부대껴온다면 기꺼이 힘을 내어 잠시 머물 마음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머물렀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부유는 얼마나 더 길어졌을지...
마지막 줄의 가사는, 이 떠다님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내 내면Inner의 눈물이 던진 메시지였다.
"난 괴롭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 그러니 너 자신 만큼은..."
이어질 말은 노래가 대신해주고 있다.


믿었던 꿈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대를 등지고 깊은 생채기만 남겼대도

잊지는 말아줘 네게 정말로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은 그대의 안에 다 있어요


떠다니는 삶을 살면서 딱히 누군가가 나를 배신하고 상처를 준 일은 없었다. 어쩌면 그건 나 자신이었을지도?
그 다음 가사가 이 노래의 주제인데, 부유하는 삶으로 들어가기 이전에는 메시지에는 동의하지만 이런 전달방식이 너무 오글거린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첫 싱글앨범인 "찹쌀떡"을 녹음할 때의 일이다. 당시 지인이던 프로 음악인이 내 노래를 듣고 싱글을 내주겠다고 해서 스케치 음원과 악보 등등을 갖고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당시 "찹쌀떡"은 3절까지 있는 제법 긴 노래였는데, 그 분이 보더니 정중하게 3절은 빼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만든 이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라, 감정이 동하는 걸 참고 이유를 물었더니, 3절의 가사가 너무 교훈적이고 대놓고 노래의 주제를 설명하는 톤이라서 1절과 2절의 정서를 덮어버린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실제로 그랬고, 결국 3절을 뺀 채로 음원을 냈다. 참고로 지금도 라이브에서는 3절을 부르지 않고, 가사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이 후렴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들어간 이 가사 또한 예전의 나에겐 내 노래의 3절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런 직설적이고 교훈적인 부분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때가 있다. 물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런 면에서 "찹쌀떡" 3절을 뺀 건 신의 한 수였다.)


다른 누군가의 그림자에 숨어있는 자신이

나조차 이제 익숙해져 가고 있을 때쯤


떠다니는 삶을 살다보면, 이런 건 너무 익숙해질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택하게 되는 삶의 방식 같다.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남들의 소리와 몸짓에 나를 얹고 그에 맞춰 반응하며 적당히 투덜대는. 그러다 정말 위험한 순간은, 그런 내가 원래 나 자신인양 익숙해져갈 때 온다.


내 악마를 죽여줘요 난

스스로 다치게 할 것만 같아요

이 형벌을 끝내줘요 난

한 번도 뜨거워 본 적이 없어요


'악마'와 '형벌'은 심규선 노래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오필리아"라는 곡이 영화 <오필리아>에 실렸다고 하던데, 심규선이 서양의 극 장르를 즐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표현이다.
떠다닐 때의 나에겐 순서가 반대로 다가왔다. 뜨겁지 못한 삶이 길어지면서 그런 내가 물 흐르듯이 스스로 다치게 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었으니까.


믿었던 꿈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대를 등지고 깊은 생채기만 남겼대도

잊지는 말아줘 네게 정말로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은 그대의 안에 다 있어요


길었던 밤들이 터질 것 같은 앙금이

눈물로 차올라 깊은 물 속으로 잠긴대도

잊지는 말아줘 네게 정말로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은 그대의 안에 다 있어요


길었던 밤들과 터질 것 같은 앙금이 눈물로 차올라서 깊은 물 속으로 잠긴다는 건, 무엇일까? 머리로 상상을 해보지만 쉬이 그 광경이 그려지지는 않는다. 주의를 기울여 오래 들어야 그 광경이 조금씩 느껴지는 게 심규선 노래의 특징이다. 그래도 가사를 보면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은 것도 심규선 노래의 특징이다.
그래도 무엇보다 이 노래의 모든 것은,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내 안에 다 있다"는 후렴의 구절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그 사실만 마음 깊이 담아두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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