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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Dec 20. 2021

그 사람의 행보에 대한 단상

오늘, 그 사람이 전혀 갈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갔다.

페미니즘 정치인의 아이콘이었던 사람이 국민의 힘 진영의 선거캠프에 합류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이없어하고 배신감을 느꼈다.

그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는 다들 이미 많이 하고 있을테니, 그와 관련된 단상이나 조금 남겨본다.


그 사람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을 때, 나는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그 이후로도 여러가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하며 던졌던 이런 저런 발언들은 기존의 정치인보다도 못한 수준낮은 것들이었다.


구태 정치인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를 하려면 그들보다 노회하든지, 아니면 월등하게 지혜로워야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헛똑똑하지만 구태 정치인을 잘 닮아가고 있기에 정치판에서 살아남은 그 당의 대표가 차라리 더 나아보일 정도니까.


나는 어느새부턴가 진보-보수라는 이차원적인 노선으로 정치와 사회를 보는 버릇을 버리고 있다.

그런 눈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심지어 사람을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고 휩싸이는, 현 여당 지지자들의 주특기인 "K-팬덤" 정치를 벗어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 정치인이 입안하고 추진하는 정책인데, 자세히 쳐다보면 정책에는 생각보다 좌우가 없다. 수구 야당 의원이 꽤나 앞서가는 정책을 내놓을 때도 있고, 진보정당 의원이 생각보다 보수적으로 보이는 정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정책이든 그게 시행됐을 때 어떤 작용을 하고 구조적인 변화를 낳는가, 간단히 말해 누구의 삶을 지지하는 구조를 만드는 쪽으로 향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을 보고 정치인을 뽑아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형식적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스며들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삼김정치, 인물정치를 벗어나서 정책에 따라 투표하자는 분위기가 일정하게 만들어졌다. 물론 각 당과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 분위기를 이용하려고 했다.


정책을 우선으로 하는 투표 정서가 주류가 되긴 힘들어도 광풍을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는 힘은 가져야 하는데, 지금의 한국은 오히려 점점 후진하고 있는 분위기다. 대선 후보라고 돌아다니는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책을 우선하여 평가하지 못하니, 전문 정치인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그러니 자꾸 어디서 옛날 정치판이 선호할만한 이상한 인물들이나 주워오는 것이다.


이 와중에 그 사람의 이상한 행보는 구태 정치판에 오염되는 영역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는 증명이 되었다. 그 사람을 비판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이 느끼는 배신감의 기저에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을 중시하며, 인기를 좇아 사람(신의)을 버렸다"는 평가가 작용하고 있다.


그 사람을 지지한 이들은 지금 당연히 처참한 마음일 것이다. 나 또한 분노에 오늘 하루를 망쳐버렸으니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정확히 깨달아야 한다. 지금 한국 정치에는 "인물"이 아니라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국회는 정책을 만드는 기관이기에,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어 홍보하고 지지하며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고서는 보수든 진보든 여든 야든 이런 저런 핑계와 속임수로 사람들의 표를 등쳐먹는 승냥이들만 그득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에게 한 마디 남기고 싶다.

"당신이 버린 건 단순히 당신의 지지자가 아니다. 먼 훗날 알게 될 거다. 오늘 당신이 버린 건 당신의 모든 것, 당신의 인생이었다는 사실을. 만약 그런 느낌조차 갖지 못한다면, 당신은 사람의 자격도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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