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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Feb 08. 2022

스포츠와 정치

대선의 질이 하향세인 이유

여러분은 "비운의 천재"라는 말을 알고 계신가요? 제가 어린 시절, 언론에서는 유난히 그런 말들이 많이 돌았습니다. 스포츠계를 비롯해 문화 예술 분야에서 특히 그런 표현들이 많았죠. 음악 영역에서는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끝내 더 꽃을 피워내지 못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이공계 영재는 어릴적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현재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죠. 그래서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하게 "육성 시스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천재가 비운을 맞아 - 정확히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 사라지는 일들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아주 가깝게는 현재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차준환 선수를 비롯, 야구계의 원태인이나 이정후와 같이 어릴적부터 그 재능으로 이름을 알렸던 천재나 유망주들이 결국 그 이름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는 사례가 늘고 있으니 말입니다.


농사를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은 "흙에 씨를 뿌리면 알아서 자라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농사를 지어보면 "농사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농부의 체계적이고 정성스러운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닫게 되죠. 


한국사회가 발전하면서 경험한 바가 이와 비슷한 듯합니다. 천재는 그냥 두면 알아서 클 것이라고 방치하거나, 빨리 키워 열매를 맛보려고 잘못된 육성방식을 택해서 '비운'을 만들어 버리곤 했죠. 그런 실패를 겪으면서, 세계와의 경쟁이 만만한 일이 아님을 경험하면서 제대로 된 육성 관리 시스템과 지속적인 지원만이 "제대로 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게 된 것이죠.




스포츠, 문화, 예술 등 다른 분야에서 적용되는 이 경험칙이 유독 정당정치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흥미를 끕니다. 천재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우르르 몰려들어 찬사를 보내고, "자강두천" 한바탕 피튀기는 싸움을 벌이고 나면 살풀이라도 끝난 듯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손을 놓은 채 다시 4년 뒤의 싸움을 기다리는 쳇바퀴 도는 시절을 우리는 이른바 문민정부 이후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생긴 근자감때문인지는 몰라도 한국이 고도의 발전된 민주주의를 갖고 있다는 착각 속에 유럽이나 여타 다른 민주국가의 체제를 참고하며 "육성 관리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은 전무하고,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 와중에 "근대화 시기를 치열하게 지탱하던 정치 천재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천재도 사라지고 제대로 된 육성도 실패한 한국 정당정치영역에는 전문정치인은 사라지고 적당히 튀거나 적당히 바보같은 인물들만 남아 구태와 적폐 행위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이를 똑똑히 확인하고 있고요.


시대가 요구한 바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20세기와 21세기의 경계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세계정세 속의 한국이 어떤 입지를 가져야하는지를 제시하는 정치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심하게 요동치는 이 기후위기와 자원고갈의 시대에, 새로워진 흐름에 발맞춰 한국사회가 어느 길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대선 후보는 아무도 없습니다. 애초에 인물 중심으로 돌아가던 여의도는 그나마 설출한 인물들이 사라지자 육성 관리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어떤 대의명분도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허약체질이 됐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여전히 '덕질'할 특정인들에게 달려들 생각만 하는 우리들입니다. 스포츠 문화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새싹들이 비운 속에 사라져가는 데는 큰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정작 우리네 삶을 좌지우지하는 정치판이 썩어가도 판을 뒤집기는 커녕 냉소주의 아니면 팬덤 둘 중 하나밖에는 택할 줄 모르는 우리들이야말로 한국 정치를 이 모양으로 만든 주범일지도 모릅니다. 정당정치가 요구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을 키우는 육성 관리 시스템을 지원하는 데 소홀한 우리들 말입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한 때 한국사회를 울렸던 가톨릭의 기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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