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인류>, 이상희
"한국 최초의 고인류학자"로 <인류의 기원>, <인류의 진화>를 출간하며 교수 활동을 하시는 미국뿐 아니라 국내에도 그 이름을 알리신 이상희 교수님께서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 <사소한 인류>를 내셨습니다. 몇년 전 기회가 되어 <인류의 기원> 책을 들고 가 싸인을 받은 적이 있었고, 지금까지 고이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 사람들은 이런 책은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전작들은 모두 제가 도서관에 신청해서 들였기 때문에...) 이 책은 누군가 이미 신청을 했고, 대출 상태여서 예약을 걸어 며칠 더 기다린 다음 빌렸는데 그 사이 제 뒤로 세 명이나 예약이 걸려 있었습니다.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네요.
웬만한 책의 평균인 300페이지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분량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고인류학 이야기가 슬쩍 섞여 들어가 있기 때문에 술술 읽을 수 있지만, 곱씹을 만한 통찰과 영감을 주는 부분이 참 많은 책입니다. 그 중에서 한국 사람들이 흔히 "평등문화"라고 생각하는 "직업에 상관없이 이름으로 부르기" 문화에 대해서 저자는 조금 다른 해석을 하는데요, 아마도 v유색인종v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주는 듯 합니다.
며칠 전에 뜬금없이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에 꽂혔습니다. 영상 중 어느 부분에서 영국남자 조쉬의 어머니가 조쉬에 대해 말하듯이, 저도 좋은 게 있으면 남에게 권하고 저와 비슷하게 느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기를 즐겨하는 타입인데, 조쉬가 만난 한국음식이나 문화를 다른 영국인들이 체험하며 놀라워하는 모습이 꽤나 중독성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영상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해볼만한 지점들을 발견했는데요, 한국음식이 풍미가 다양하다든가, 쌈과 같은 방식이 한 입에 여러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든가, 확실히 영국사람들은 채소를 잘 먹지 않는다든가, (무를 처음 먹어보는 사람을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씀바귀나 도라지도 아니고 무조차 안먹는 세상이 있다니 오 마이...걸...), 건강보험이 비싸 아프지 않으려고 다들 열심히 운동한다는 한국에 한창 돌던 이야기가 전 사회적인 풍조는 아니라든가 등등.
영국남자 채널에서는 한 고등학교와 오랫동안 시리즈물을 제작했는데, 영상에는 조쉬의 친구인 교장선생님도 자주 출연합니다. 학생들은 그를 "스미스"라고 부르지만, 번역된 한글 자막에는 "교장선생님"으로 표기됩니다. 그리고 음식을 체험하고 한국을 여행하는 학생들과 교장선생님 모두 남성입니다.
저는 어쩌면 작은 사회와도 같은 학교에서 맺어진 이 관계형태를 이상희 선생님이 지적하는 "이름을 부르는 평등문화"와 비교해보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상희 선생님의 통찰을 대하면서, '역시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우리가 지향해야한다고 말하는 평등, 자유 등등의 가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손에서 쉽게 흘러내리는 모래알처럼 되기 쉽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이름을 부르는 문화 다시 말해 서로의 나이나 직위를 고려하지 않는 문화가 서로 간의 평등을 만들어줄 것 같지만, 그런 문화권에서는 다른 기준으로 차별을 행할 수 있습니다. 서로 편하게 이름을 부르면서도, 그런 문화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를 이상한 사람 The Weird으로 여기며 차별할 수도 있고, 인종이나 다른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라는 관용구가 있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 어느 지점에서는 이 말을 거의 법칙처럼 여기고 있는데, 어디 살든 피부색이 어떻든 성별이 어떻든 나이가 어떻든, 인간-사람person (요즘 인류학에서는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으로서 공통적으로 채워져야할 것들은 똑같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고, 자고, 싸는 행위, 흔히 의식주라고 말하는 일들입니다. 의식주에 기반해서 생각하면 '인류'라는 개념으로 지정할 수 있는 시기 아니 그 이전부터도 인간-사람은 먹고 마시고 자고 어쩌고...했고, 그런 의미에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상희 선생님이 잘 알려주시듯, 예전 교과서에서 점차 직립보행을 하던 직선적임 모습의 계단식도 아니고, 한 뿌리에서 나와 여러 가지를 치게 된 나무식도 아니고, 오히려 다양한 수원으로부터 이리저리 얽혀들어 수많은 물줄기를 이루는 강물처럼 진화한 인간-사람의 세계는 정말 다 똑같기만 할까요? 어쩼든 세계는 하나, 위 아 더 월드일까요?
왠지 뻔한 질문을 하게 된 듯하다는 겸연쩍인 기분을 제쳐놓고 답을 해보자면,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입니다. 인간-사람이 사는 세계는 의식주 주변의 생태적인 모습은 비슷하게 느껴지겠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식, 그리고 그 외의 영역에서 삶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여러 매개변수에 의해서 달라질 겁니다. 강력한 소통 매체의 발달이 가져다 준 몇 안되는 혜택이 있다면, 이런 사실을 바로 피부로 알려준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영국남자 채널을 보면서 영국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영국뿐 아니라 한국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칭찬하는 요소들은 사실 해방 이후 독재를 거치며 만들어진 고통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국가가 편의대로 인정해준 땅에 판잣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의 터전을 빼앗고 그 자리에 세운 수많은 아파트, 오직 부를 위해 밤낮없이 인생을 갈아넣게 한 결과로 만들어진 밤문화, 질낮고 부족한 일자리로 인해 빠르게 퇴직한 사람들이 우후죽순 개인사업자와 소상공인이 되어 만든 자영업 시장, 그리고 이런 무수한 소상공인의 고혈을 짜내며 플랫폼 업체가 제공하는 신속한 배달문화, 개인의 에너지를 완전히 갈아넣어 상품화시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케이팝...
세계로 뻗어나가는 케이팝이나 케이 운운하는 영역들을 볼때면 저는 자동적으로 이 모든 그림자를 떠올립니다. 외국인들이 놀라워하는 식당의 반찬대접과 고강도 육체노동이 수반되는 한국음식의 퀄리티를, 그 중심에 있는 현재 중장년 (특이 여성)층이 떠나고 난 뒤에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영상을 보다 이 지점에 생각나면 저도 모르게 "지금 할 수 있을 때 즐기세요..."라고 중얼거리곤 합니다.
이상희 선생님의 신작 <사소한 인류>에는 이렇듯 지금을 사는 우리가 한 번쯤 곱씹어볼만한 인간-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 빛과 그림자들이 강물을 이루며 흘러다닙니다. 책을 덮을 즈음에는 이상희 선생님이 고인류학을 통해 "인간-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가면서 소중히 여기게 된 협력, 다정함, 평등, 자유, 평화와 같은 높은 수준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다채로운 단서를 파헤치는" 학자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짐작이 맞다면, 저 또한 한 명의 인간-사람으로서 그리고 독자로서 그러한 지향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