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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 Say

30대 이후로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

by 엔틸드

2017.1.18


1.

이를테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랜덤 플레이를 눌렀는데 / 오늘 아침 내 기분같은 노래를 들려주는 잭팟은 / 이를테면 랜덤 플레이가 벌인 확률게임에 내 기분의 확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얻어진 성과다 / 이를테면 사람들은 사랑을 운명이라 믿고, 이별을 우연이라 분석한다 / 이를테면 사람은 무릇 좋은 가능성을 나쁜 가능성 속에서 솎아내려 무의식 중에 애를 쓰지만, / 이성과 의식의 체에 채 걸리지 않은 검은 돌이 밥에 들어가 삶의 식탁에 오를 때, / 때로는 아직 빠지지 않은 어른의 유치를 저도 모르게 뽑아주는 행운이 된다는 걸 알 수 없다 / 가능성의 가능성은 면과 점처럼 한데 모여 사랑이라는 글자를 이루지만 조금만 멀리 보면 글자들이 모여 이별을 그려낸다 /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인생을 점점 더 멀리 보며 가까워진다.

2.

칼바람이 부는 겨울날, 너무 추워서 옷깃을 여미려고 보니 패딩 끝부분까지 채 다 잠기지 않았고 양손엔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고 전날 내린 눈이 쌓이고 녹아 길바닥은 미끄럽고 더러워 어디 내려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 쩔쩔매던 것과 같은 순간이 삶의 연속이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은가.

당장 옷깃을 여미지 않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내려놓을 데야 어딘가에 있을테지만 문제 자체보단 당장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문제보다 더 고통스러울 때가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치열함은 선택을 강요하고 옷깃을 여미든 그렇지 않든 우린 그에 대한 변명을 하게 되고 그런 것들이 쌓여 경험이 되고 내가 감기에 약한지 손에 든 것을 내려놓는데 약한지 알게 되고 그렇게 선택의 시간을 줄여나간다.

30대 이후로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는 바로 이 선택의 경험이 쌓이는 만큼 선택할 것이 늘어나기 때문이고 나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많아지는 만큼 선택은 관성이 되기 때문이다. 관성적인 선택. 만성적인 선택의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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