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삶에 대하여 (1)
나는 심신에 전환이 필요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에너지가 막혀서 뚫리지 않거나, 뭔가 알 수 없는 위기가 왔을 때 켜지는 사이렌이 "방 정리"다.
부모님과 동거할 때는 제한적으로 내 방만 대상이 되었지만, 독립한 지금은 살고 있는 셰어하우스의 내 방이 주된 "전쟁터"다.
내 방에는 크게 책장, 옷장, 작업(컴퓨터)책상, 악기, 책꽂이와 진열대 역할을 하는 선반이 있다. 침대는 없다. 요와 이불을 펴고 자기 때문이다.
이사 준비로부터 이사 후 몇 개월간은 정말 심각한 상태였다. (하지만 혹자는 그런 내 방을 보고도 '깔끔하다'고 했다. 내가 결벽증은 없는데, 도대체 내가 깨끗한 수준이면 다른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새로 장만하고, 작은 방이지만 스스로 배치했다. 그 와중에 산 만큼 버렸다. 특히 책과 옷을 많이 버렸는데, 버리는 가운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사람이란 존재는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인데, 주거지의 크기에도 적응을 하는구나. 그리고 그 크기는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크기를 조절하기도 하는구나."
책장은 좁고, 두고 싶은 책은 많았지만, 결국 나는 중요도에 따라 버릴 (팔거나 공유할) 책과 둘 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정이 힘들 때 내 질문은 참으로 극단적인 데까지 미친다. 예를 들면 -
"이 책을 버리거나 전자책으로 스캔을 뜬다면 지금의 문명이 파탄에 이르렀을 때 인류가 이 책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상관없이 버려도 될 책인가?"
정말 우습지 않은가? 인류 문명의 파탄은 둘째치고 아무리 듣보잡스런 책이라지만 이 책의 운명을 왜 내가 걱정하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내가 어떤 물건이든 업수이 여기지 않고, 신중하게 사고 두며 버리는 일련의 과정에 작용한다.
옷은 책보다는 조금 낫다. 독립 전에는 주로 어머니가 사준 옷을 그냥 주워 입었는데, 독립을 하는 시기에 맞게 나도 스타일링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인생 처음으로 올라왔고, 이사 후 옷 정리는 좀 더 수월했다.
단지, 어머니가 옷을 살 때마다 얼마짜리라고 말했던 옷들, 다시 말해 가격이 꽤 되는데 세일해서 샀던 옷들은 버리기까지 망설임의 기간이 좀 더 길다. 하지만 결국 요와 이불까지 들어가야 하는 옷장의 상황과 분비물로 인해 누렇게 되어버린 옷의 상태를 핑계삼아 이별의 수순을 밟게 된다.
물건에 영혼이 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 손을 거쳐가는 물건들이 제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은 영 마음이 쓰이고 힘들다. 그래서 아직 쓸모있는 것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망설이지 않고 나눈다.
자본주의는 "가격"으로 물건의 가치를 결정하지만, 그건 교환가치일 뿐 사용가치는 드러낼 수 없다. "자본주의의 물신성"은 또 한 겹 더 물건의 가치를 자본주의적인 색채로 왜곡시켜 버린다.
그럴 땐 좀 단순하게 생각하면 편해진다. 나에게는 쓸모가 없지만 여전히 물건의 가치는 존재하고, 그렇다면 그 쓸모를 찾는 누군가에게 이 물건이 건네진다면 더할나위 없다고 생각하면 몸과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1여년 가까이 전쟁을 치루고도 나는 오늘도 몇 시간 동안 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를 둘러봤다. 이 좁은 방에서 무엇을 그리 고민을 하는 건지... 아니, 좁은 방이기에 공간의 효율성을 따지느라 나에게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물건을 버리거나 정리하려는지도 모르겠다.
"좁은 방"에서 추상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일상이라는 현실이 우리 존재들을 무겁게 누르지만, 동시에 그런 악조건을 방 정리로 극복하는 데서 스릴을 느끼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 씨익 웃음이 나온다. 후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