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삶에 대하여 (2)
혹시 '티탄벼림'을 아는가? '전쟁벼림'은? 벼린다는 게 뭔 뜻인지도 모르겠는데 갑자기 류현진 이글스 복귀하는 소리냐고? (한 문장에 더블 덕밍아웃을 해버리는 이 효율적인 글쓰기를 보라! 참고로 이글스 팬은 아니다.) 아마 모르는 분이 대부분일 것이다. 왜냐하면 저 단어는 블리자드(...)의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W>의 영어 단어를 한글로 번역해서 만들어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사용된 '벼림'의 원래 영어 단어는 'forged'이다. 한글 '벼리다'의 뜻은 1. 날이 무딘 연장을 불에 달구어 두드려 날카롭게 만들다. 2. 마음을 긴장시키거나 가다듬어 가지다. 이렇게 두 가지다. WOW 게임에서의 전쟁벼림과 티탄벼림은 일반 아이템이 강화되었을 때의 수준을 표현하는 의미로 쓰인다.
혹자는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야, 아무리 버림과 벼림이 한 끗 차이라지만 이거 너무 드립을 다큐로 끌고 가는 거 아냐?" 는 생각을 지금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그냥 각운이 맞아떨어진다는 이유로 얼른 제목만 저장해놨다가 이렇게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글을 쓰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렇다면 그냥 이대로 글을 버릴 것인가? 만약 그랬다면 여러분이 이 문장을 읽고 있을 리 만무하다. 이왕 시작한 거, 조금 더 벼려보기로 한다. 이 글이 탄생하기까지의 이 의식의 흐름이 실은 이 글의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버릴 때 끝까지 하게 되는 고민 중 하나는 "이게 정말 쓸모가 없는 것일까?" 이다. 택배로 온 물건을 v언박싱v하면서 찢어버린 비닐 조각을 보고 쓸모를 고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거에 사용했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왠지 가까운 미래에 사용하게 될 것 같거나, 버리기에는 여전히 본연의 기능을 다 하고 있다거나, 내게는 쓸모없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것 같을 때 고민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말을 하고 글을 읽는다. 언어는 쓸모를 규정하기도 하지만, 쓸모 그 자체를 담고 있기도 하다. 누군가 별 의미없는 인사로 던지는 '건강하자'는 말 한마디에 누군가 건강을 되찾기도 하고, 누군가는 노래 가사로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의 발치에 툭툭 채이는 흔한 말들을 주워다가 벼려서 메시지를 전하고 감동을 담아내는 것이 소위 예술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 일상을 파고든 단어 중 하나가 '업사이클링', '새활용'이다. 쓸모가 없어졌다고 생각되는 소위 '고물'을 조합해 '쓸모'를 만드는 작업이다. 누군가는 자전거 바퀴로 카페 인테리어 장식을 만들기도 하고, 플라스틱 더미를 모아 예술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이 또한 하나의 '벼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예술을 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때 벼려지는 것은 사실 '물건'이 아니라 '인류'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객체들을 통해 오히려 우리를 벼린다. 그 벼림 속에 객체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 없는 이야기를 듣는다. 과학기술은 그것이 발견한 법칙과 원리를 통해 세상을 보고 경험하며 판단하는 우리의 시야를 벼린다. 인간의 지성과 감성은 대장간에서 벼려지고 있는 양날의 검과 같다. 예술과 과학기술은 우리가 쓸모를 발견하지 못하고 버린 것들을 주워 도리어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벼리는 대표적인 활동이다.
벼림이 단순히 '강화'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예술과 새활용이 그렇게 하듯 멈춰버린 객체에게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를 부여해 쓸모와 가치를 증명해내는 일이라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일상으로부터 자연을 '벼리는' 거대한 작업이 꼭 필요하다. 우리의 문명은 자연을 멈춰버리고, 생태계의 의미를 지우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쓸모를 자꾸만 깎아 없애고 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범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오히려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은, 환경은, 지구는 우리에게 '무한한 쓸모'를 가지고 있을 뿐더러 우리가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존재다. 아니 우리가 지구를 버리기 전에 지구가 우리를 버려버릴 것이다. 지구는 인류라는 게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백해무익한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가 이제 곧 맞이할 '파국'을 거울삼아 보여줄 것이고, 그렇게 인류의 문명은 막을 내릴 것이다.
가벼운 톤으로 시작한 글이 엄청나게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이고도 일상적인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언박싱에 찢겨진 저 비닐덩어리는 썩지도 않고 몇천년을 버틴다던데, 인간에게도 자연에게도 쓸모없어진 저 '쓰레기들'이 과연 '벼려질' 가능성이란 전혀 없는 것인가? 거의 매일 내 마음 속 어딘가를 조금 그러나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질문이다. 예술과 과학은, 지성과 감성은 질문을 시작하게는 할 수 있다. 행동을 도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행동의 주체는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의 쓸모를 지워버리고 있는 인간, 바로 우리다. 나와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버려지는 인간'이 아니라 '벼려지는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