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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Mar 05. 2019

탈코르셋에 대한 이상한 오해

얼마 전에 읽은 <수학의 감각>이라는 책의 내용 중에, 사람들이 저지르는 논리적 오류 중 하나가 "비오는 날에 빨간 장미를 선물할게."라고 말하면 "그럼 비 안오면 빨간 장미를 선물하지 않겠다는 거냐?"고 응수하는 거라는 부분이 있다. A라면 B이다. 를 A가 아니라면 B가 아니다. 라는 결론으로 비약해서 해석하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 관련해서 '탈코(탈코르셋)'은 생활밀착적인 이슈 중 하나다. 방금도 탈코 관련 트윗을 하나 봤는데,   

//탈코 선언하면서 남성문화가 만든 코르셋을 찾고 그것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 하는 건 결국 남성 헤게모니를 강화하는게 될 '수 있다', 피해자가 익숙한 방식으로 자신의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고백하고 그 피해의 기억에서부터 벗어나려 하는 것보다는 '당신의 가해는 내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고 선언하는 것이 오히려 강력할 '수도 있다'는 주장.//


이걸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단발에 노 브라 노 메이크업 치마 안입기 하는 사람들은 남성 헤게모니를 강화한다는 거냐?"고 말한다. 실제로 멘션 타래를 보니 이런 감정을 담아 조롱하는 이들이 많았다.


A라면 B라고 해서 C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비오는 날 빨간 장미를 선물한다고 했으니 그 날 주는 건 약속을 지키는 거지만 맑은 화요일에 빨간 장미를 준다고 해서 약속을 어기는 건 아니다. 하나의 사태가 확정되기 위해서는, 수학의 분야에서 보자면 하나의 답, 혹은 공리가 입증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논리적 전개와 전제들이 깔려서 맞물려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문명은 그런 역사들이 층층이 쌓여 존재한다


사회로부터 강력하게 부여당한 나의 되어짐(정체성)을 극복하는 건 쉽지 않다. 내용만 바뀔 뿐, 구조가 다르지 않다면 남성들 일반이 치마를 입고 다니고 여성 일반이 바지를 입고 다니는 "되어짐"으로 얼마든 치환하여 설명할 수 있다. 좋아하는 대입은 아니지만 이런 문제의 해결의 끝에는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목적지가 있다.


여성들의 탈코도 마찬가지다. <수학의 감각>에서 내게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 되는 주장을 봤는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불필요한 것을 최대한 덜어내고 단순화된 도식 위에서 재정렬 한 후 - 내 해석에 따르면 - 다시 펼쳐내는 작업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논리적 오류와는 다르다. 일단 파악할 수 있는 수식을 모두 펼쳐놓은 후 단순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이차방정식을 풀 때 괄호를 씌웠다가 벗겼다가 x와 y를 붙였다 떼었다 하는 것처럼.


탈코를 선언하는 여성들을 거칠게 나눠보자면, 순수 개인의 편안함을 위해 자연스럽게 선택하거나 성별 이분법적 경계를 흔들어 변혁을 추구하기 위해서 선택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이 둘이 교차하거나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추동하는 경우도 많다.)


둘 중 어떤 경우든, 성별 이분법을 흔들고, 여성이 여성으로서 (혹은 한 명의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행복을 찾는 여정에서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행위는 그 자체로 이미 상징적인 저항 행위다. 그런데 이는 거시적인 안목, 문제를 가장 단순화시켰을 때 그러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1+1=2와 같은 자명함을 얻을 수 있다. (물론 1+1=2 라는 수식에 대해 도전하면서 수학은 발전해 왔지만, 여기에서는 나같은 수알못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레토릭 정도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자.)


하지만 이 단순한 전제를 복잡한 현실에서 펼쳐냈을 때, 우리는 엄청나게 다양한 해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x+2y=30 이라는 수식에 대입될 수 있는 해답이 다양한 것처럼. 다시 말해, 맥락에 따라 자명한 덧셈의 체계를, 탈코의 저항적 효력을 증명할 수 있는 각자의 해답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댓글 타래에서의 조롱에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원 트윗에도 동의할 수 있느냐? 그렇기도 아니기도 하다. 저 트윗은 내게 x+2y=30 이라는 수식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저 발언을 어떤 교수가 했다는데, 아마 트윗 작성자에게서 편집도 됐을 테지만 "탈코가 남성 헤게모니를 강화한다"라는 단순화가 초래할, 혹은 숨기고 있는 논리적 단계가 너무 많다.


비슷한 결에서, 한 사람이 탈코를 결심하고 실천하며 그 과정에서 "다시 코르셋을 입은 것 같이 보이는" 상태로 돌아가는 일련의 흐름은 결코 간단하게 판단되어서는 안된다. 사실 모든 저항의 행위는 저항의 주체나 그것에 동의하고 연대하는 이들 모두에게 많은 에너지를 쏟게 하는 피곤한 일이다. 검열과 성찰, 지지와 비판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수식의 세계에서 해답을 구하기로 작정하고 뛰어든 이들이라면 최소한, A라면 B이다 라는 진술을 했다고 해서 "그럼 C는 아니란 말이냐?"는 성급한 반문은 피해야 할 것이다. 복잡한 수식을 단순화시키고 구조화해서 "논리적 오류를 제거하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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