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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5

by 엔틸드

1.


내가 음악을 택한 걸 잘했다고 생각할 때 중 하나가 노래할 때이다.

머리로 생각하는데 익숙한 나에게 노래는 내 몸을 들여다보게하는 좋은 기회다.

처음엔 몸에 힘을 빼는 게 다인 줄 알았다. 필요한 과정이긴 하지만, 그건 출발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힘을 빼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다만, 빼는 훈련이 충분히 되었다 싶을 때 '더 잘 부르고 싶다'는 마음의 의지에 몸이 호응했다.

중요한 건 어느 순간 어디에 힘을 얼마큼 주는 게 좋은지를 아는 것이다. 이걸 알려면 자신의 지금 한계도, 노래 부를 때 몸의 상태도 잘 알아야 한다. 노래방은 도움이 되긴 하지만 내가 잘 부르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몸을 무시할 수도 있다.

지금은 내가 목이 풀렸는지,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등을 금방 느낄 수 있다. 노래하는 몸에 좀 더 익숙해진 것이다.


2.


1년 전 단상.


취미와 전업
아마추어와 프로


내가 끌고 가는 것
나를 끌고 가는 것


오늘 행사 지원 나갔다가 끝나고 진행팀과 밥먹으며 얘길 했는데, 행사가 "생활문화동아리 간담회"다보니 그저 순수히 즐겁게 하는 예술과 향상심을 가지고 전문영역에 도달하려 노력하는 예술 사이의 경계가 어디인가 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둘은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정책적인 차원에서 고려할 때 다루기 쉽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걸 떠나서 순수하게, 나는 취미와 전업과 아마추어와 프로 이 네 가지 영역이 이리저리 섞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취미로 하는 프로, 전업으로 하는 아마추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순수하게 즐거움을 추구하면서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음악인들은 외국에도 많이 있다. 물론 시간을 많이 투자하겠지만, 그런 사람이 언제 그만두더라도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즐거움이 끝나면 언제든 벗어날 수 있는 것, 그게 취미다.
하지만 고통이 99이고 즐거움이 1이어도 그 1을 발굴하기 위해서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들은 좀 다른 것 같다. 프로라고 불러야할까, 전업예술가라고 해야할까? 여튼 그런 경계가 무엇인지 궁금해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고 있고 사라지지 않는 질문이다.


3.


얼마 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날 본지 얼마 안 되는 분으로부터 분위기가 김광석 같다는 이야길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쩔 수 없이 김광석의 노래를 몇 곡 불러야만 했다.


내가 아는 김광석은 굉장히 의지가 굳고 방향이 곧은 사람이다. 흔히들 그런 사람을 '강인하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일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깊이 고민했고, 또 추구했는지, 그리고 그의 그 외적인 강함은 어쩌면 '내유외강'에서 나오는, 그러나 그 사자성어에서 흔히 알려진 의미가 아니라 자신을 성찰한 끝에 나오는 종류의 강함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당연히 김광석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겠지만) 일면 비슷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송메이킹이나 노래 스타일 같은 음악적인 부분 말고, (물론 나도 김광석의 노래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와 가까운 포크 기반의 음악을 하긴 한다.) 금방 앞으로 나서기보다 뒤에서 많은 고민과 염려와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 끝에 앞에 서서는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직진하는 듯한 모습들이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써놓고 나니 마치 내가 대단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은데 당연히 아니고, 그냥 '김광석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걸 계기로 나에게 약간의 위안 내지는 힘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남긴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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