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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

하이큐 이야기 #1

츳키의 "한심해"

by 엔틸드
하이큐를 보다 보면, 다양한 생각들이 포퐁포퐁 솟아올라 스파이크 쳐주길 원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토스된 생각들을 이 공간에 스파이크로 날려보내려고 합니다. 가끔씩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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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한심, 다른 의미.


츠키시마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그의 형 아키테루가 설명하듯, 친한 친구를 둘 만큼 친절한 성격도 아닌, 우리에게도 친숙한 "츤데레"라는 일본어가 어울리죠. 그런 츠키시마가 <하이큐> 내에서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하는 계기로, 우리의 '못난 친구' 야마구치 타다시가 등장합니다.


TV판 애니메이션 기준 2기 8화 "환각 히어로"에서 보여주듯, 츠키시마와 야마구치는 친구들의 괴롭힘이라는 극적인 장면에서 처음 만납니다. 얼굴에 뭔가 났다는 이유로 놀림받으면서도 한마디 말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는 야마구치가 한심해 보였을까? 츠키시마는 현장을 지나치며 "한심해"라고 중얼거립니다. 그 후로 그들이 재회한 건 배구를 통해서였고, 츠키시마가 개인적인 상처를 받은 것도 배구를 통해서였죠.


이래저래 카라스노 배구부에서 같이 배구를 하게 된 둘, 그들의 관계가 한 걸음 나아간 건 인터하이 예선 패배 이후 절치부심한 멤버들과의 합숙에서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늘 "미안해, 츳키"를 입에 달고 살던 야마구치는 어느새 자신만의 무기인 "핀치 서브"를 습득하고 피나는 노력과 실패 속에서 갈고 닦아 나가죠. 그에 반해 츠키시마는 형에게 받은 상처를 곱씹으며 "노력"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을 냉소적으로 반복합니다.


스크린샷 2019-05-08 오후 11.50.46.png 츳키 앞에서 처음으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야마구치. 잘한다!


좋은 두뇌와 센스, 유리한 피지컬을 가지고도 과거에 사로잡혀 자신의 배구 열정을 애써 부인하려는 츳키를 다시 돌려세울 수 있는 건, 오랜 친구 야마구치 뿐이었을까요? 작정하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며 "고작 부활동"이라며 저돌적으로 들이대는 츳키를 향해 야마구치도 지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동력으로 움직이는 건데?!"라는 질문 앞에, 자신의 도전과 실패의 경험을 떠올리며 던지는 야마구치의 한 마디는 그게 모두에게 해당하는 대답은 되지 못할지라도, 묵직한 진심을 느끼게 합니다.


스크린샷 2019-05-08 오후 11.51.02.png 하이큐의 연출력이 다시 빛을 발하는 순간! 달(츠키)입니다!


야마구치의 외침과 동시에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히나타가 한자로 "태양"이라면 츠키시마는 "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지금껏 그 비유와 정확히 들어맞게 자신의 역할을 "버티는 것"으로 이해했던 츠키시마는 이 달이 뜬 이후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보쿠토의 멋진 조언도 한몫 했죠!)


이제 자신의 타고난 능력 위에 열정을 얹은 츳키는 시라토리자와 학원과의 전국대회 결정전에서 부상을 무릅쓴 발군의 활약을 펼치며 케이신 감독의 말마따나 "경기의 VIP"가 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우시와카의 스파이크를 단 한 번밖에 막지 못했다"며 화장실에서 스스로를 책망하죠.


첫 번째의 "한심해"가 아마도 야마구치를 향한 것이었다면, 두 번째의 "한심해"는 자신을 향한 것입니다. 두 "한심해"가 무력함에 대한 비난이라는 의미에서 비슷하다 싶습니다. 첫 번째의 "한심해"가 야마구치의 인생을 조심스럽게 뒤흔들며 둘의 친구 관계를 시작하게 했다면, 두 번째의 "한심해"는 츠키시마가 드디어 과거의 자신을 드러내고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스로를 한심해하는 츳키를 다잡을 수 있는 것, 그 또한 역시 야마구치입니다. 야마구치 또한 오래 전부터 자신을 한심하게 여겨왔었고, 배구와 핀치 서버라는 자신의 역할을 통해 그런 자아상을 극복하고 있었으니까요. 지금 느끼는 한심함은 그 감정을 느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부단한 노력과 자신을 향한 신뢰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야마구치는 알고 있습니다. 이 쪽에서만큼은 야마구치가 츠키시마의 인생 선배라고 할 수 있겠죠.




아직 애니화되지 않은 전국대회에서, 야마구치와 츠키시마는 환상의 호흡을 선보이며 카라스노만의 "서브 & 블로킹"을 완성합니다. "고인물"들에겐 익숙할 <피구왕 통키>의 쌍둥이 형제의 필살기 같은 느낌이랄까요? 하하하~ 여튼 서로가 서로의 자극과 도전이 되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부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친구 한 명쯤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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