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마의 "그냥 하는 거야"
하이큐를 보다 보면, 다양한 생각들이 포퐁포퐁 솟아올라 스파이크 쳐주길 원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토스된 생각들을 이 공간에 스파이크로 날려보내려고 합니다. 가끔씩이요~
주인공 히나타 쇼요의 절친은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카게야마 토비오입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찐친이 있으니, 그는 인연의 라이벌 "고양이" 네코마 고교의 세터인 "코즈메 켄마"입니다. 켄마는 신장에 있어서 열세를 보이고 기초 체력도 좋지 않은 편이지만, 뛰어난 관찰력과 판단력으로 절친 쿠로오의 표현대로 네코마의 "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만화, 특히 열혈적인 캐릭터가 다수를 점하는 고교 스포츠 만화에서 이런 캐릭터는 드문 편이고 있더라도 양념 수준의 비중에 머무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이큐가 갖는 차별점이라면 이 점을 뒤집었다는 것인데, 주인공의 친한 친구일 뿐 아니라 운명적인 라이벌로 설정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작중에서 켄마의 등장 시기는 매우 이릅니다. 3권 끝부분에 우연히 히나타와 첫 만남을 갖는 켄마는 그 자리에서 배구부임을 알아본 히나타가 "배구 좋아해?" 라고 묻자, "그냥 하는 거야"(한국어 정식 번역본 기준)라고 말합니다. 사교성도 떨어지고 집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하는 걸 좋아하던 켄마의 유일한 단짝인 쿠로오의 강한 권유로 시작하게 된 것이 배구였죠. (만화책 36권 참조)
켄마의 캐릭터 설정에서 우리는 다시금 하이큐의 매력인 "입체적인 캐릭터"를 맛볼 수 있습니다. 분명 켄마는 사교성도 떨어지고 운동은 보는 것을 더 좋아하며 분석과 판단을 즐겨 하지만, 그 안에는 극한까지 도전하는 근성(켄마가 가장 싫어하는 말)과 승부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켄마의 본질적인 성격은 "재미에 대한 추구"입니다. 카라스노와의 결전이 끝난 후 시원하게 내뱉는 "재밌었다!", 이 대사가 켄마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켄마라는 캐릭터는 작가인 후루다테 하루이치가 이전 작품에서 보여줬던 스릴러적 면모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카라스노와의 전국대회 경기에서 히나타를 집중 공략하다 자신이 공략했음에도 "재미있는 히나타가 끝나버리는 건 슬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왠지 모를 오싹함까지 느껴집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어릴 적에 잠자리를 잡고서는 날개를 뜯으며 놀다가 더 이상 뜯을 날개가 없는 잠자리를 보며 슬퍼하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조금 다른 방향에서 보면 켄마가 가진 오타쿠적 기질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히나타는 참으로 흥미있는 게임의 끝판왕이고, 켄마는 이를 몇 번이고 공략할 수 있는 용사입니다. 딱히 근성도, 열심도 보일 필요 없던 배구였지만 히나타라는 끝판왕이 등장하면서 드디어 켄마에게 배구는 게임만큼 흥미로운 플레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히나타를 공략할 때도, 막판의 수세에도, 그 어느때보다 지쳐있는 상황에서도 "아직 끝나지 말아줘!"라고 말할 수 있었겠지요.
흔히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즐겁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들 말합니다. 저도 "정말 잘하게 되면 즐기며 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듣고,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샌가 "즐거움"을 "잘함"에 대한 부속물 내지는 필요조건 정도로 생각해온 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엘리트 체육을 비롯해 냉정한 승부의 세계의 경우라 할지라도, "즐거움"이 그 정도의 가치밖에 지니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이큐의 켄마는 우리가 가볍게 여기는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즐거움에서 힘을 얻지 못하고 그저 즐거움을 즐김으로써 흘려보내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말이지요.
지든
이기든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아나지도 않고,
악이 번영하지도
세상이 멸망하지도 않아.
장대한 세상을 달려가지 않아도,
그저 9X18m의 사각형 안에서
공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쓸 뿐이야.
하아~ 재밌었다!
쿠로,
나한테 배구를 가르쳐줘서 고마워.
- 코즈메 켄마의 대사, 하이큐 37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