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 무례, 무정
새해가 밝았습니다! 제가 만들어 올리는 글은 이게 첫 글이 되겠네요. 여기서 다룰 요소들은 제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 혹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도 -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세밑을 위해 미리 준비한 소재는 아니었지만, 새해를 시작하면서 갖는 하나의 다짐이 되겠네요. 저와 여러분에게 쓸모있는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3無의 첫 번째는 '무식'입니다. 흔히 사용하는 경멸의 용례는 아닙니다. 학력이 부족하다거나 책을 읽지 않는다거나 하는, 흔히 '무식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스테레오타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이라 한들 얼마나 알겠습니까? 옛날 철학자들은 인문학 의학 철학 과학 문학 등 다방면의 전문가였다고 하던데, 그들이라고 세상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을리는 만무합니다. 단지 끊임없이 배우고 탐구하려 했고, 그런 태도가 자신의 무식을 오히려 더 분명하게 보여주며, 누굴 만나도 겸손한 태도를 갖게끔 했겠죠.
그래서 제가 말하려는 '무식'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알고 배우려 하는 의지의 없음입니다. 인간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뇌가 굳어진다고 하는 속설이 있는데, 요즘은 '신경가소성'이라는 개념이 이러한 속설을 과학적으로 뒤집었습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에 대해 적응하면서 배우려 한다면 얼마든지 스스로를 업데이트 할 수 있다는 것이죠.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이러한 무식함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더 자주 보게 되는 현상인데, 사실에 대한 중립적인 탐구가 아니라 자신이 믿는 것, 혹은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을 바탕으로 주변의 사실과 인과관계 등을 짜맞추는 행위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끼리 뭉쳐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고 권력을 행사합니다. 이쯤되면 사회문제죠. 거대양당의 '팬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물론 매순간 의심하고 탐구하며 살 수는 없겠죠. 상식과 편견에 슬쩍 기대어 사는 건 에너지 낭비를 막아주기도 하고, 그 자체로 잘못된 태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타인이나 사회에 대해서 너무도 쉽게, 아무렇지 않게 그런 태도를 보인다면... 글쎄요, "세상은 키보드 밖에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도움이 되려나요?
둘째로는 '무례'입니다. 대번에 떠오르는 건 인간관계에서의 예의죠. 단어의 뜻이 '예의없음'이니까요. 좀 더 우리말로 풀면 '버르장머리 없음', '싸가지 없음' 정도겠네요. 그런데 지금까지의 쓰임새를 보면 주로 권력우위에 있는 쪽이 '아랫 것들'을 향해 사용할 때가 많은 듯합니다. 이런 고오얀 놈! 여기에 엮여서 배려가 '아랫것들의 버르장머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비를 베푼다'는 시혜적인 의미로 오용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배려'도 무례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권력관계든 성별이든 인종이든 경제력이든 학력이든 완력의 차이든 어떤 경계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하나의 면만 가진 '납작한 존재'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진짜 무례란 이런 겁니다. 나의 관점을 들이대서 (입체적인) 타인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죠.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무례는 물론이고, 우리는 늘 맞이하는 일상에서도 나도 모르게 상대에 대해 무례한 태도를 보입니다. 하나 하나 걸고 넘어지면 걸리지 않을 경우가 없을 정도로 말이죠.
누구나 자기 생각, 상식, 기준, 자기가 가진 것들을 바탕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타인을 자기 기준에 맞춰 재단하는 건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인간 행위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이 굳어지고, 어느새 선을 넘을 때 문제가 되겠지요.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세상과 타인, 더불어 나를 '알고 배우려 하는 의지'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례'는 첫번째 다룬 '무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무식하면 무례하게 됩니다.
셋째는 '무정'입니다. 사람이 무례하지 않으려면 세상과 타인과 나를 알고 배우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무정'은 근본적으로 나에 대한 탐구와 이어져 있습니다. 나에게 관심없고 나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면 나를 사랑할 수 없고 타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너에 대해 무정한 사람은 나와 너를 제대로 느끼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감정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느끼게 되는 느낌 이상의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나를 툭 치고 지나갈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이 '느낌'이라면,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에너지화하는 총체적인 집합체는 '감정'입니다. 수동적인 느낌과 능동적인 이성 - 관점과 해석 - 이 버무려져 상황과 내면, 타인과 자신에 대해 갖는 태도가 감정입니다.
쉽게 말해서 누군가 나를 치고 지나갔을 때 받은 느낌에 충실하여 그 사람을 쫓아가 어깨를 홱 돌리며 한 마디 욕을 퍼부어주려 했는데 그 사람이 술에 취한 얼굴로 이별한 애인의 이름을 부르며 울먹이고 있을 때 갖게 되는 태도가 감정입니다. 느낌, 사건, 상황 등을 종합해서 어떤 감정으로 결정짓느냐 하는 것은 자신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습니다. 울먹이는 얼굴에 욕을 퍼부을 수도 있고, 그냥 말없이 돌아설 수도 있고, 같이 술 한 잔 더 하러 갈 수도 있겠죠.
그래서 '무정'하다는 것은 자신이 최초에 받은 느낌에만 충실한 나머지 느낌을 둘러싼 사건, 상황, 해석, 타인의 입장 등은 깡그리 무시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자신에게 이별을 고했다는 이유로 전 애인에게 염산을 부어버리는 남자, 반려견이 너무 짖는다는 이유로 구타하는 견주... 우리가 언론에서 자주 접하는 사건 사고들은 '무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 가지의 '없음'은 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오랫동안 관찰하여 발견한 것들입니다.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게 얽혀 있죠. 저는 이런 악순환에 걸려들어 "주화입마"한 명망가들을 꽤 여럿 보았습니다. 이름있는 이들 뿐일까요? 저와 여러분도 이 악순환에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식, 무례, 무정은 생존본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에게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역사적으로 인간은 이것들을 극복할 때 성장할 수 있었고, 더 풍요롭고 행복한 순간을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으레 지나가는 의례가 끝나고 이런 저런 기분들이 가라앉을 때 무엇을 비우고 또 채우면 좋을지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무식과 무례와 무정을 비워 지식과 예의와 감정을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는 개인들이 모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위한 밑그림들이 많이 그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올 한 해가 우리 모두에게 그런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