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붙거나 헐렁하지 않는 옷을 고른다. 평소에 편하게 입는 옷도 나쁘지 않다. 동네 어디쯤에 뭐가 있었는지 생각해 본다. 잠시 하늘의 형편도 살핀다. 쨍한 햇살도 좋고 구름이 드문드문 걸려있다면 더 좋다. 기온을 확인하고 덧입을지 덜 입을지 결정한다. 중간에 카페에 들릴지, 그렇다면 간단히 시간을 보낼 매체는 뭘로 할지 정한다. 오늘은 아무것도 없이 가볍게, 걷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거리의 풍경 자체가, 지나가는 차와 사람들이 풍성한 배경화면이자 동영상이자 책의 페이지가 되어 준다. 배경음악은 필요할지도 모르니 이어폰도 하나 챙겨둔다.
이렇듯 걷는 행위는 회사에 출근하거나 개인작업을 시작할 때와 비슷한 수준의 준비를 요한다. 그렇다고 어렵거나 꺼려지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걷기는 숨쉬듯 자연스러운 몸과 마음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걷기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걷기를 시작하고 끝내는 행위는 물 흐르듯이 이어갈 수 있다. 단지 우리에게 걸을 시간이 없을 뿐이다.
"빨리 빨리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 부러 걸을 시간을 마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굳이 한국의 노동시간이 세계적으로 최상위권이라는 근거를 대지 않아도 우리에겐 걸을 만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어렵게 시간을 만든다 해도 걸을 장소를 만나는 것도 또 하나의 과제다. 집 근처에 하천이 흐르거나 공원, 산 등이 자리잡고 있지 않으면 걸을 엄두를 내기 쉽지 않다. 그 외의 거리는 걷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도시는 차량에게도, 인간에게도 친화적이지 못하다.
나는 리베카 솔닛이 언급한 걷기의 조건에 우리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조건을 추가해 보고 싶다. 공간과 시간, 걸을수 있는 몸에 이어서 걸을만한 거리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걸을만한 거리의 요소는 거리의 물리적인 구성과 함께 거리를 걷는 타인들이 있다. 거리는 어디에나 있어 탁 트인 것 같지만 갖가지 경계선들로 촘촘하게 엮여 있는 그물과 같다. 누군가 잡아당겨 팽팽하게 만드는 순간 누군가는 반드시 걸려들어 허우적대게 되는, 갈등과 차별이 도처에 깔려 꽉 막힌.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청각장애인 등은 이러한 그물의 대표적인 희생자이다.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한국의 거리는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안전하다고 칭찬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러한 안전은 어떤 이들을 배제한 결과물일 수 있다. 가만히 떠올려보라. 우리는 길을 걸으며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청각장애인을 얼마나 만나게 되는가? 버스나 지하철을 떠올려 보라. 저상버스에 탄 지체장애인을 본 횟수가 얼마나 되는가? 한국의 거리는 모두에게 차별없이 안전한 거리일까?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페미니즘'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시선을 새로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몰카'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시선폭력의 일상적인 문제는 길거리에서도 벌어지고 있는데, 남성이 여성의 몸매나 옷차림을 훑어보거나 외국이라면 '캣 콜링'이라고 해서 그 여성에게 휘파람을 부는 식으로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행동이 이에 해당한다. 시선폭력이 그 자리에서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렇듯 시선만으로도 여성의 걷기를 제한할 수 있다.
우리가 길을 걸을 때 걷고 있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경우는 드물다. 딱히 어떤 생각에 골몰하며 걷지도 않는다. 그러다 문득 나의 걸음과 걷는 거리를 의식하다보면 문득 서글퍼진다. 의식하며 걷다보면 마주치는 사람과 시선이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내 표정 탓인지 무엇 때문인지 상대방의 표정이 밝은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거리를 오가는 이들의 표정만 집계 분석해도 그 사회의 현 상태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의 표정은 결코 밝지 못한 것 같다.
걷기를 의식하고, 걷기위해 준비하다 보면 새삼스레 느껴지는 것이 걷기의 어려움이다. 세상과 타인과 나 자신이 힘을 합쳐 걷기를 방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걷는다면, 걸으며 생각을 비우거나 감각을 깨우거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진다면, 걷기는 막다른 길 앞에 놓인 것 같은 나 자신을 위해 다른 길을 열어주는 힘이 된다. 걷기의 시작과 끝은 그것 그대로 꾸준한 시작의 시작이다. 걷기 전과 걸을 때, 걷고 난 뒤의 감상들을 따로 정리해 본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걷기를 통해서 나 자신은 나도 모르게 어떤 시작을 시작하고 있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