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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다

(3) 낯선 곳을 걷다

by 엔틸드

걷기는 시간, 장소, 몸의 상태에 따라서 무궁무진한 상황과 경험을 제공한다. 물론 삶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날마다 조금씩 다른 경험을 제공하지만 말이다. 같은 길에서 걷는 방향만 바꾸어도 다른 풍경을 보게 되는, 미묘하고 변화무쌍한 경험은 걷기가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하물며 전혀 모르는 장소를 걷는 경험은 어떨까! 여행의 종착지가 일상이라면 낯선 곳으로부터 시작한 내 걷기는 일종의 여행과도 같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곳은 선유도 근처였다. 한 정거장 거리에 당산역이 있어서 교통이 좋은 편이었으며, 도림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이라 양화대교와 한강시민공원이 가까웠다. 도림천으로 들어가면 많이 멀지만 집 쪽으로 걸을 수 있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아르바이트로 생활해야하는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면 도림천변을 한참을 걷다가 집에 돌아가곤 했다. 복잡한 서울 속에서 강변이나 천변은 몸을 움직이며 정신적인 여유를 되찾게 하는 걸음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걷다보면 반대방향으로 스쳐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저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나처럼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돈이 많고 여유가 있어서 지금 저렇게 강변에서 운동을 즐기는 걸까, 돈은 없어도 나름의 여유를 찾으며 사는 걸까, 혼자 이런 저런 상상을 하게 된다. 굳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여기에 강변이 주는 독특한 정서를 느끼며 걷다 보면 강물만 한없이 바라보고 있어도 보통의 길거리를 걷는 것과 다른 기분이 된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걸음이 있다. 때는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인데, 수업도 일찍 끝나고 날도 적당히 따뜻해서 집이든 카페든 실내에 있기는 아까운 날,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우연치 않게 당시에는 재개발 예정지였던 동네 골목으로 들어가게 됐다.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지만 서울의 동네는 건물들이 다 비슷하기 때문에 낯선 동네였지만 ‘아 여기서 익숙한 사람 냄새가 난다’ 싶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시간만 생기면 그 골목을 자주 돌아다니게 됐는데, 어느 날은 호기가 생겨서 그 동네를 지나 서울 도심으로 넘어갔다. 사직동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청운동으로, 거기서 서촌을 통과해 인왕산 바로 밑을 지나 부암동을 지났다. 걷기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그 때 걷는 행위의 매력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서울 도심은 비록 도심이지만 여전히 과거의 흔적들이 남아있고, 그 흔적들과 지금의 ‘만들어진 서울’이 함께 빚어내는 이질적이면서도 독특한 느낌이 있다.


여전히 한반도에는 20세기를 통해 경험했던 피지배 식민지, 분단, 급격한 경제 성장 등이 아직 채 소화되지 않고 남아 있고 그것이 더욱 압축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곳이 수도 서울인데,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서 걸으며 그 독특함을 몸소 체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전히 한옥이 자리잡고 있는 이 동네 바로 맞은편도 지금은 빌딩숲이지만 옛날에는 한옥이 자리했을 것이고, 현대적인 식당이 들어선 길도 예전에는 피맛골과 같이 민중들의 애환을 담아내던 복닥복닥한 골목이었다. 불과 100년 사이에 그 거리를 스쳐간 역사를 만나고 싶을 때, 통찰을 담은 단 한번의 걷기는 책에서 배우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 이상의 가르침을 준다.


내가 여전히 머물고 있는 동네를 감싼 관악산은 어린 시절 약숫물을 뜨러 내 집처럼 드나들던 산인데, 등산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시멘트로 지은 동굴 같은 곳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릴 적에는 그냥 동굴 같아서 거기 들어가 노는 게 마냥 즐거웠지만 시간이 지나 그곳이 한국전쟁 당시 만들어진 참호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 시간 속에 담고 있는 역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걷는 행위를 하는 대부분의 시간에 이런 진지한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날씨가 화창해서, 하늘이 예뻐서, 기온이 적당해서 걷기를 결심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날 좋은 날에 시간까지 허락이 되면 그 때는 흔한 길거리를 걷기보다는 산이나 강변을 찾게 된다. 아파트가 만들어 낸 마천루도 그런 날은 하늘을 위한 좋은 배경이 될 정도니까, 둘레길이나 강변길을 걸을 때는 걸음을 통해 나를 둘러싼 세계가 끝없이 뻗어나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사실 그런 날은 둘레길보다는 강변이 더 낫다. 둘레길은 길도 좁고 등산객도 많지만 강변은 어느 정도 보행로도 넉넉하고 사람들의 움직임도 빠르기 때문에 탁 트인 느낌을 더 잘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하늘 때문에라도 공해와 거리가 있는 지역을 일부러 찾아 여행하는 것이 일상이 된 시대가 다른 면에서 진지한 생각을 요구하고 있다. 어릴 적 관악산을 오르다 문득 뒤를 돌아다 보면 ‘자연 공해’ - 이 때는 공해라는 단어가 일반적이었다. - 를 증명이라도 하듯 하늘을 위아래로 가르는 먼지 띠가 보이곤 했다. 그 때에 비해 지금의 대기질이 상당수준 개선되었다고 하고, 당시에는 미세먼지라는 개념이 대중적이지도 않아서 지금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여전히 서울에서 하늘이 화창한 날을 찾기란 쉽지 않다.


스스로 낯선 곳을 찾아 걷게 되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익숙했던 파란 하늘이 미세먼지 때문에 낯설어지고, 그렇게 내몰려 낯선 하늘 밑 거리를 걸어야 한다면 차오르는 것은 낯섦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감정이다. 우리 삶이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하늘과 땅이 조금 더 깨끗하고 평화로워져서, 성큼성큼 낯선 곳으로 발을 옮길 때 안타까움보다는 즐거움을 더 자주 많이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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