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 할머니는 이야기로만 듣던 일제시대 독립투사였다. 그 엄혹한 시대에 노조를 결성해서 경성바닥을 뒤엎고서는 악명높은 전쟁범죄자인 도조 히데키를 암살할 자금을 모으러 이름도 생소한 도미니카 연방의 수도 로조까지 밀항을 했다. 그 때 입수한 다이아몬드가 모조품만 아니었어도 항일투쟁과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할머니를 보조하러 동행했던 남성 동지가 할머니의 얼굴을 소조로 만들어 건네주지 않았더라면, 설령 주었더라도 그 안에 숨긴 것이 진짜 다이아몬드였다면, 그래서 역사가 달라졌더라면, 지금의 나란 존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오조 오억분의 일의 확률을 뚫고 태어난 나...(할아버지 감사해요!)
천신만고 끝에 경성으로 돌아와 두 분이 조조할인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물건 전달을 위해 접선하기로 한 동지가 나타나지 않아 초조해하고 있을 때, 일본의 두부요괴라 불리는 도후코조로 변장한 동지가 나타나 "그 날이 오면 토조를 부르시오. 포조에 관한 것이오. 물건은 그 때 접수하겠소." 라고 전하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새 잡는 일에 관한 조선인의 가락을 부르라는 뜻이다.) 할머니는 '그 날'이라는 단어에서 뭔가를 감지했고,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방이 찾아왔다.
할머니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새 잡는 노래를 불렀지만 그 동지와 두 번 다시 접선할 수는 없었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해방공간의 정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행동력으로 좌우대립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갔다. 그 와중에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그릇 사업이 호조를 맞아 - 할아버지의 손재주가 한 몫 했다. - 집안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역사가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할머니가 자랑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