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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

by 엔틸드

2018년 즈음 어느 날, 무작위로 이은 선들 속에서 발견한 형상들을 이용해 지은 이야기.


하트, 공룡꼬리, 신발, 롤케잌, 연, 가면, 딱지, 고래


바다를 헤엄치던 고래는 어느 날 해변에서 롤케잌을 먹고 있는 인간을 발견했어요. 롤케잌이 너무 맛있게 보였어요.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니 그건 롤케잌이 아니었어요. 자기 동족들의 살코기, 고래고기였어요. 고래는 너무 슬펐어요. 하지만 고래는 인간의 말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고래는 결심했어요. 인간이 되어 자기 동족을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고래는 그때부터 인간이 되는 법을 찾아 헤맸어요. 자신과 인간 사이의 가장 큰 차이가 뭘까 생각해보니 인간에게는 두 다리가 있었어요. 먼저 두 다리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고래는 자기 꼬리를 최대한 인간 다리 모양과 비슷한 것으로 바꾸기 위해 집안에 가보로 전해져 내려오던 공룡 꼬리를 꺼내어 거기서 뾰족한 부분을 잘라내어 자기 꼬리에 붙였어요. 너무 아프고 피가 났지만 딱지가 앉으면서 곧 뾰족한 부분이 고래의 몸과 하나가 되었어요. 고래는 해변으로 나가 인간이 놓고 간 신발을 뾰족한 부분에 신겼어요. 고래는 드디어 다리를 가지고 육지로 나갈 수 있게 됐어요.


하지만 고래는 또 고민이 생겼어요. 누가 봐도 얼굴이 고래의 얼굴이었기 때문이에요. 마침 해변에서 가면 파티를 하고 떠난 사람들이 남긴 사람 얼굴 가면이 있었어요. 고래는 그 가면을 썼어요. 그러자 신기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고래에게 몰려들었어요. 고래는 다리도 생기고 얼굴도 사람의 얼굴이 되었지만 말을 하지는 못했어요. 어떻게든 자기 동족을 먹지 말라는 설명을 하고 싶었어요


말이 통하지 않아 팔을 마구 휘두르며 뭔가 표현을 하려던 고래가 답답한 나머지 박수를 치듯 두 팔을 부딪치자, 사람들 중 한 명이 “앗, 저건 하트 모양이야!” 라고 외쳤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현명한 노인이 “고래가 사람의 분장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나 하트를 그린다는 건 고래들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표시야. 하지만 우리는 고래고기를 먹고 있지. 이 고래는 신의 부름을 받아 고래고기를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자임에 틀림없어.”라고 말했어요.


그 마을 뿐만 아니라 해변에 있는 모든 마을이 고래고기를 먹고 있었는데, 해마다 그 일대의 마을에서는 사람에게 찾아온 고래를 기념하여 만든 고래 모양의 연을 날리며 고래고기를 먹지 말자는 이야기를 먼 마을에까지 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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