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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대한 이야기

by 엔틸드

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진실은 갈색 병 안에 든 작은 물체다.

애초에 누가 거기에 넣어놨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진실의 목소리는 매우 작기에, 그것을 듣기 위한 확성장치가 필요했고, 갈색 병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짓을 진실을 갈망하는 이들이 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진실을 이용하려는 자들의 소행이리라. 거짓을 말하려는 자들에게도 진실은 필요하다.

진실 없이는 거짓이 존재할 수 없으니까. (철학적 언설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경험적 사실이다.)


문제는 그들이 간과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간과는 역사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그들이 누구이든, 얼마나 똑똑하든, 돈이 많든 적든, 마치 뭐에 씐 듯이 알아도 잊게 되는 한 가지 사실.

진실이 자란다는 사실이다.

진실은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먹고 자란다.

진실을 갈망하는 이들, 진실로 인해 고통받고 슬픔에 잠긴 이들의 눈물이

갈색 병 안을 채우기 시작하면, 진실은 그 크기가 커진다.


진실이 그 존재감을 드러낼수록, 진실을 갈색 병 안에 지키려는 자들과 되찾으려는 이들 사이의 처절한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관계가 없는 이들에게까지 진실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기가 이 때이다.

이 때쯤이면 자라는 진실을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며 빙긋 웃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꾸만 자라나는 진실이 결국 저 좁은 갈색 병을 깨뜨리고 날아오르리라는 '진리'를 알고 있다. 이 빙긋 웃는 자들을 예언자라고 부르든, 현인이라고 부르든, x선비라고 부르든 그것은 각자의 판단이다.


결국 병은 깨어졌다.

진실이 날아올랐고, 온 거리 사방을 돌아다니며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필요없는 사람들은 우산으로 막고, 갈망했던 사람들은 비에 흠뻑 취했지만

그 비가 적신 대지에서 난 음식은 모두가 먹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다.


그 뒤로 진실은 어떻게 됐을까?

여전히 날아다니며, 그 깊은 눈으로

자랑스러워해야 할 사람에게는 자부심을,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에게는 수치심을,

그 어울리는 대로 사람들에게 불어넣으며 바람처럼 흘러갔다.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우리 삶과 세계 도처에

진실들이 발에 차이며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먼지같은 흙구덩이에 비가 내리면 거기서 사건처럼 새로운 생명이 솟아오르듯이

바로 당신이 발 딛고 선 그곳 어딘가에서

먼지만 한 진실들이 열심히 소리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반복되었던 역사는

진실이 갈색 병에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지만

혹시 또 아는가? 이 수많은 진실들 중

다만 몇몇이라도 정직한 이의 손에 들어가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자라서

조금은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외치게 될지.


역사는 진실된 자들의 편이고

진실은 이제 당신을 친구로서 부르고 있다.

진실이 어디 있는가?라고 묻지 말라.

'당신을 부르고 있는' 진실이 어디에 있는가? 를 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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