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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Fit

by 엔틸드

코로나의 팬더믹으로 어디 밖에 한 번 나가기 힘든 봄날, 커플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사회적 취약계층에게도 힘든 계절입니다. 옷장에는 봄기운 담아낼 수 있는 옷들이 한숨을 쉬고 있고요.


"엣지있다", "패션 테러리스트" 등의 유행어가 생길 만큼 옷을 '잘' 입는 행위는 인류의 오랜 관심사였는데요, 흔히들 본인에게 잘 어울리고 본인이 좋아하는 옷을 입는 게 옷을 '잘' 입는 거라고 이야기하죠.


하나의 음악 작품을 만드는 데에도 이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노래에 잘 어울리고,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는 것 말입니다.


때로는 옷입기와 마찬가지로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 충돌하기도 합니다. 뮤지션은 이런 상황이 제일 괴롭죠. 인생에서 '내가 잘 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자주 고민하듯이요.


이런 고민과 탐색은 편곡 작업의 기초인데요, 여기서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들어가는 악기, 일렉트릭 사운드의 질감, 사운드스케이프, 앰비언스, 각종 이펙터의 지향, 보컬의 가창 방식 등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정해집니다.


그래서 뮤지션은 어느 순간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신이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에 어울리는 것'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두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본인의 곡을 다른 '기술자'가 편곡하는 경우도 생기지요. 내 작품이지만 다른 사람이 좀 더 객관적으로 곡에 어울리는 옷을 찾거나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형식인 보컬(사람)이 두드러지는 '노래'에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사람은 옷을 입지만 조형물도 비슷하게 장식하거나 채색하듯이, 가사와 가창자가 없는 음악 작품도 예외없이 같은 작업을 거칩니다.


드럼, 베이스, 어쿠스틱 기타, 일렉기타, 피아노, 키보드, 퍼커션, 스트링, 세컨드 신시사이저, 코러스, 콰이어 ... 또 뭐가 더 있을까요? 그 위에 이보다 더 할 수 없을만큼 박자를 쪼개어 화려한 코드 진행을 욱여넣고 온갖 섹션을 마구 집어넣어 선보여야 본연의 핏이 살아나는 음악이 있을 수 있고,


청바지에 흰 티 하나만 걸치듯 피아노나 기타 등 단출한 악기에 보컬만 얹어야 본연의 핏이 살아나는 음악도 있겠죠. 물론 요즘은 각종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서 둘을 바꿔서 리메이크 해보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고, 개중에는 '더 맞는 핏'을 찾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반가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 앨범에 실린 오리지널 버전이 아닌 다른 편곡의 버전은 잘 듣지 않는 편입니다. 오리지널로 지정된 버전이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고, 그게 뮤지션이 생각한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가장 대중성있는 버전을 선택했을 수도 있겠지만 뭐, 대중을 상대로 음악하는 사람이라면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었을테고 그렇다면 가장 대중성 있는 버전이 그 곡에 가장 어울리는 핏이겠거니 생각해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이제 한 번 음악을 들으실 때, 혹은 뮤비나 라이브를 보실 때 곡이 입고 있는 옷을 상상해보세요. 팁을 드리자면, 가수가 입고 있는 옷과 주변 세트가 생각보다 곡이 입고 있는 옷을 잘 표현하고 있답니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는 죽였지만 듣는 이에게는 또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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