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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effect Aug 29. 2020

실시간 전셋값 폭등 체험기

집을 구하러 다니는 중에 임대차 3 법이 발표되었다.

우리는 첫 신혼집을 뒤로하고

계획에도 없던 이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우리가 입주한 지 4개월 만에 겪은 역류에 골치가 아팠던 집주인이 집을 팔겠다고 내놓았고 우리도 그 시기에 맞춰 나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들어올 사람이 가계약금을 넣은 지 한 달이 지났는데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부동산에서는 비가 많이 와서라고 둘러댔고 들어올 사람이 계약할지도 명확하지 않으니 내가 맘에 드는 곳도 계약을 할 수 없었다. 알아봤던 전셋집들이 금방금방 빠졌다. 서울에 집이 몇 개인데 금방 또 괜찮은 곳이 나오겠거니, 많이 둘러볼수록 좋은 집 찾겠거니 했다.




그리고 임대차 3 법이 발표되었다.


다음날 집을 보러 갔더니 중개인이 '집은 일단 보여드리는데 하룻밤 사이 보증금이 3천만 원이 올랐다. 괜찮으시겠냐'라고 물었다. 저녁에 연락해서 다음날 아침 집을 보러 간 불과 12시간 사이에 오른 금액에 기가 막혔다.  서울 변두리 새 아파트였지만 교통도 불편하고, 주변은 열악했다. 단지 앞은 아직 이렇다 할 상권이 조성되지 않았고 단층짜리 노후화된 시설이 즐비했다. 단지 뒤에는 대단지 아파트를 짓기 위해 큰 트럭이 드나드는 공사판이었다. 서울 중심에서 많이 멀었지만 새 아파트인 데다가 비교적 저렴해서 그곳을 보러 갔던 거였는데 장점이 사라졌다.


회사와 거리도 먼데 가격까지 올라버린 새 아파트를 포기하고 조금 구축이더라도 회사에서 가까운 중심가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나의 회사 바로 가까운 곳에 갈 수 없었다. 신랑의 회사는 반대편이었기 때문에. 오래된 구축이지만 서울 내 교통이 편리해서인지 변두리 새 아파트랑 보증금이 비슷했다. 분명 수리도 새로 한 집이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눅눅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집을 보고 나오는 순간 중개인이 문자를 보더니 다른 사람이 이 집 가계약금을 넣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루 사이 같은 아파트 같은 평형 집의 보증금이 2천만 원이 또 올랐다. 이젠 팀을 구성해서 구경했다. 모델하우스처럼. 우리 또래로 보이는 신혼부부 다음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딸 둘을 데리고 온 가족이 들어갔다가 나오면 우리가 들어가서 봤다. 중개인은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바로 옆 동, 길 건너 다른 아파트 매물도 투어처럼 안내해 주었다. 이 대단지 아파트 밀집지역에 이렇게 매물이 없었던 적도 없었다며 이것밖에 못 보여줘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쯤 되니 우리에게 딱 맞는 금액, 위치, 환경, 집 상태는 초월하게 되고 일단 나오는 매물을 빨리 잡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우리 집에 들어올 사람이 차일피일 계약을 미루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동산에 통보했다.

"비가 많이 온다고 계약을 미루시는 한 두어 달 동안 매물도 사라지고 전세금도 폭등했어요. 뉴스 보셔서 아실 텐데. 이번 주에 원래 하신다고 했던 계약을 또 미루신다고 하니 그럼 전 그냥 계속 살게요"라고.

차라리 지옥 같은 원래 집이라도 눌러앉아 사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인 거 같다는 마음도 싹트기 시작했던 터였다. 보증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우리가 나가야 할 집을 알아보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부동산 통화 이후 바로 다음날 계약을 진행하고 계약금을 넣어주었다. 이사 나가야 할 날짜는 박아두고 날짜는 다가오는데 결정을 내지 않다니. 끝까지 나가야 할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집주인이었다.

 



이제 진짜 실전이었다. 

다시 회사에서 더 가깝고 조금 덜 낡은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전화를 하면 중개 플랫폼에 올라온 가격보다 더 올라가 있거나 이사날짜가 맞지 않았다.

조건에 맞는 집을 어렵게 찾아 집을 보러 갔다가 나오는 길에 중개인이 조금 더 오래되었지만 평수는 넓은 곳도 괜찮은지 물었다. 의사는 물어봤지만 이미 발걸음은 그곳을 향하고 있었고 일단 보기만 하라는 식이었다.


1층이었다. 빛이 잘 들지 않아서 전등을 다 켰는데도 어두컴컴했다. '오래된 저층 집 = 누수 확률 높은 집'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자리 잡히면서 일단 패스하고 싶었지만 널찍한 거실을 보니 숨통이 트이긴 했다. 둘러보다 보니 작은방 입구 바닥이 물렁했고 패치워크로 바닥을 수선한 흔적이 보였다. "여긴 왜 이럴까요?"라고 물었더니 "아 누수가 있었는데 다 수리되었어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누수 때문에 여러 분쟁을 겪고 이사를 결심했는데 다시 이런 곳에 올 수 없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전에 본 집보다 10년이나 오래된 아파트였는데 매매가가 더 높다고 했다. 아무래도 재개발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라는 게 중개인의 설명이었다.

다음 보러 가기로 한 집은 출발하기 한 시간 전에 연락이 왔다. 원래 살던 세입자가 전셋값이 너무 높아져서 그냥 살겠다고 해서 매물을 거둬들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우울한 구축들의 보증금도 걷잡을 수 없이 높아져 갔다.


금액, 교통, 집 상태 등 하나라도 만족하는 집이 없었다. 대체 왜 보러 다니는 건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둘 다 말이 없어졌다. 아무 말 없이 주차하고 엘리베이터 타고, 말없이 씻고 말없이 침대에 누웠다. 이렇게 되고 나니 친정집에 들어가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결혼한다고 나온 지 반년만에 다시 돌아가는 꼴이라니.


이젠 진짜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이것도 저것도 맘에 안 들면 집안에서 보낼 쾌적한 시간을 가장 최우선 가치로 두자. 결국 처음 봤던 서울 변두리 새 아파트를 계약했다. 처음 봤던 그 당시 보증금보다 1억 더 오른 상태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겨우 9일 남짓한 사이 일어난 일이다. 지금 서울 시내 구축은 이보다 더 높은 금액이다. 어쩔 수 없었다.


뉴스에 나오는 전셋값 폭등을 겪어내는 가장 밀접한 사람이 내가 되었다.

임대차 3 법이 초기 부동산 시장의 충격만 잘 적응하면 주거 안정에 큰 도움이 될 법이라고 예상했다지만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사람이 내가 되었던 것이다.




산 넘어 산. 이젠 대출의 벽


주거래 은행은 이율이 너무 높았다.


회사에 연계된 은행은 최저 이자율을 제안했지만 새 아파트라 미등기 매물인 데다가 대출비율 산정기준으로 사용하는 KB시세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무려 3년 전 분양가를 기준으로 대출금을 산정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사이 발생한 대한민국에 집값 폭등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재 매매 시세는 분양가의 2.5배에 달한다. 당연히 전세 보증금도 분양가보다 1억 더 높았다. 그러나 기준으로 삼는 분양가보다 높은 전세금을 대출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고 절망에 빠졌다. 매우 보수적으로 일하는 은행이었다. 실적 쌓기 그른 직원 같으니라고. 이젠 가계약금도 떼이는구나 싶었다.


결국 부동산이 연계해 준 그곳 상황에 빠삭한 은행을 통해 진행했다. 회사 연계 대출보다 살짝 이율이 높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상담 후 무난히 심사를 통과할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은 하나씩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




에필로그.
이사 전까지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야 한다.

혼수로 에어컨은 하지 않는 거라 하여 일단 살면서 구매하자 했었고, 물난리를 겪고 이사 나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에어컨 설치를 하지 않았다.
이번 여름이 덥지 않아 참 다행이다 하고 있었는데, 늦은 장마 이후 폭염이 시작되었다.

거기다 스타벅스 코로나 사건으로 카페까지 갈 수 없게 되었다. 더운 선풍기 바람에도 끈적한 팔뚝을 만지며 재택을 하고 있다.



대다수 매물의 공통점
보러 간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집주인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전 집주인. 이사 나갈 준비 중.
갭 투자로 이 집을 산 새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는 매물을 보러 간 것이었다.
10군데 중 7곳이 그러했다.


3중고 요약
- 전셋집 구하기 : 귀한 매물, 폭등한 전세금, 예산 내에 우울한 집들
- 대출 : KB시세 없는 미등기 새 아파트, 분양 이후 폭등한 집값 미반영된 대출비율
- 나가기로 결정되고 나가기까지 에어컨 없이 나야 하는 여름.


임대차 보호 3 법 전 후 한 달
전 : 매물이 많지는 않았어도 비교해 볼 만한 여유는 있었고, 하루 단위로 가격이 달라지지도 않았다.
후 : 보러 갈 매물도 없었지만 부동산이 문자를 줄 때마다 3천, 5천,1억 단위로 보증금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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