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스케치의 본질
수십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물리적인 이유와 게으름을 제외하고 몇 가지 끄적여보려고 한다.
예전에 드라마에서 어반스케쳐가 나온 이후 어반 스케치가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 되었다. 사실 그 이전부터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특히 저 드라마를 기점으로 젊은 친구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꼽히기 시작한 것 같다. 나야 원래 어릴 적 부터 혼자 밖에 앉아서 풍경이나 건물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걸 ‘어반스케치’라고 말하는 게 약간 민망하다. 건축학과를 들어갔지만 학교에 드로잉을 제대로 알려주는 수업은 없었다. 1학년 때 제도 수업은 하나 있었지만 그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드로잉과는 개념이 전혀 다르다. 설계 도면이나 조감도 역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그리라고 했기 때문에 나같은 아날로그 인간에게는 건축학과의 커리큘럼이 너무 불편했다. 손으로 도면을 그렸다가도 캐드로 다 다시 그려가야했고 다이어그램도 모두 다시 디지털화해야했다. 학교 수업은 학교 기준대로 컴퓨터로 모든 스케치와 손도면을 바꿔가야했기에 내가 생각하는 건축 스케치들은 혼자 돌아다니며 따로 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골목골목 돌아다니다가 잠깐 앉아서 건물이나 풍경을 연필로 드로잉을 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웃긴 인간 몰카는 찍을 수 없으니 힐끔거리며 보면서 그리기도 하고. 어느 순간부터인지 어반스케치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고 내가 하는 이 행위가 어반스케치라고 불리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때 부터 나는 스스로를 어반스케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어반스케치 모임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왠지 나는 그 무리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림을 그리며 홀로 돌아다닌 것은 마음에 든 그 장소의 그 모습 그대로를 그림으로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심하게는 내가 그 환경 속에 존재하지 않는 듯 나를 무시해주기를 바랐다(내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기에 완전하게 나를 배제시킬 수는 없지만). 그런데 몇몇 어반스케치 모임들은 그 장소 그대로의 모습을 멋대로 훼방놓으며 그리는 것 처럼 보였다. 마치 짐승떼처럼 몰려다니며 넓게 자기 영역을 이루고 그 장소를 온전히 즐기던(나의 좋은 그림 소재이기도 한) 행인들이 자연스럽게 존재하기를 방해했다. 그들은 진정한 그 장소의 의미는 눈 뜬 채 보지 못하고 자신의 그림에 나르시스처럼 빠진 듯 했다. 가끔 내가 길바닥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어떤 이들은 어반스케치 하시냐며 그림을 구경할 수 있냐고 묻곤 했다. 나는 얼버무리면서 취미로 그리는 거라고 대충 대답하곤 했다. 어반스케쳐라는 말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 상황들이 몇 번 반복되자 편하게 앉아서 그림 그리던 나의 여유로움을 잃어버린 느낌도 들었다. 지금은 어반스케치를 하러 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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