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풀 뜯어먹는 소리(狗食草聲)
관공서나 은행 등을 출입하면 아직도 일제강점기의 냄새를 맡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그들 중 일부는 민원인을 난감하게 만들고 돌려세우는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절대 민원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딱 자기 업무를 중심으로 마치 중국의 황제와 같은 고정된 시각에서 업무 처리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런 상황을 만났을 때 씩씩거리고 분해하다가 그냥 잊어버리는 것을 더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2021.07.15은 국민은행 대출을 연장하는 날이다. 원래 대출을 받았던 지점은 오늘 동선에서는 가기가 불편해, 사전에 가까운 다른 지점에 서류접수하는 것에 대한 안내를 받고 동선을 고려해 가까운 지점을 방문했다. 당시 기온은 33도로 무척 더운 날씨였다.
20분 기다려 서류 제출하니 서류가 하나가 빠졌다고 했다. 순간 철렁했다. 몇 번을 확인했는데...... 그래서 필요한 서류라고 안내받았던 문자를 확인해 보니 내가 준비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나는 은행 직원에게 그 문자를 보여주고 “요구하지도 않은 서류가 어떻게 빠지냐?”라고 했더니 “알았다”라고 했다. 만일 그 문건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면 허탕 치고 빠졌다는 서류를 챙기러 더운 길을 되짚어와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한고비 넘었다!
그다음엔 여러 가지 서류에 사인을 많이 하라고 하고 “설명을 잘 들었다”는 문장을 설명을 해주지도 않고 이름 쓰고 사인하라고 했다. “설명을 듣지도 않았는데 왜 거짓말로 들었다고 쓰냐?”라고 물었더니 “그건 해당 지점에 문의하라”는 답을 들었다. 해당 지점에 문의하기로 결심하고 일단 사인을 했다.
그다음엔 내가 여러 서류의 사본을 받았다는 서류에 사인하라고 했다. “나는 서류를 받지 않았는데 왜 받았다고 사인하냐”라고 했더니 “해당 지점에게 달라고 하라”는 말을 들었다. 별 수 없이 사인하고 나에게 주었다는 서류의 목록이 적힌 페이지의 사진을 찍었다. 반드시 달라고 하리라고 결심했다.
같은 은행이라면 지점별로 대출 관련 업무가 통일돼 있을 터이고 그렇다면 ‘해당 지점’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면 될 일인데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지점 별로 대출 처리 업무, 대출 시 요구하는 서류 등이 다른가 보다 하고 생각해 봤다.
아무튼 서류가 모두 이상 없고 자서(自署)를 마쳤다. 드디어 한 번에 모든 일을 마치는 첫 경험을 하는 날이다. 나는 가벼운 흥분과 행복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신분증이 유효하지 않다”는 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러면 어떡하죠?”
“다른 유효한 신분증을 가져오셔야 접수를 받아 줄 수 있습니다”
별 수 없이 되돌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태양은 작열하고 가방은 점점 무거워졌다.
사무실에 돌아와 땀을 식히며 차근차근 되짚어 보았다. 분명히 은행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발급받느라 주민센터에서도 제시했던 운전면허증이고 교통경찰에게 단속돼 스티커를 발부받을 때도 아무 문제없던 운전면허증이 왜 갑자기 국민은행에서는 유효하지 않은 신분증이 되었을까? 은행은 어떤 신비한 수단을 통해 운전면허증의 진위여부를 판단할까?
검색을 통해 운전면허증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도로교통공단’의 홈페이지를 통하면 되는 것을 확인했다. 바로 도로교통공단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내 운전면허증의 진위여부를 검색해 보았다. 결과는 ‘면허증의 정보는 전산자료와 일치하지만 암호일련번호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 암호일련번호가 일치하지 않을까? 공단의 콜센터에 전화해 문의했다.
공단 콜 센터 상담원은 먼저 암호일련번호라는 것은 면허증의 작은 사진 밑에 있는 6자리 번호임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내 암호 일련번호인 503N0S인 경우 숫자 ‘0’을 알파벳 ‘O’로도 검색해 볼 것을 권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암호일련번호가 일치했다. 힘이 쭉 빠지면서 좋지 않은 단어가 되뇌어졌다.
검색해 확인 하기전 계획은 지하철 타고 8 정거장 거리의 집에 가서 무효한 운전면허증 대신에 유효한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다시 8 정거장 돌아와 오후 4시 전에 은행에 가는 것이었는데 허망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다시 국민은행 콜 센터를 통해 해당 지점의 담당자와 연락했다. 나는 운전면허증 진위를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했는데 혹시 은행은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지를 물었다.
“같은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내 운전면허증은 유효한 신분증이다. 필요하다면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화면을 캡처해 보내주겠다”
라고 했다. 하지만
“은행에서 은행 직원이 개인 SNS를 통해 그런 사진을 받지 못하니 확인하고 연락 주겠다”
라고 했다. 뭘 확인하는지는 이야기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두어 시간 지나서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바로 그 은행 직원이었다. 확인을 위해 운전면허증 사진을 찍어 SNS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아까 제가 갔을 때 운전 면허증 복사하셨는데요?”
“그런데 그게 어디 갔는지.... 폐기한 것 같아서요!”
“아까 말씀하시길 은행에서는 은행 직원 개인 SNS로 사진 못 받는다고 하셨는데요?”
“이번에 급히 확인하려고 하니 보내주세요”
뭔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싱거운 대화가 몇 번 오가고 나는 운전면허증을 사진 찍어서 그 직원의 개인 휴대폰 번호로 보내 주었다. 이제는 어떤 일이 생길까?
한 시간쯤 은행 직원 개인 휴대폰에서 내 휴대폰으로 살며시 문자가 왔다.
“네 확인했습니다. 서류 보내겠습니다”
문장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일단은 집에 가서 유효한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 것 같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이 더위에 씩씩거리면서 집에 가서 유효한 신분증을 챙겨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냥 그걸로 처리되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제는 운전면허증 재발급받으러 갔을 것이다. 사진도 다시 찍어야 하고..... 재발급 사유는 ‘은행에서 유효한 신분증이 아니라고 함’이 될 것이다.
또 다른 궁금증은 은행 직원은 고객 개인정보의 휴대폰 번호를 사용해 연락을 수시로 하는데 왜 나는 반드시 1588-9999로 전화해 녹음된 멘트가 시키는 대로 한참을 해야 내가 통화하고 싶은 직원과 연결이 될까? 은행 직원이 필요할 땐 SNS로 보내도 되고 (필요 서류 안내도 개인 SNS로 받았다) 내가 필요할 땐 왜 SNS로 보내면 안 될까?
날 더운데 마스크 쓰고 다니느라 심신이 편치 않으니 이 정도 하고 좋은 날 맑은 정신으로 다시 찬찬히 살펴야 할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