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이래 다스리는 사람(통치자, 군자)은 틈 날 때마다 백성들을 속이고 눈퉁이 박고 삥 뜯어 가는 것으로 그들의 영화로운 삶을 유지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백성들을 속인다’는 점이다.
아무리 무식하고 미천한 사람이라고 해도 내 것을 무작정 빼앗아가면 저항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높은 스펙과 지위로 포장하고 살살 꼬시고 슬슬 으르며 가진 걸 내어놓아야 할 이유를 유식한 전문용어로 설명하면 안 빼앗기고 배길 재간이 있는가?.
사람이 사람을 속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점은 지적으로 우월 해 지는 것이다. 내가 읽어보지도 않은 책 구절을 얘기하거나(예, 동의보감) 위대한 성인(예, 공자님)을 팔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매우 오래된 고전적 방법이지만 아직도 통하는 사기 수법이다.
예를 들면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있다. 농사짓는 사람이 천하의 가장 큰 근본이라는 뜻이다. 물론 뻥이다. 일단 이렇게 폼 나게 띄어놓고 추수하면 다 빼앗아 간 것이 지난 농경사회의 진실이다.
공자가 따뜻한 마음으로 백성을 생각하고 농사짓는 사람이 천하의 큰 근본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는 농사를 싫어했고 몰랐고 경멸했다.
번지(공자 제자)가 농사짓는 법에 대해 묻자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늙은 농부보다 못하다” 채소 기르는 법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는 늙은 채소 농사꾼만 못하다”
번지가 나가자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소인이로다. 번수여.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진심으로 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방의 백성들이 자식을 포대기로 싸서 업고 모여들 텐데 무엇 때문에 농사를 지으려 한단 말이냐?①
요약하자면 쌀농사나 채소 농사는 소인들이나 짓는 것이다. 공부해서 관리가 되면 농사 안 짓고 도성 안에서 살며 ‘예(禮)’ 와 의(義)를 행하는 것이 더 폼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농사에 관심을 가진 제자의 뒷 담화를 깠다. 공자는 평생 그렇게 살았고 쌀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음식 투정은 장난 아니었던 사람이다.
과거의 농사는 지금의 노동이란 말로 바꿀 수 있다. 당연히 지금도 노동은 하지 않으면서 맛난 거 먹고 멋진 옷 입고 넓은 집 살며 훌륭한 차를 타는 군자 놈들이 드글드글 한 것은 예전과 같다. 또한, 노동의 무게를 간신히 지탱해가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소인들의 삶의 모습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해진 사실은 이미 그동안 하도 찍어 먹어보고 경험한 것이 많아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내가 존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어쩌면 어리석은 일이다. 공자는 농민과 농사와 농촌을 존중하지 않았고 따라서 문화 대혁명 시기에 그는 ‘공 씨 집 둘째 아들(老孔二)’로 불리며 비난받았다.
공짜 점심은 없고 되빠꾸의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 제목 배경 사진설명 : 공자가 취직하기 위해 나이 먹고 세상을 돌아다닐 때의 모습을 풍자한 포스터이다. '공 씨 집 둘째 아들의 추악한 모습'이라는 글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