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022년 4월 30일)는 '새옹지마' 사건의 주인공 경호형의 큰아들 윤일의 결혼식이 있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하는 잔치를 봤고 그 흥에 못 이겨 막걸리 한 병 더 마시다가 구박을 1박 2일째 받으며 모진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정보라 신부의 나이는 모르겠지만 신랑은 30이 넘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요즘 서른은 참 어려 보인다. 아니면 내가 늙은 것인가?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대답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 ①
흔히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로 회자되는 이 구절은 『논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분의 하나이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도 공자의 탁월한 정치적 식견을 칭송하는 수많은 문헌이 있다. 그러나 조금만 디테일에 접근하면 또 속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대화는 제나라 임금 경공이 임금이 된 지 36년째 되던 해, 공자가 갓 서른 일 때 이루어졌다.(BC.522) 공자는 노나라 출신으로 제나라에서는 당연히 외국인 신분이었다. 제나라는 노나라에 비해 훨씬 큰 대국이었다. 즉 임금 된 지 36년 된, 대국의 왕이 소국에서 온 서른 된 미천한 공자에게 정치 자문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며 분명히 시, 공간이 왜곡되었거나, 짜깁기했거나 아니면 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공자가 대답했다는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는 공자가 한 말이 아니고 당시에 유행했던 관용어였다.② 따라서 공자의 이 말을 공자가 창조한 '탁월한 정치적 식견'으로 주장한다면 공자를 표절 범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 소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두 가지 못마땅함을 느낀다. 첫 번째는 소인에 대한 배제이다. 여기에 언급된 임금, 신하, 아버지, 아들(君, 臣, 父, 子)은 모두 군자 계급이다.
"공자의 청중은 인민 대중이 아니라 그가 군자라고 부른 독서인이었다."③
따라서 소인은 공자의 청중이 아니다. 그런데 소인들이 공자를 신격화해서 소비한다는 것은 웃기는 거 아닌가?
두 번째는 임금, 신하, 아버지, 아들(君, 臣, 父, 子)을 논하기 이전에 인간 그 자체를 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연령에 있던,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모두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인간이 인간다움이 있고 난, 연후에 임금이든, 아들이든, 군자든, 소인이든 있는 것 아닌가?
이 두 가지 불만에 대한에 대한 해답을 며칠 전 만났다.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이어야 사람이지" (인인인인, 人人人人)④
그렇지! 이렇게 사람다운 사람이 있고 난 연후에 필요에 따라 역할이 구분되고 구분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자기를 아끼고 상대를 사람을 대우하는 것! 그것이 정치의 근본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공자를 도구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공자를 성인화 하는 건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그것보다는 자신에 충실하고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며 그렇게 하루를 더 해가는 것, 그것이 비록 군자의 삶은 아닐지 몰라도 사람다운 사람의 삶이 아닐까? 사람다운 사람들이 모여 산다면 군자는 그다지 필요할 것 같지 않다.
① 리링(李零),『집 잃은 개 2』글항아리, 경기 파주, 2018. p.696. 원문은 아래와 같다.
齐景公问政於孔子, 孔子对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② ibid. 『국어』「진어」의 출전을 예를 들었다. 『논어』에는 이밖에도 당시의 관용어가 여럿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