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한계 - 小子 鳴鼓而攻之 可也ㆍ

제11 선진편(第十一 先進篇)-16

by 누두교주

만일 나에게 자유민주사회 이전, 왕조 사회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아래의 표현을 들겠다.


”백성이란 어둡다는 말이다 “①

이 명제는 두 가지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첫째는 하늘이 내린 왕(황제 또는 천자)이 무식하고 천박하고 띨띨한 무리인 백성들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왕 혼자 다 할 수 없으니 왕의 친척들 위주로 공(公), 경(卿), 대부(大夫) 등 고위 공직자를 두어 무지몽매한 백성을 잘 교화해야 한다. 요것이 군자의 원래 의미였다.


두 번째는 고귀한 혈통을 가진 고위 공직자들을 대신해 실무를 경영하기 위해 공부 열심히 한 무리 들이 필요하다. 그래야 높은 놈들에게 조언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백성의 삶도 챙기는 일을 할 수 있다. 요것이 공자가 발명해 주장한 확장된 군자이다.




공자가 발명한 군자는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고 도(道)를 배우고 덕(德)을 닦아 된 것으로 ‘도덕군자’의 의미이다. 도덕군자들은 무지몽매한 백성들처럼 힘들여 농사짓지 않아도 백성들보다 잘 먹을 자격이 있다. 물론 그들이 먹는 것은 백성 노동의 결과이다.


좋은 말로 ‘백성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종류의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 이런 종류의 말은 ‘백성의 권리(民權)’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귀 하게(民貴)’ 여긴다는 뜻이다. 백성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당연히 지속적으로 삥 뜯을 대상으로서 귀하게 여기는 것이지 진짜 주인으로 받드는 것은 아니다.

백성을 바라보는 공자의 시각도 당연히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티 나게 백성들 눈퉁이 박는 것은 경계했다.


또 한 가지는 때밀이가(공, 경, 대부) 목욕탕 주인(왕) 보다 더 해쳐 먹는 것을 지독히 싫어했다. 그렇게 되면 목욕탕이 망한다는 논리다.




공자의 수제자 중 하나인 염구가 당시 세도가의 가신(家臣)으로 취직해 백성들로부터 삥을 잘 뜯었다. 그 결과 세도가의 재산이 왕보다 많아지게 됐다. 당연히 공자는 열 받았고 염구를 탄핵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시대의 한계였고 공자의 한계였다. 그리고 그 한계는 2,500년 동안 계속된다. 우리도 그걸 따라 했다.


" 계씨는 주공보다 부유한데도, 염구 저놈은 계씨를 위해 불쌍한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쥐어 짜내어 계씨의 재산을 늘려 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저 놈은 우리의 무리가 아니로다! 아해들아! 북을 울려라! 저놈을 공격함이 옳다! “②


아랫사람(일반 백성)의 것을 덜어내 윗사람을 돕는 것은 윗사람의 쪽을 팔리게 하는 것③이므로 염구가 잘못했다는 해석은 차라리 순진하다.


내가 볼 때는 염구 윗놈(계씨)이 욕심을 부린 것이고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머리 좋은 염구를 채용한 것이 맞을 것 같다. 염구는 높은 연봉받고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이다. 바로 이점이 공자가 열 받은 점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공자가 진정한 큰 스승이라면 우선 무엇이 잘못된 일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분명히 해야 했다. 연후에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지시를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공자는 일단 흥분부터 했고 다음엔 그저 만만한 자기 제자인 염구를 다른 제자들을 시켜 위협하는 경솔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여기에 더해 북을 치라는 지시는 공공의 평안한 삶을 방해하는 소음공해를 유발할 수 있는 잘못된 판단이다.




공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2,500여 년이 흐른 후에야 정리가 되었다.


임금이란 백성을 위해서 일을 관장하는 사람이고, 신하는 그 일을 돕는 사람이며, 세금을 걷는 것은 그 일을 하기 위한 경제적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때는 그 관장하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 합당하다.④


그러나 이미 버스는 떠난 시점이었다. 이 시점의 중국은 세계 열강의 먹잇거리로 전락했고 결국은 공산 독재를 통한 차악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엄밀히 말해 공자는 공자 당시에는 혁신적인 생각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려먹어도 적당히 우려먹어야지 너무 오래 우려먹었다. 그러니 윗대가리 아무리 바뀌어도 백성의 팍팍한 살림 살이는 수천 년간 그 자리를 맴 돈 것이다.

공자의 한계는 공자의 한계가 아니라 공자 말고는 우려먹을 게 없었던 군자들의 한계인 것이 사실이다.



① 『상서 정의』「군진 소」(君陳疏) 民者, 冥也.


② 도올 김용옥의 해석이다. 김용옥의 책은 방대한 군더더기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논리 전개 그리고 자기 자랑으로 읽기 불편하다. 하지만 개념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과감한 언어 표현은 그래도 그의 책을 보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도올 김용옥『논어 한글역주 3』 통나무. 서울. 2019. p.273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季氏富於周公, 而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 子曰: ”非吾徒也. 小子鳴鼓而攻之, 可也. “


③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지음, 임옥균 외 옮김『논어징 2』 소명출판. 서울. 2015. pp.402-404. 이 말은 오규 소라이가 이토 진사이를 인용한 부분이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夫損下以翼上, 謫所以損夫上也.


④ 담사동(譚嗣同)의 『인학』(仁學) 이 출전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君也者, 爲民辨事者也, 臣也者, 助辨民事者也. 賦稅之取于民, 所以爲辨民事之資也, 如此而事猶不辨, 事 不辨而易其人, 亦天下之通義也.

김영민『중국 정치사상사』 (주)사회평론아카데미. 서울. 2021. p.697, p.834에서 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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