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그렇지만 음식을 만드는 것도 그것이 거듭될수록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모르던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같은 조리 기능사라도 연륜에서 우러나는 깨달음의 그윽함은, 숙성의 시간을 갖지 못한 풋내기와는 다르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직접 음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음식이 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음식 하는 것이 보이니, 그 정도 수고인 줄 안다.
만들 음식을 상상하고 장을 봐야 하고, 값이 속상하게 비싼 것이나, 미처 사지 못한 것들, 샀지만 풀어보고 열받는 식자재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그저 돈 줬으니 다 될 줄 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는, 설거지만 하면 되는 줄 안다. 그래서 어쩌다가 그릇 몇 개 설거지라도 하고 나면, 마치 나라를 구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설거지를 했다고 끝이 아니다. 그릇이나 조리도구를 수납해야 하고, 여기에 더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식재료 중에서도 일반 쓰레기로 분류할 것이 있고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양파 겉껍질은 일반 쓰레기다. 하지만 요놈은 잘 말려 다시 국물 내는데 쓸 수 있다. 따라서 예쁘게 잘 까진 건 잘 씻어 말려 두고, 그렇지 않은 것은 일반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
조개껍데기도 당연히 일반 쓰레기다. 하지만 그냥 버리면 쓰레기봉투의 공간을 많이 차지해, 낭비일 뿐 아니라 조개껍데기의 날카로운 면에 쓰레기봉투가 찢어지는 낭패를 당하게도 된다. 따라서 방향을 맞추어 차곡차곡 포개어 얌전히 쓰레기봉투에 담아야 한다.
또 다른 대표적인 일반 쓰레기는 동물의 뼈나 생선의 가시이다. 역시 별도로 분류해 일반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 어쩌면 이렇게 버린 쓰레기가 먼 훗날 조상의 유물이 될 수도 있다.
오리 능이백숙을 먹고 남은 오리 뼈를 재처리해 교육용으로 환생시킨 모습. 보존처리가 끝난 모습이다.
일반 쓰레기에 비해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되는 식자재 부산물들은 대부분 부드럽고, 습기를 많이 품고 있으며 부피가 큰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가능한 물기를 꼭 짠 후 차곡차곡 잘 담아야 하고, 가끔 꼭꼭 눌러 줘 가며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불쾌한 냄새나 해충 발생 등을 고려해 작은 용량의 쓰레기봉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아침 출근길, 아빠 손에 들린 음식물 쓰레기봉투는 저녁 퇴근길의 간식만큼 아름답다.
나는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하는 바리스타이다. 따라서 자동 머신을 사용하는, 경우에 비해 몸으로 때울 일이 많다. 그중의 하나가 도징(Dosing - 담기①)과 탬핑(Tamping – 누르기, 다지기②) 그리고 태핑(Tapping - 털기③)이다.
늙수레한 남자가 하기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특히 탬핑은, 분쇄된 커피가루를 잘 모아 살짝 눌려 전체적 균형을 잡은 후 평평하게 압축하는 공정인데, 잘못하면 물길이 생겨 커피 가루 일부만 우려 지게 돼 맹탕 커피가 추출된다.
탬퍼를 너무 꼭 누르면 물이 통과하기 힘들어, 지나치게 진한 커피가 나오고, 너무 살짝 누르면 물이 빨리 통과해, 싱거운 커피가 나온다.
탬핑은 위와 같이 생긴 탬퍼를 사용해 커피 가루를 꼭 눌러주는 작업이다.
그분이 들으면 입을 최대치로 벌리고 하품을 해대며, 또 문자 쓴다고 투덜거릴 일이지만, 나는 탬핑을 할 때마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걱정한다(吹恐飛執恐虧)”는 어버이 은혜를 생각한다. 나는 공인된 바리스타로서 매일 아침 이런 마음으로 그분을 위한 커피를 준비한다.
그런데 어느 날 제2의 ‘유레카(eureka)’ 사건이 발생했다. 분명 이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으나 조리 기능사와 바리스타 자격을 동시에 모두 갖지 않았다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유사 이래 최초의 발견을 한 것이다.
그것은 천연 소재를 사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압착하는 탬퍼로 사용함과 동시에, 음식물 쓰레기봉투의 뚜껑 역할도 하고, 마지막엔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버릴 수 있는 소재이다. 더욱이 일회용이 아니고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다 찰 때까지 몇 번이고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음식물 쓰레기 내추럴 탬퍼’라고 이름 지었다.
① 도징(Dosing – 담기): 그라인더로 간 커피콩 가루를 포타 필터 안에 넣는 것. 소복하게 담은 후 손가락으로 살살 밀어 평평하게 해 주는 작업이다.
② 탬핑(Tamping – 누르기, 다지기): 도징 한 커피 가루를 탬퍼(누르개)를 사용해 수평을 유지하며 적당히 꼭 눌러 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