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을 묻다
어디서 얻어들은 이야기 중에 “생은 그냥 던져진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그냥’ 던져져서 부모를 만나고, 형제와 함께 자라고, 짝을 찾아, 자식을 낳고 사는 게 어떻게 보면 참 대견하기도 하다.
먼 길을 걸어가는 삶 속에서, 또 다른 여행길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엔 목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길 위를 오래 걷다 보면 처음부터 그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수는 광야를 헤맸고 공자도 천하를 주유했다지만 객지 생활 가장 많이 한 사람은 아마도 부처일 듯싶다. 여행길에 병을 얻어 열반에 들었다는 그의 발바닥에 불법(佛法)을 상징하는 바퀴(法輪)를 그려 넣은 것이 짠하다.
비엔티안에서 가장 으리으리한 사원인 ‘파 탓 루앙’ 사원. 대부분 이런 시설물들은 쓸데없이 크고 그늘이 적으며 입장료를 받아 탐탁지가 않다. 내가 부처라도 별로 반갑지 않을 것 같다.
떨떠름한 마음으로 사원 구석(보통 눈에 잘 띄는 곳은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을 더듬어 다니다 울컥한 장면을 보았다. 발만 남아있는 불상! 이 거대한 사원에서 본 가장 마음에 와닿는 불상이다.
비록 던져진 삶을 살기는 하지만 그렇게 던져진 사람끼리 손을 꼭 잡고 걷는 길은 그래도 살만하다. 고단한 인생길이긴 하지만 동이 등에 업혀 가는 허 생원에게, 달빛이 가득한 메밀밭은 슬며시 웃음이 나오게 한다. 날마다 소풍 길은 와서 싫지는 않은 길이다.
사원 밖에는 커다란 보리수가 품을 열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금빛으로 치장하고 잡인의 출입을 막는 오만한 큰 집보다 훨씬 고맙다. 나도 그늘에 깃들어 잠시 땀을 들였다. 그리고 두툼하고 커다란 잎을 한 장 챙겨 읽던 책에 갈무리했다.
주섬주섬 일어나다가 왜 일어나지? 어딜 가려고?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또 다른 사원을 둘러봐도 그것이 그것일 뿐, 가슴속에 담은 발만 남은 불상만 할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늘 본전 뺐다’는 흐뭇함이 밀려온다. 나는 틀림없이 속물, 중생이 맞는 것 같다.
아직 멀었다.
대문 그림 : 역시 파 탓 루앙의 불상이다. 내 눈에는 틀림없이 이집트 신상(神像)이다. 내 생각이 맞는지 물어보았지만, 모두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눈 빛이었다. 나는 아직 멀었나?